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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직원 영래 씨가 '존버' 할 강원도 빈 집을 찾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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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그해 겨울은 유독 추웠다. 그럼에도 난 더 추운 곳을 찾아 산으로 향했다. 변태라서가 아니다. (…)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영래 씨의 존버 흔적

▶ 인터비즈가 직장인이 공감할 만한 우리네 존버기를 전해드립니다. 4차 산업혁명기 직장에서 분투하는 각양각색의 삶을 소개하며 함께 힘내자는 의미의 글입니다. 그 첫 편으로 소개하는 이영래(드라마앤컴퍼니 빅데이터센터 리서치팀) 씨의 글은 기자가 1시간여 동안 그를 인터뷰한 뒤 마치 이 씨에게 빙의 된 듯(?) 써 내려간 수필 같은 기록입니다. 1편 감상은 여기서. 맨 아래 다음 존버기 주인공 모집 안내 배너에도 주목해 주세요.

빈 집 줄게 새 집 다오

2016년 1~3월 이영래 씨가 숙식을 해결하며 리팩토링을 수행한 강원 평창의 한 주택

코딩하는 개발자는 건축 설계사와 같다. 프로그래밍 언어로 집을 짓는다. 논리도 중요하지만 예술적 영감도 필요하다. 그래서 사무실서 당당히 헤드셋을 착용한다.


노동요에 몸을 맡기며 창작의 템포를 찾는다. '음악은 나라가 허용한 유일한 마약'이니깐. 난 주로 차트 톱 100을 듣는다. 선호하는 노래는 없지만 난, 유행에 민감하다. 그렇게 난 사무실에서 노동자와 아티스트의 경계를 넘나든다.

다시 말해 미쓰에이의 '다른 남자 말고 너', AOA의 '심쿵해', EXID의 '위아래' 등 당시 음원 차트를 휩쓴 상큼한 리듬이 당시의 리멤버를 잉태했다. 나의 뮤즈들이다.

하지만 사용자가 80만 명을 넘어가면서 새 리듬을 찾아야 했다. 내부 단장이 필요했다. 기존은 뭐랄까, 겉은 멀쩡하지만 그 안을 흙으로 덧칠해놓은 진흙집? 거기에 코드를 덧입혀갈수록 엔지니어들은 '언젠가 무너져 내릴 수 있다'라는 위기감을 느껴야 했다. 사용자 수가 100만 명이 되기 전에 시한폭탄이 터질 것만 같았다. 대대적인 재검토가 필요했다.

빈 집을 찾아간 것은 그래서였다. 새 집을 만드는데 온전히 집중할 환경이 필요했다. 이때만큼은 나의 뮤즈도 차단해야 했다. 템포 조정이 필요했다. 그럴 수 있는 '시간과 정신의 방'이 필요하다고 최재호 대표에게 제안했다. 그러자 최 대표가 내어준 곳이 이곳이었다. 때마침 집을 비워둔 최 대표의 아버지 댁이었다.

서울에 있는 회사에서 차로 두 시간 반. 1월 눈 내린 강원 평창의 대미산 자락에 자리 잡은 소박한 숙소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것 같던 곳이다. 나를 포함, 3명의 남자 개발자가 두 달을 이곳에서 숙식하며 리팩토링에 매진했다. 우리끼리 부르는 말로 '대미 프로젝트'다. 이후 새로 들어온 개발자분들은 이때의 유산 아래 작업을 하고 계시다는걸, 꼰대처럼 알린다.

*리팩토링: 외부 동작을 바꾸지 않으면서 내부 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변경하는 프로세스를 말한다.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는 코드를 이해하기 쉽게 바꿔 추후 수정하는 것도 용이하게 바꾸기 위해서 실행한다.

당시를 회상해본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 주변에 산짐승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여기서 아침은 점심으로 해석하면 된다. 다들 새벽 3~4시까지 작업하다가 잠들고는 그때쯤 일어났기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 잠을 떨치려고 아침(?) 산책을 한 뒤 돌아왔을 때다. 그때까지 방바닥에 뻗어있는 동료를 보고 아까 본 그 발자국의 주인공이 이놈(이분) 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먹고 자는 것 빼곤 다 일만 했으니 처절하게 코를 골았고, 몰골은 날짐승으로 변해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읍내로 나가 구호물자를 조달해왔다. 소소한 낙을 얻으려 난생처음 갈비찜도 만들었다. 그 외 몇몇 요리도 그곳에서 터득했다. 백종원의 위대함을 그때 깨달았다. 30대 안팎의 남정네는 그렇게 아저씨가 돼 갔다. 존버의 사신이 돼갔다.

대미 프로젝트 당시 영래 씨네가 차려먹은 음식_영래 씨 제공

존버의 유산

스타트업에서 존버하는 기쁨이란 이런 게 아닐까. 분명 대미산에서의 존버는 춥고 배고팠다. 그래도 거기서 불꽃을 태운 흔적이 따스한 온기로 리멤버의 곳곳에 남아있다. 느려지던 로딩 타임(명함첩 동기화에 필요한), 줄어들던 서비스 확장성도 그렇게 해소됐다.


카카오톡도 서비스가 느려져가던 때에 일명 '겁나 빠른 황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인솔자의 손에 이끌려가기보단 스스로 길을 만들고 유산을 남긴다. 스타트업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물론, 불확실성은 우리를 늘 가슴 졸이게 한다. 어디서 잽만 날아와도 회사가 휘청일 수 있다. 한순간에 백수로 전락할 수 있다. 10명이던 초창기 멤버가 90명으로 늘어나는 기간, 그래서 많이들 떠났고 또 들어왔다.


드라마앤컴퍼니는 퇴사율이 20% 정도로 이 업계치곤 낮은 편이다. 그래도 누군가가 떠날 때 남은이의 심리적 동요는 있기 마련이다.

그런 와중에도 끝내 존버 정신을 불태우는 이들을 힘 빠지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외로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같은 업계 사람끼리 모인 술자리에선 "이래서 안 될 거야" "저래서 안 될 거야"라는 소위 '망할 공식'이 안주로 오르내린다. 이 업계가 원래 성공한 이보다 실패한 이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런 분위기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맑은 존버 정신을 유지하려면 걸러들어야 한다.

나의 존버기 유산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게 내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그래서 여기서 존버한다.


개발자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특성상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고 싶어 할 것인데 사실 그런 점은 약점일 수 있다. 인력이 적으니 얇고 넓게 일할 경우가 많아서다. 또 다른 한편으론, 간판을 내건 나만의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커리어상에 강점이다.

나는 앞으로 더 얼마나 존버할 수 있을까. 끝장은 한 번 봐야하지 않을까. 그래 적어도 지금은 불굴의 존버 정신이 나를 감싼다. 1화에서도 말했듯 지금은 그간 쌓아놓은 기반 위에서 마음껏 날개짓 해볼 차례이다.


리멤버 커리어가 뭔가 좋아졌다고 느껴지신다면 '그속을 감싸는 화려한 나의 손길'을 가늠해보시길 부탁드린다. 나는 존버한다 고로 유산을 남긴다. 다음 존버기의 주인공은 어떤 분투를 하고 있을지, 기다려진다.


인터비즈 김재형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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