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한화가 포기한 '이 사업', "대체 왜?"

조회수 2019. 11. 13.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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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 두산그룹은 이사회를 열고 면세 특허권 반납을 결정했다. 면세 사업 기한인 5년도 다 채우지 못한 3년 5개월여 만의 결정이었다. 지난 4월에는 한화갤러리아가 두산보다 앞서 면세 특허권을 반납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여의도 63빌딩에 위치하고 있던 갤러리아면세점63은 지난 9월 말 정식으로 영업을 종료했다. 불과 4년 전만 하더라도 면세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불렸다. 두산과 한화 역시 치열한 입찰전을 거쳐 면세 특허권을 얻었다. 굴지의 대기업인 이들조차 5년을 버티지 못하고 면세 사업을 정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따이궁'을 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면세 사업

출처: 동아일보
많은 고객들로 붐비는 국내 면세점

국내 면세 사업은 이제 ‘따이궁 확보’가 최대의 관건이 되었다. 따이궁이란 중국어로 ‘보따리상’을 뜻한다. 본래 국내 면세 사업은 한국에 ‘쇼핑 관광’ 등을 즐기러 오는 큰 손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사드 보복 이후 판도는 바뀌었다. ‘유커’라 불리던 중국인 관광객 대상이 아닌 보따리상 ‘따이궁’이 주된 소비자가 된 것이다. 따이궁들은 중국에서 주문받은 물품들을 기계적으로 대량 구매해가는 사람들이다. 한국 화장품 등의 인기가 중국 본토에서 높다. 한국 화장품은 중국 현지 판매가보다 국내 면세점 판매 가격이 크게 40~50%까지 저렴하다. 그러다 보니 국내 면세점에서 대량 구매해 중간 판매자 역할을 하는 따이궁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제 국내 면세 사업은 중국인 관광객 ‘유커’를 대상으로 하는 B2C(Business to Customer) 모델에서 따이궁을 상대하는 B2B(Business to Business) 모델로 변화했다. 국내 면세 시장의 따이궁 의존도도 높은 편이다. 추정치로 80% 이상의 고객이 따이궁이라고 알려진 바 있다.

따이궁의 선택은 빅3라 불리는 롯데, 신라, 신세계 면세점이었다. 국내 면세 사업에서 빅3의 점유율은 전체의 80%가 넘는다. 말 그대로 ‘3강 체제’인 것이다. 이들은 자체적인 유통망을 갖춘 기업이며, 자본력을 바탕으로 따이궁을 사로잡기 위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3대 면세점들은 모두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대중적인 결제 수단이다. 신세계면세점은 한국 면세업계 최초로 위챗페이 ‘안면인식 결제’ 서비스를 도입했다. 롯데면세점은 알리페이 결제 시 5% 추가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알리페이 등급에 따라 롯데면세점 VIP 등급을 발급해주기도 한다. 신라면세점은 지난 3월, 위챗페이 내에서 인터넷면세점 가입과 상품 결제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해당 시스템 도입 후 4개월 만에 신라면세점 중국인 회원 수가 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월에는 면세점 최대 성수기인 중국 광군제(양력 11월 11일)가 있다. 3대 면세점은 중국인 소비자를 유치하기 위한 ‘광군제 마케팅’에 나섰다. 최대 70%를 할인해주거나, 중국 3대 결제수단인 알리페이, 위챗페이, 유니온페이 등의 구매 수단 별 최대 15만 원의 적립금을 증정하거나, 갤럭시 노트10, 트립닷컴 이용권 3000위안 등의 화려한 경품을 내걸기도 했다.

또한 면세 사업에 있어 입지 조건도 매우 중요하다. 따이궁은 대규모 보따리상이기 때문에 짧은 이동 거리 내에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수량만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 있어 쇼핑의 성지이자 대형 면세점이 밀집해있는 명동 일대가 가장 좋은 입지 조건이다. 명동에는 터줏대감 롯데면세점 본점이 들어서 있다. 빅3 중 가장 후발주자인 신세계면세점이 단기간 내에 빅3에 진입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명동 입지’를 꼽는다. 명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쇼핑 관광과 따이궁 행렬이 면세업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동에서 벗어난 입지조건을 가진 한화갤러리아63면세점(서울 여의도 소재)이나 두산 두타면세점(서울 동대문 소재)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빅3도 녹록지 않다. 따이궁 유치 경쟁이 '출혈 경쟁'으로?

