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 8천억' 잭팟 터뜨린 배민의 조직문화는 어떻게 다를까

조회수 2019. 12. 22.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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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최근 국내 1위 배달 앱 ‘배달의민족(이하 배민)’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이 40억 달러(약 4조 7500억 원)의 잭팟을 터트렸다. 우아한형제들이 지난 13일 지분 87%를 독일계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DH는 국내에서 배달 앱 2·3위 ‘요기요’ ‘배달통’을 운영하고 있는 독일계 글로벌 배달 서비스 기업이다. 이번 인수합병 소식을 보는 시장의 시선은 우호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토종기업임을 강조했던 배달의민족이 외국계 자본에 인수됐다는 비판과 함께 시장 1위 기업과 2,3위 기업이 합쳐짐으로써 독과점 논란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국내 스타트업계의 모범 사례로 불렸던 '배민다움'이라는 우아한형제들의 조직문화가 앞으로도 과연 지속 가능할지 여부다. 배달 앱 '배달의 민족' 서비스를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일찌감치 수평적이고 열린 조직 문화로 유명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가 있었다. (DBR 291호 기사 참조) 하지만 이번 인수로 배민은 태생이 다르고 성장 전략과 문화가 다른 독일계 회사의 일원이 됐다. 향후 배민의 배민다움이 계속 지켜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삼성, 기아차, LG 등 대기업들도 배우러 오는 배민의 문화, '배민다움'

'엄격한 규율 위에서의 자율'이 보장되는 문화

우아한형제들의 조직문화를 한 줄로 표현하면 위와 같다. HR 전략 관점에서 우아한형제들은 국내 스타트업 업계를 선도해온 기업이다. 실제로 대기업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배민의 조직 문화가 우아한형제들의 성공 비결이라 생각하고 이를 배우기 위해 우아한형제들 사옥을 찾는다. 그렇지만, 사실 우아한형제들은 생긴 지 6년이 지나도록 인사부서를 만들지 않았다. 관리와 통제 중심인 HR 부서의 필요성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이 커지면서 배민다운 문화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라도 조직에 튼튼한 골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17년 즈음 IT 업체 출신의 인사 임원을 영입하고'엄격한 규율 위에서의 자율'이 가능하도록 근태와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만들었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
배민은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를 인쇄한 출력물을 사무실에 붙여놨다

배민 문화의 본질은 '업무는 수직적이되 인간관계는 수평적'인 독특한 조직문화다.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규율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문화, 어떻게 탄생했을까? 규율과 자유로움은 '자율과 자치'에서 나온다. 중요 의사결정을 직원들이 함께 결정한다. 회사의 비전도 창업자가 만들어 액자에 끼워두는 게 아니라 전 직원이 함께 만든다. 직원들 개개인이 갖는 생각들을 함께 이루자는 의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와'우아한 버킷리스트'다.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는 임직원들의 행동 약속이다. 이 약속 하나하나에는 우아한 형제들의 핵심 가치인 '규율 위의 자율, 스타보다 팀워크'가 잘 녹아 있다. 또, 우아한 버킷리스트에는 주 35시간 근무, 주 4.5일제, 책이 널브러져 있는 사무실, 월요일 오후 출근과 같이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버킷리스트 수십 개 중 월요일 1시 출근, 주 35시간 근무제, 주 4.5일제를 비롯해 대부분이 실제로 이뤄졌다. '대표님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버킷리스트도 받아들여져 매주 수요일 아침 9시부터 30분간 '우수타(우아한 수다타임)'라는 시간을 가진다. 또, 책이 널브러지도록 사서 읽으라고 도서 구입비는 무제한이다. 이외에도 전 부서의 구성원 4~6명이 랜덤으로 조를 이뤄 한 달에 한 번씩 점심시간을 보내는 '우아한 런치', 입학식, 졸업식, 장기자랑 등 자녀의 학교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학부모 특별 휴가'를 지급한다.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말 거는 사무실

또한 배달의 민족 사무실은 '시끌시끌'하다. 일반 기업의 사무실이 도서관처럼 정숙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래서 항상 활기찬 공기가 가득하다. 직원들의 표정에는 자유로움이 살아있고 사무실 곳곳에선 배민 특유의 재미난 문구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퇴근할 때는 인사하지 않습니다'나 '휴가에는 사유가 없습니다'처럼 직장인들이 들으면 '심쿵'할 만한 문구들은 방문하는 이들로 하여금 설레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재밌는 문장들은 마치 사무실이 직원들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딱딱할 수 있는 사무실이란 공간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환기시킨다.

