'영업왕' 채용하고 싶었던 보험회사, 이렇게까지?

조회수 2020. 7. 23.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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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보험회사 A는 보험설계사 채용을 위해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웠다.

 

과거 직장생활을 오래 했던 사람일수록 지인 관계가 많을 것이며, 초기 설계사 정착 및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A는 데이터를 수집해 보험설계사들의 고객 중 설계사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추천해주는 새로운 예측 모형을 만들어냈다.

 

학력, 거주지역, 나이, 설계사 관심 동기, 과거 직업, 과거 직업 근속 기간 등의 정보가 설계사의 영업 성과에 미친 영향을 추정하는 모형을 만든 것이다.

 

과연 이 모형은 실제로 사람을 뽑는 데 도움이 됐을까? DBR 299호에 소개된 기사를 통해 살펴보자.

 

보험 상품을 '잘' 팔려면 '이 사람'의 역량이 핵심

출처: 동아일보

보험 시장은 데이터 분석을 통한 혁신에 대한 니즈가 매우 높다. 보험 상품의 구매 주기가 길기 때문에 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이해가 어렵고, 고객과 보험사 간의 정보가 비대칭적이라 고객이 구매 의사결정을 내릴 때 비합리적이기도 하는 등의 독특한 데이터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산업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서다.

 

보험 상품의 긴 구매 주기로 인한 고객 이해 어려움, 고객과 보험사 간의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한 구매 의사결정의 비합리성 등 독특한 데이터 특성을 갖고 있음에도 산업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험 상품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대화된 금융 상품이다. 고객이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운 구조(일부 상품은 죽어야 보험료를 받게 되는데 누가 그 가치를 경험해 봤을까?)라서 고객은 상품을 이해하고 혜택을 합리적으로 판단해 구매 의사를 결정하기 쉽지 않다.

 

이처럼 정보에 대한 비대칭성이 높아지면 고객의 의사결정은 전문가나 지인과 같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의견을 반영해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출처: 동아일보

결국 보험 판매는 설계사의 인맥과 영업력의 산물이라는 의미다. 설계사가 비즈니스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면 보험사가 풀어야 하는 문제는 자명하다.

 

첫째, 역량 있는 설계사를 리크루팅한다. 둘째, 코칭을 통해 설계사의 역량을 키운다. 셋째, 설계사의 이탈을 막는다.

 

특히 설계사 이탈의 근본 원인을 실적 부진으로 인한 수수료 수입의 감소라고 분석해서 애초에 성과를 잘 낼 수 있는 설계사를 영입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설계사의 이탈률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설계사 모집 공고를 내면 잠재력이 높은 후보자가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대신 설계사 본인의 계약고객(지인) 중에서 보험설계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찾거나 추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이 설계사로서의 잠재력을 추정하는 모형”으로 문제를 재정의했다. 

 

그런데 파일럿 단계에서 새로운 이슈가 발생했다. 모형을 통해 잠재력 있는 후보를 알게 된 보험설계사들이 적극적으로 채용에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데이터를 비즈니스에 활용려면 '프레이밍'은 필수

A : 잠재력이 높은 후보 고객은 저의 영업 관점에서도 중요한 고객입니다. 기본적으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인맥도 좋고, 보험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서 오히려 핵심 고객으로 관리해서 새로운 영업 기회를 발굴하는 데 활용해야지, 이분이 설계사가 되면 오히려 제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생겨 제 입장에서 득이 되는 게 없네요.



B : 개인적으로 후보를 추천하고 채용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갑니다. 초반에 데리고 다니며 영업 경험도 시켜줘야 하고, 출근 관리도 해야 하고, 상황에 따라선 옷도 사 입히고, 밥도 사주는 경우도 많고요. 그 시간에 차라리 제 영업을 하나 더 뛰는 게 수당을 더 받을 수 있어요. 마음고생도 덜하고.

