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늘어나는 건 이혼율일까, 출산율일까?

조회수 2020. 4. 12.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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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는 미국의 많은 주에는 외출금지령이 내려져있다. 아이들 학교는 언제 다시 열지 모르는 긴 휴교에 들어갔고, 많은 이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식료품점을 제외한 상점들은 대부분 다 문을 닫았고, 음식점은 배달이나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집 밖에 나오지 말라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시애틀 지역에서 ‘웃픈’ 뉴스가 나왔다. 2월 29일~3월 13일 가정폭력으로 인한 911 신고가 1년 전 같은 기간 502회에서 614건으로 22%가 증가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는 전체적인 911 신고 건수가 줄어든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시애틀 옆 동네 벨뷰도 사정은 비슷하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전체 911 신고건수가 50% 감소했지만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오히려 17% 늘어났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따르면 부부 사이의 말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폭력이 일어나지는 않아 체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경찰은 사람들이 집에 갇혀 지내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말싸움을 하다 결국 신고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부부들이 집안에서 함께 활동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부부싸움만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에선 이동 제한 조치가 완화된 3월 중순 이후 이혼 소송 수임 건수가 25% 늘었다는 얘기도 들리고 한동안 문을 닫았던 중국 산시성 시안시가 혼인등기소가 업무를 재개하자마자 이혼 신청이 물밀듯 쏟아졌다는 소식도 들린다. 영국의 유명 이혼 변호사인 피오나 섀클턴은 “이혼 전문변호사들의 대목은 여름 휴가철과 크리스마스 직후와 같이 부부들이 오랜 기간 함께 지낸 직후"라며 "가족들이 장기간 한 공간에 머물 때를 상상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이나 중국만 이런 건 아니리라. 한국에 사는 한 친구는 “부부 사이의 긴장 때문에 재택근무인데도 일부러 출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개인적인 경험이 떠올랐다. 5년 동안 기러기 아빠로 지내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미국에서 다시 함께 살게 됐을 때였다. 가족이 다시 같이 살게 돼 날아갈 듯이 기뻤지만 그 기쁨은 잠시일 뿐이었다. 나와 아내, 나와 딸, 그리고 그 역학 관계에 의해 집안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소로 바뀌어 갔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오랜만에 얼굴을 맞대고 같이 생활을 하는 건 연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아내와 딸은 자신들만의 루틴에 갑작스럽게 남편이자 아빠인 나라는 인물이 불쑥 들어오는 경험을 했을 테고 나는 그 동안 조금씩 변한 아내와 딸아이의 모습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만난 첫 1년을 서로에게 다시 익숙해지는 데 썼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초 해외여행자유화가 허용됐을 때 설레는 꿈을 안고 함께 배낭여행을 떠났다가 싸우고 따로 돌아온 주변의 친구들이 꽤 있었다. 크게 싸우진 않았더라도 함께 여행을 마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여행을 가면 사람마다 가고 싶은 곳이 다 다르고 더 머물고 싶은 곳도 다르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24시간을 같이 붙어 다니다 보면 이래저래 마음이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다.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하고 싶고 한 없이 작은 이유로 삐지는. 여행 중에 이런 일이 생기면 각자 갈 길을 가는 것만큼 쉬운 해결방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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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다르다. 각자 갈 길을 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에서 우리가 가정이라고 부르는 곳이 진정으로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곳인지부터 약간 의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같이 살고는 있지만 대화는 대부분 문자로 하고 하루에 얼굴을 마주 보는 시간은 채 몇 시간 되지도 않는 곳이 우리의 가정은 아닐까.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에도 서로를 보기보다는 각자의 화면을 보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은 건 아닐까. 우리는 대체 배우자와 자식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코로나바이러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정과 결혼,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미국 버지니아대의 결혼 전문가인 브래드퍼드 윌콕스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크게 줄어들고 결혼한 커플 중에도 이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특히 결혼을 로맨틱한 관계로만 보는 ‘소울 메이트 모델(soul mate model)’ 부부들의 이혼이 늘어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윌콕스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욱 돈독한 관계를 만드는 부부도 많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고난의 시기에 인간은 이타적이 되며 부부 관계 또한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엔 가족만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결국에는 많은 부부들이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지로 경제적인 타격이 컸던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 이혼율이 20%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시안의 혼인등기소 관계자들은 이혼 신청을 하러 온 시민들에게 ”결혼과 이혼은 인생의 큰 일이므로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며 ”잠시의 불화로 가볍게 이혼을 결정하지 않길 바란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서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지 않다가 갑자기 집에 갇혀 하루 종일 부대끼다 보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많이 보일 테고 그러다가 다툴 수도 있다. 사람이니까 당연한 거다. 하지만 작은 싸움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어쩌면 싸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싸움은 무조건 불화라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시선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싸움도 함께 겪는 고난과 경험의 일부라는 인식을 나눈다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싸워서 끝을 보는 것, 즉 내가 이기고, 상대방의 사과를 받아내고, 상대방의 행동을 고치겠다는 목적자체를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런 마음의 상태를 두고 ‘포기’와 뭐가 다르냐며 자조 섞인 판단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기’도 사랑의 일부가 아니라고 누가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의 티격태격 싸움을 딛고 더욱 돈독한 가족과 부부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면 이혼율이 아니라 출산율이 높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 참고 글

- 시애틀N: 시애틀지역 외출금지령에 부부싸움만 늘었다,

'코로나 스트레스' 이혼하는 중국 부부 25% 급증

- 월스트리트저널: After the Pandemic: Marriage With Family At Its Center --- In trying times, we realize the meaning of commitment.

- HUFFPOST: [뉴디터의 신혼일기] 코로나19로 인한 감금상태가 부부에게 미치는 영향

- 뉴시스: 코로나19 격리생활, 부부관계에 악재? …英변호사 "이혼 늘 것"

필자 김선우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문지리학과 졸업

- 워싱턴대(시애틀) 경영학 석사

-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 <40세에 은퇴하다> 작가

인터비즈 박소영 김재형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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