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가라사대(?)' 지분 5%인 사람 말이 곧 법이라고?

조회수 2020. 7. 8.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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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모 상장회사의 지배주주가 본인의 형사재판에서 회삿돈으로 변호사를 고용했다고 검사 앞에서 스스럼없이 ‘자백’한 적이 있다.

 

본인이 하는 모든 일은 회사를 위한 것이고, 따라서 회삿돈으로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이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요즘 표현으로 참으로 웃픈 현실이다.

 

2016년 말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 ship Code.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지침)가 정식으로 제정되고 2018년에 국민연금이 이를 도입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국내에서도 주주권 행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주주권이 명확히 서지 않고, 오너권(!)만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DBR 299호에 소개된 기사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

'주주 제안' 받아들인 현대차 vs. '자격 없다' 법적으로 다툰 한진

2019년 주주총회에서 현대차와 한진이 보여준 입장 차이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당시 현대차 주총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제안한 대부분의 주주 제안은 주총 안건으로 정식 상정됐다.

 

물론 엘리엇의 주장이 무리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국민연금을 포함한 일반 주주들의 호응도 얻지 못해 부결됐다. 하지만 보수위원회와 투명경영위원회를 설치하는 정관 변경안은 경영진도 수용했으며 국민연금도 이에 찬성해 가결됐다. 이는 아마 대규모 기업 집단 소속 기업 주총에서 주주 제안이 통과된 거의 유일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한편, 현대차는 지난 2018년에 모비스를 인적 분할한 후 분할 사업부를 글로비스와 합병하는 개편안을 추진한 바 있다. 본 건에 대해 모비스 주주에게 불리한 분할합병 비율과 단일 회계법인이 이를 자문했다는 이해상충 문제가 제기됐다. 주총에서 통과 가능성이 낮아지자 현대차가 이를 자발적으로 철회했다.


반면, 2019년 주총에서 한진 지배주주 및 경영진은 국내 독립계 사모펀드 KCGI(강성부펀드)가 제기했던 주주 제안에 대해 제안 자격이 없음을 법적으로 다퉜다.

 

상장기업의 경우 6개월 보유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지가 쟁점이었는데 1심에서는 KCGI가 승소하면서 주주 제안이 주총안건으로 포함돼 우편 발송됐으나 주총 며칠 전에 고등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따라서 KCGI 주주 제안은 주총에 상정도 못된 채 폐기됐다. 2대 주주가 주주 제안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한진이 현대차처럼 KCGI의 주주 제안을 받아 주총에 상정한 후, 일반 주주들을 진정성 있게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어땠을까.

 

금년 주총에서는 한진의 기존 지배주주와 경영진이 3자 연합에 대항해 일반 주주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비록 3자 연합이 주총에서는 패했으나 이 과정에서 주주 가치 증대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결과적으로 주가가 상승해 절반 이상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내 지분은 5%, 다른 사람들 지분 합쳐 95%.. 그래도 내가 '오너'?

현대차와 한진의 입장 차이는 '주주권'에 대한 입장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주주는 기업의 주인이라는 인식이 분명하다. 미국의 경우 국내와 같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가 없는 경우가 많고, 주주들이 전문 경영인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경영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를 ‘오너’ 또는 ‘주인’으로 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오너’들의 입장에서는 나머지 주주를 기업의 ‘주인’으로 인식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가들이 상당 수준의 지분을 보유하고, 본인이 투자한 금액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최소한의 모니터링(monitoring)을 하려고 하는 시도조차 ‘경영 간섭’으로 인식한다.

출처: 동아사이언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자본 시장에서 경영 간섭이 싫어 2018년 상장 폐지를 추진했다

만일 지배주주가 이런 경영 간섭을 배제하고자 한다면 회사의 모든 주식을 사들여서 상장폐지시키면 된다. 100% 지분을 소유해 상장폐지를 한 지배주주는 진짜 ‘오너’다. 이러한 진짜 오너들은 회삿돈을 자기 마음대로 써도 탈세를 제외하고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상장폐지를 하지 못하고 ‘남’의 돈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한, 남이 투자한 돈을 제대로 사용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모니터링은 경영 간섭이 아니다.