그간 우수한 잠재력을 가진 후보가 누구인지 몰라서 뽑지 못한 것이 아니다. 시장 중복으로 인한 기회의 손실, 채용 노력에 대한 보상 부재와 같은 정책과 프로세스 등의 측면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진짜 문제였다.

 

데이터 분석이 비즈니스에 적용돼 성공하기까지는 이처럼 많은 부분이 고려돼야만 한다.

  

혹시 여기까지 글을 읽으며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함정에 빠졌다.

 

비즈니스 요구사항은 ‘역량 있는 설계사를 뽑아야 한다’였고, 이를 위한 문제 정의를 ‘역량 있는 설계사 후보를 추정하기 위한 모형 개발이 필요하다’로 선언한 순간 미묘하게 문제가 틀어져 버린 것이다.

출처: 신동아

“데이터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프레이밍을 하는 순간 문제가 달라졌다. 데이터 분석 조직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은 데이터 분석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착이다.

 

데이터를 활용해서 풀어야 하는 문제로 비즈니스 이슈를 재정의하는 순간, 데이터 분석의 틀에 갇히게 되고, 분석의 결과가 원래의 비즈니스 이슈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어떻게" 보다 중요한 "무엇을" !

출처: 리멤버 커리어
리멤버 서비스 소개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다. 끊임없이, 그리고 의식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 풀고 있는 문제가 진짜 문제인가?’ ‘데이터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맞는가?’와 같이 비즈니스의 본질을 파고들며 ‘문제를 의심하는 것’ 외엔 해결 방법이 없다. 결국 문제 정의가 문제라는 말이다.

 

널리 알려진 드라마앤컴퍼니의 ‘리멤버’는 비즈니스 본질을 파고든 <데이터 분석 vs 문제 정의>의 좋은 사례다. 2014년 OCR(Optical Chracter Recognition, 광학 문자 인식)기능으로 무장한 명함 관리 서비스 앱들이 우후죽순 나올 때, 리멤버는 500여 명의 타이피스트들이 직접 입력하는 명함 앱으로 시장을 압도했다.

 

이게 무슨 혁신일까 싶지만, 고객은 단 한 번도 ‘OCR’ 기능을 요구한 적이 없다. 다만 자동으로, 편하게, 정확하게, 고객을 대신해서 명함을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했을 뿐이다.

 

오히려 OCR 기반의 명함 관리 앱들의 부정확한 인식률은 고객의 핵심 니즈인 ‘편하고 정확하게’를 전혀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리멤버는 이를 훌륭하게 해결해냈다. 데이터 분석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문제의 본질에 집착한 결과물이다.

 

실제 현장에서 ‘문제 정의의 실패’는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가 성과를 내지 못할 때 내부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비판이다.

 

실제로 2017년 캐글(Kaggle)에서 데이터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했을 때, ‘분석을 통해 해결할 문제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데이터 부족’ ’조직의 데이터 분석 역량 부족’ 등에 이어 4번째로 지적됐다.

출처: 동아사이언스

문제 정의의 핵심은 유연성이다. 사전에 잘 정의된 문제로 시작하는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

 

보통은 문제를 파악해가는 과정을 반복하며 가설적 문제 정의와 해결책을 수립하고, 검증하고, 수정한다. 업무 프로세스처럼 순차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해답을 발견할 때까지 앞뒤를 오가며 반복해서 수행하게 된다.

 

결국 데이터 분석 조직이 갖춰야 하는 핵심 역량은 ‘주어진 문제가 잘못 정의됐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에서 출발해 이를 검증하기 위한 가설을 세우고, 문제를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다.

 

단순히 주어진 문제를 데이터 분석을 통해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를 의심하고 재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3월31일, 데이터 3법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 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비즈니스 기회를 확대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하지만 데이터 분석의 본질과 목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이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99호

필자 정성문 PwC 컨설팅 Emerging Technology Lab 이사

인터비즈 조지윤 윤현종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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