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팔던 '이 기업'이 '좀비 기업'이 된 이유는?

조회수 2020. 1. 21.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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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설립된 미국 신발 브랜드 '탐스'는 기업 가치가 한때 6000억 원을 넘어설 정도로 성공한 사회적 기업이었다. 특히 소비에 기부를 더한 *퍼네이션(funation) 신드롬을 일으킨 주역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판매된 신발 만큼 '제 3국' 어린이에게 신발을 무료로 제공하는 새로운 기부 방식이었다. 이는 소비자의 착한 본능(?)을 자극하며 당시 탐스의 고속 성장을 이끈 주요 요인으로 평가 받곤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초기 분위기와는 달리 최근 탐스는 폐사 직전에 놓인 상태이다. 지난해 말 미국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탐스를 투자 부적격 등급인 '정크' 수준으로 강등했다. 또한 3억 달러(약 3480억 원)의 채무 재조정 과정에서 탐스의 소유권은 채권단으로 넘어갔다. 사실상 파산을 눈앞에 둔 처지다. "착한 기업이 성공한다"는 공식을 만든 탐스가 이처럼 좀비 기업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퍼네이션(funation): 퍼네이션이란 'fun'과 'donation'의 합성어로 주로 소비를 하면서 이뤄지는 기부를 뜻한다. 2010년 전후 대세로 떠오른 기부 트렌드이자 일종의 마케팅 기법이다.

착한 소비의 전제 조건

탐스는 아르헨티나 전통 신발인 '알파르가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열풍을 일으켰다. 가볍고 착용하기 편한데다가 이국적인 디자인을 갖춘 이 '슬립온 슈즈'는 기존 샌들이나 스니커즈를 대체할 신(新) 패션이었다. 제시카 알바, 잭 애프론 등 할리우드 스타가 착용한 사진이 공개되고, 유명 패션지 보그에도 소개되면서 탐스의 신발은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렸다.

출처: 탐스 인스타그램

퍼네이션은 이 열기를 한층 더 뜨겁게 만드는 추가 요인이었다. 소비자에게 이 신발을 샀을 때 추가로 얻을 수 있는 효용 하나를 덧붙인 셈이다. 애초에 괜찮은 상품이 아니었다면, 그 추가 효용을 고민하기도 전에 소비자는 눈길을 돌렸을 가능성이 높다. 획기적인 기부 방식이라 퍼네이션이 주목받긴 했지만, 이것이 탐스의 흥행을 이끈 핵심 동력이라고 보긴 어렵다.


탐스가 초기 슬립온 슈즈의 성공 이후 제대로 된 후속 제품을 내놓지 못하자 이 문제는 더욱 명확해졌다. 지금까지도 탐스 매출의 절반 이상은 이 초기 성공 모델(제품)에서 나온다. 그 사이 탐스의 디자인이나 기부 방식을 벤치마킹한 경쟁사들이 늘어났다. 독특함과 제품 경쟁력이 사라지자 한때 5억 달러에 달했던 매출은 2018년 3억 3600만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수익이 줄면서 빚은 쌓여갔고 결국, 이번에 소유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결국 제품 경쟁력 없이 선한 가치만으로는 회사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착한 리더의 패착

물론, 탐스가 후속 흥행작 발굴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알파르가타 이후에도 레이스업 스니커즈, 코크 웨지 등 새로운 디자인의 신발을 여럿 내놓았다. 샤를리즈 테론(Charlize Theron )과 같은 인기 스타와의 협업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하지만 그 디자인이나 마케팅 방식은 초기 때와 비교해 신선함이 떨어졌다. 그 사이 급증한 모방 제품도 걸림돌이었다.

출처: pinterest
탐스 창립자 마이코스키

이 와중에 블레이크 마이코스키 창업가는 신발 사업의 경쟁력 강화보단 또 다른 '착한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애초에 그는 아르헨티나 여행 중 맨발로 거리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고 이들에게 신발을 신겨주겠다는 목적으로 탐스를 설립했다. 회사의 성장이나 존속이 아닌 기부가 그의 경영에 1순위 목표였던 셈이다.


1차 목표(신발 기부)를 달성한 이후 그는 탐스 안경(안경 하나를 팔 때마다 안과 질환 환자 1명을 치료), 탐스 커피(커피 한 잔을 팔 때마다 식수 한 병 기부) 등으로 기부에 초점을 둔 사업을 늘렸다. 자신을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최고신발기부자(Chief Shoe Giver)"라고 부르는 등 여러 면에서 그는 사업 그 자체보단 결과(기부)에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경영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2016년 스타벅스 사장 출신의 전문경영인이 그의 자리를 대체한다.


일각에선 2014년 마이코스키 창업가가 자신의 지분 절반을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에 매각한 것이 또 다른 패착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수 당시 베인캐피탈은 "탐스의 가치 확장을 지원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 실적에 집중하며 탐스를 빚더미로 내몰았다. 실적이 안 좋아질 때마다 탐스 자산을 담보로 빚을 내 조달한 것이다. 그 부채는 지금 탐스의 목을 짓누르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속가능한 '착한 소비'는 결국, 제품 경쟁력이 뒷받침 돼야한다. 단일 상품에만 의존했던 탐스가 이를 증명하는 대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퍼네이션이란 색다른 기부 트렌드도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 추가 요인이었다. 성공을 담보하는 충분조건이 아닌 것이다. 퍼네이션 열풍을 이끌었던 탐스의 사례는 회사 경영의 기본이라고 볼 수 있는 '제품 경쟁력 강화'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인터비즈 이다희 김재형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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