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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가 정말 위기일까? 인보사, 신라젠 사태 이후 던져진 과제

조회수 2020. 3. 22.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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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사, 신라젠 사태로 비상등 켜진 바이오 시장

인보사 사태의 당사자 코오롱, 고의적 은폐 의심

신라젠은 단일 데이터에 의존해 개발 강행하다 낭패

잘못됐을 때 멈출 수 있는 용기도

신약 개발 시 돈의 관점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종교는 믿음이란 문화에 바탕을 두고 과학은 의심이란 문화에 바탕을 둔다(Religion is a culture of faith; Science is a culture of doubt.)" 과학의 대중화에 힘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 박사가 한 말이다. 가설에 합리적 비판을 덧입혀야 한다는 의미다. DBR 287호에서는 지난해 한해 동안 바이오 업계 내 큰 화두였던 두 기업의 사례를 소개한다. 코오롱생명과학과 신라젠이 그 당사자다. '끊임없이 의심하라'라는 과학의 기본을 망각해 바이오 시장 전체의 신뢰까지 무너뜨린 두 업체의 사례는 향후 바이오 업계가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2019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오헬스 국가 비전 선포식'에서 바이오헬스 산업을 3대 신산업으로 선정했고 2030년까지 제약-의료기기 세계 시장점유율 6%, 500억 달러, 5대 수출 주력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대통령이 직접 국가 비전을 선포하면서 제약-바이오산업에 힘이 실릴 무렵 한창 꽃피우던 신약 개발 업계에 연속적인 악재가 터졌다.

첫 번째 악재는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허가 취소'사건이었다. 29번째 국산 신약이자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로 주목받던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의 주성분이 허가 당시 제출된 자료에 기재된 것과 다르다는 게 밝혀지면서 2019년 7월 3일 품목 허가가 취소된 것이다. 시중에 이미 유통돼 3700명이 넘는 환자가 투여받은 약 성분이 뒤바뀌었다는 소식이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두 번째 악재는 '신라젠의 펙사벡 임상 실패'사건이었다. 2019년 8월 2일 글로벌 임상 3상이 한창이던 신라젠의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 펙사벡에 대해 미국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가 임상 중단을 권고한 것이다. 사실상 약의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사망선고나 다름없었다. 이 두 사태가 터지고난 뒤 국내 바이오 장(場)은 반토막이 났다.


이 두 기업의 실패와 몰락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두 사태가 초래된 원인은 근본적으로 의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기업의 다양한 전문가의 크로스 체크와 회의적 시각을 존중하지 않고 투자 유치나 주가 부양 등을 위해 비즈니스에만 신경 썼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감추고 투자자, 주주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던 도덕적 해이도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각 사례의 문제를 세부적으로 따져봤다.

인보사 사태의 모럴해저드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
인보사 개발부터 허가 취소까지

세포 유전자치료제 인보사 K가 2017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산 신약 29호로 허가받은지 2년이 지나지 않아 일부 세포가 허가 당시 제출된 서류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임상 완료 후 허가받은 신약 성분이 새롭게 밝혀진 건 전 세계에서 인보사가 처음이다.



세포가 뒤바뀐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코오롱생명과학의 도덕적 해이였다. 식약처 조사에 따르면 코오롱생명과학은 2017년 3월 이미 인보사의 위탁 제조사로부터 인보사 내 성분에 이상이 있다는 문제를 공식적으로 고지 받았었다. 무려 사건 발생 2년 전 코오롱생명과학 측은 제품의 이상을 감지하고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오롱생명과학은 2017년 7월 생산을 밀어붙였고 이 대목에서 고의적 은폐를 엿볼 수 있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
코오롱생명과학 주가

코오롱생명과학은 여전히 고의적 은폐를 부인하고 있지만 문제의 인지와 발표 시점 간 간극이 있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인보사 내 구성세포가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로 확인이 된 즉시 식약처에 보고하고 투자자에게 알려 임상을 중단했어야 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데이터를 대외적으로 공표했어야 한다.