  

지배주주들은 계열사를 통해 실제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권리에 비해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소유-지배의 괴리에 따라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의 대리인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

  

대규모 상장기업의 경우 지배주주의 배당권은 5% 미만인 경우가 허다하며 나머지 95%는 ‘소액주주’로 표현되는 기관 및 개인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다. 회삿돈 중 5%만 본인 부담이고, 나머지 95%는 남이 부담하기에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유용하고자 하는 인센티브가 존재한다. 이것이 국내 기업에 존재하는 대리인 문제의 핵심이다.

'주주의 권리' 지키려면 어찌 해야 할까

국내 기업에 존재하는 지배구조 문제의 핵심은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간의 대리인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1) '오너'는 지배주주로, '소액 주주'는 '일반 주주'로 가치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2) 이사회를 포함한 경영진은 외부의 주요 주주들과 다양한 대화 채널을 확보하고

3) 이사회가 주체가 되는 객관적인 CEO 승계 절차를 확립해야 한다.
출처: 동아일보

우선 일반 주주들, 특히 일정 지분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가를 포함한 기관투자가(국민연금, BlackRock, APG 등)를 대화의 상대방으로 인정하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너’는 지배주주로, ‘소액주주’는 일반 주주로 표현할 것을 제안한다.

  

다 같은 주주지만 지배주주는 경영권을 행사한다는 차원에서 일반 주주와 달리 지배주주로 지칭하는 것이 가장 가치 중립적이며, 학술적인 용어와도 일치한다.

 

기관/외국인 투자가는 경영 간섭, 외압의 주체가 아니라 기업 가치 극대화라는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한 동반자다. 이미 삼성전자 주주들은 130만 명을 넘어섰다. 말 그대로 국민기업이다.

  

직접 주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대다수의 국민은 국민연금을 통해, 또는 기타 주식형 펀드를 통해 삼성전자, 현대차의 간접 주주다. 기업 가치가 일반 국민의 이해와 직결돼 있는 것이다.

외부의 주요 주주들과 이사회를 포함한 경영진과의 다양한 대화 채널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미국 기업 및 연기금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비공개 대화가 경영진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이었다. 기관투자가의 관여할 때,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또한 이사회/경영진과 외부의 주요 주주 간에 공동의 목표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주주들은 기업 가치 극대화가 목표인데, 경영진의 목표는 자산 규모 확대를 통한 재계 서열 상승이라면 아무리 대화를 해도 생산적이기 어렵다.

 

삼성전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것’으로 돼있는데 이 문구 어디에서도 주주 또는 기업 가치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이재용 부회장이 발표문을 통해 삼성의 목표는 ‘기업 가치 극대화’라고 명시적으로 선언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출처: 동아닷컴
지난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룹 지주회사인 SK(주)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났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해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객관적인 CEO 승계 절차를 확립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를 선임하기는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경우가 많고, 지배주주가 있는 기업에서는 대개 대표이사가 사전에 내정되고 이사회에서는 이를 사실상 추인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미국 기업의 CEO는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선임한다. 우리처럼 각종 탈법적인 방법으로 지분을 확보해 주는 승계가 아니고, 후임 CEO로 누가 가장 적합한지 후임자를 발굴한다. 이사회의 핵심적인 기능은 경영진을 관리·감독하는 것이다.

 

한전과 같이 정부가 지배주주인 기업에서는 CEO 선임에 있어서 정부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정부의 지분이 전혀 없는 포스코, KT 및 금융지주사의 CEO는 이사회가 실질적인 CEO 선임 주체가 돼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선언을 계기로 앞으로 삼성에서도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미국식 CEO 승계 절차에 대해 심도 있는 사전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99호

필자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인터비즈 조지윤 윤현종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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