인사팀은 알겠는데 '피플팀'은 뭐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꽃을 피울 팀이 필요하다"

인사팀보다 먼저 생긴 '피플팀'

우아한형제들에는 인사팀과는 별도로 다른 회사에 없는 '피플팀'이 있다. 피플팀은 잘 가꾼 조직문화로 기업 자체를 혁신시키고 다음 세대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2013년 11월 탄생했다. 인사팀이 생기기도 전에 대표 직속의 피플팀이라는 전례 없는 조직을 만들었다. 피플팀은 직원을 관리의 대상이 아닌 보살핌의 대상으로 본다. 우아한형제들의 '엄마'인 셈이다. 이들의 역할은 한 명의 직원도 소외되지 않도록 모두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고 모두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 6~7명으로 구성되는 피플팀은 직원들의 식사와 간식을 챙기고, 기념일도 잊지 않도록 부서장까지 알려주고, 가족 생일 같은 날에는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챙긴다. 힘들어하는 직원들과 같이 대화하며 도와줄 방법을 찾는 것도 이 팀의 역할이다.

출처: 우아한 형제들 피플실 블로그
배민의 '피플팀'

많은 기업들이 조직의 복지를 위해 다양한 제도를 두고 있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존재만 할 뿐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플팀은 허상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조직의 제도들을 촉진하고 현실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일례로'지만가(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활성화시킨 것도 피플팀의 대표적인 성과다. '지만가'는 본인이나 배우자, 부모님 혹은 자녀의 생일, 기념일에는 4시에 조기 퇴근할 수 있는 제도이다. 신입 직원을 비롯해 직급을 불문하고 누구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데 만에 하나, 제도의 대상자가 4시가 넘어서도 일을 하고 있으면 피플팀이 나서서 사무실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배민의 복지 제도는 회사의 복지 제도를 직원들이 선택해서 자발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피플팀을 통해 회사가 직원에게 강요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복지 제도를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쓰게 하면 다른 직원이나 상사의 눈치를 보다가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방지하고 제도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피플팀이 존재한다. 배민의 박세헌 경영지원실장은 지난해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사람이 어떤 때에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지 고민했는데, 결론은 구성원들이 내외부적으로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좋은 사람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자는 게 근로시간 단축의 계기가 됐다"라고 말했다.

또, 피플팀은 직원이 아프면 약을 챙겨주고 병원에 데려가고 회사의 기념일 등 중요한 사내 행사를 기획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피플팀은 회사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현재는 피플팀과 함께 '사내방문팀'과 'CSR'팀으로 구성된 '피플실'이 '배민다움'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일반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내 방문 프로그램 '오세요DAY'와 구성원들의 가족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배민패밀리투어'도 진행하고 있다. 이 밖에도 직원들과 함께 봉사하는 '우아한땀방울', 동료들과 함께 환경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는 '지구도 싱긋' 등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조직 내의 소통을 늘리고 끈끈한 관계를 장려하고 있다. '피플실'이라는 배민만의 독특한 혁신이 지금의 '배민스러운 문화'를 만들어낸 단초였다.

깜짝 매각이 불러온 후폭풍, 배민은 배민다울 수 있을까?

우아한형제들의 인수합병 소식에 여론의 시선이 따갑다. 일단 독일 기업에 인수됐다는 사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배달의 민족의 성공에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광고 카피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매각 소식을 전하는 기사 댓글에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이다. 배달의 민족이 아니라 게르만 민족이었다"라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소상공인들과 상생의 가치를 내세우며 성장해온 업체다 보니 "불경기에 소상공인 등쳐서 사업 키워서 회사를 외국에 팔아 돈방석에 앉았다"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아한형제들의 문화의 구심점이 김봉진 대표였다는 점에서 향후 배민이 이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대표는 "사장이 잘 쉬어야 한다"라며 창업 3년 차부터 주말 출근을 하지 않았고 1,2년 차 직원들과도 메신저로 스스럼없이 소통을 하고 "할 말이 있으면 사장이 가면 된다"라는 철학으로 사무실 내 실무자들을 만나러 다니는 CEO였다. 또 우아한형제들만의 조직문화인 '자율과 책임의 문화'를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태생과 문화적 배경이 다른 독일 기업에 회사를 매각했을 때 직원들이 느낄 충격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에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한 기업은 기존의 우아한형제들이 보여줬던 전략과는 대조적으로 톱스타 연예인을 내세워 인지도를 높이고 할인 쿠폰 등을 지급해 이용자들을 모으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유명했던 회사다. 향후 배민의 전략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아한형제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조직 문화가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조직을 혁신해 새로운 시대의 젊은 인재들을 모으고 싶어 하는 많은 기업들이 우아한형제들 사무실을 방문하는 현상은 '배민다움'이 조직 문화의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배우고 싶은 조직 문화의 대명사였던 '배민다움'은 과연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까?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19호

필자 이기대 민관협력네트워크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인터비즈 김동섭 장재웅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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