국내 바이오 벤처들은 파이프라인이 적다 보니 쉽사리 개발을 중단(hold)하지 못한다. 매몰비용이 큰 신약 개발의 특성상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더 어렵다. 코오롱생명과학이 몰락한 이유도 자사의 불이익을 감수하며 주요 파이프라인을 보류하는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라 풀이됀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 약의 결함을 인정하는 순간 회사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개발 중인 약에서 환자 건강에 영향을 미칠 만한 빨간불이 켜진 이후에도 생산을 밀어붙였다는 것은 경영진의 단순 실책이라 보기엔 법적, 윤리적 책임이 엄중하다.

단일데이터에 의존했던 신라젠

2019년 8월 2일 금요일 신라젠은 간암 환자 대상으로 한 신약 펙사벡의 글로벌 임상 3상 무용성 평가 결과, 독립적인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로부터 임상 중단을 선고받았다. 펙사벡이 단독 치료제로서 가치가 없으니 임상을 지속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진 것이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
신라젠 주가

신라젠은 권고를 받아들여 8월 4일 임상 3상 조기 종료를 발표했고 회사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우두 바이러스 기반 면역 항암제 펙사벡은 신라젠 자사의 시가총액뿐 아니라 주식시장 내 바이오 붐을 이끌던 유망주였던 만큼 바이오 업계 내 미친 파장 또한 컸다.



사실 신라젠 사태는 국내 시장 일선에서 예견됐던 일이다. 당시 우두 바이러스가 생체 내에서 약효를 가진다는 것을 증명한 데이터는 신라젠 데이터가 유일했고 약효를 뒷받침할 제3기관의 다른 데이터도 없었다. 2015년 1000억 원 규모의 제약 펀드투자 자문위원회가 신라젠에 투자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문위원회는 신라젠이 단일 데이터를 근거로 임상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예견된 위험성에도 국내에서 펙사벡을 향한 맹목적 믿음은 커져갔고 2016년 말 신라젠이 코스닥에 입성한 뒤 2년간 시가총액은 5배 뛰었다. 의심스러울 정도로 높게 치솟는 신라젠의 시가총액과 달리 해외에서 평가한 신라젠의 모습은 상반됐다. 국내 시장 애널리스트들 가운데 '투자해야 할 이유(BUY)'를 말하는 보고서는 많았지만 '투자하지 말아야 할 이유(HOLD)'를 말하는 보고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신라젠 사태로 인한 투자자 손실을 더 키운 꼴이었다.



임상 중단을 앞두고 신라젠의 임원진들은 잇달아 지분을 매각했다. 2019년 7월 8일 신라젠 현직 전무가 7월 1일부터 5일까지 주식 16만 7777주를 매도했다고 공시하면서 이튿날 주가는 급락했다. 경영진과 임직원들이 만약 임상이 중단될 것이란 내부정보를 알고도 주식을 팔았다면 이는 명백한 도덕적 해이다. 몰랐다 해도 펙사벡의 위험성을 의심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개발을 밀어붙인 책임은 피할 길이 없다.

코오롱생명과학-신라젠 사태가 남긴 시사점

두 바이오 기업의 실패를 통해 바이오 업계는 리스크 관리 시 내부 프로세스를 어떻게 운영해 나갈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2019년 죽음의 계곡에서 추락한 코오롱생명과학-신라젠의 실패를 딛고 바이오 업계는 전진해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신약개발은 '끝이 전부'다. 바이오 의약품은 초기 개발을 위한 디자인이 이후 과정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초기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할 때, FDA 허가 후 미래 상황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기업은 리스크가 발생하기 전 제품이 품고 있는 합리적 의심을 해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다중으로 검토해야 한다. 회사 내부 자체 검증은 물론이고 제3자의 대조 검토를 활용해 이중삼중 검토해야 한다. 경영진은 시간과 돈이 들더라도 규제기관에 서류를 제출하기 직전까지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며 다각도로 데이터를 검증해야 한다.


사람들이 개발 중인 신약에 거는 기대 혹은 단순 자본주의 논리로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또다시 제2의 신라젠 사태를 겪게 될 것이다. 바이오 제약 기업 입장에서 영리를 좇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신약개발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아픈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므로 개발 단계에서의 문제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멈출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87호

필자 배진건 배진바이오사이언스 대표

인터비즈 박소영 김재형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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