올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국내 면세점 전체 매출은 18조 983억 원. 이는 2018년도 전체 매출인 18조 9602조 원에 근접한 수치다. 올해 9월 국내 면세점 매출은 2조 2421억 원으로, 8월에 이어 월간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을 경신했다. 수치 상으로만 보자면 면세 시장은 매우 화려한 성장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먼저 빅3 롯데, 신라, 신세계 면세점의 매출은 매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수익성은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과거 10%를 넘던 빅3의 영업이익률은 현재 2~5% 수준으로 떨어졌다. 신라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신라의 3분기 매출액은 1조 5049억 원으로 작년 같은 시기와 비교했을 때 23.3% 증가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574억 원으로 작년에 비해 15.6% 감소한 상황이다.

출처: 동아일보

국내 면세점들의 치열한 따이궁 유치 경쟁은 이제 ‘출혈 경쟁’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공격적인 마케팅뿐만 아니다. 유커에서 따이궁으로 주요 고객층이 바뀌면서 면세업계에는 큰 부담이 생겼다. 바로 ‘송객 수수료’다. 개별 면세점들은 따이궁 유치를 위해 여행사에 송객 수수료를 부담하고 있다. 현재 송객 수수료는 구매 물품 금액의 20% 안팎이지만, 명절이나 광군제 등 성수기에는 최대 40%까지 치솟는다는 후문이 있다. 이러한 송객 수수료는 면세사업자 입장에서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빅3 등 대기업 면세점들을 제외한 중소 중견 면세점들은 송객 수수료 부담으로 인해 일찌감치 따이궁 유치를 포기한 곳도 많다.

중소·중견 면세점의 경우 하향 그래프가 더욱 큰 폭으로 그려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1973년 문을 연 국내 최초 시내 면세점인 동화면세점은 3대 면세점에 밀려 대대적인 구조조정 및 브랜드 간소화를 추진한 상황이다. 3대 명품이라 불리는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도 모두 동화면세점에서 철수했다. 동화면세점의 올 상반기 매출은 1490억 원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20%가량 감소한 상황이다.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SM면세점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SM면세점의 모회사인 하나투어도 일본 불매 등과 겹쳐 실적이 부진한 상황이다. 2016년 설립한 SM 면세점은 설립 초기 7개 층을 운영했지만 현재는 2개 층만 운영하고 있다. 올 상반기 매출은 254억 원으로 작년 상반기 대비 12.7% 감소했다. 빅3도 휘청하는 면세사업 분야에서 중소-중견 면세점이 버텨낼 수 있을지, 이들의 행보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옛말... 그런데도 면세 사업 허가를 더 내준다고?

정부는 11월 중순부터 대기업 시내 면세점 신규 사업자 선정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입찰에서는 서울 3곳, 광주 1곳, 인천 1곳, 충남 1곳 등 전국 6곳에 신규 특허권이 나오게 된다.

4년 전만 하더라도 수많은 기업들이 입찰 경쟁에 너 나 할 것 없이 뛰어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2015년까지만 해도 6개였던 시내 면세점은 2015~2016년 사이 면세사업권 남발로 인해 우후죽순 들어섰다. 그 결과 2018년에는 시내 면세점이 총 13개로 증가했다. 하지만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은 면세 시장에 치명타를 날렸다. 면세업계에서 사드 보복 여파는 아직까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 여기에 신규 특허가 발급되면 시내면세점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출처: 한국면세점협회

이번 면세사업권 입찰에 관심을 보인 회사는 지금까지 현대백화점뿐이다. 현대백화점은 두산이 반납하기로 밝힌 두타면세점 사업권을 승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뒤늦게 면세시장에 뛰어든 현대백화점은 강남에 위치한 현대백화점면세점 무역센터점만 운영하고 있다. 따이궁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현대백화점 면세점의 강북 진출이 필요하다는 전략인 것이다. 하지만 무역센터점의 적자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두타면세점 사업권을 이어받는 것은 자칫 무리한 사업 확장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현대백화점 측의 결정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면세사업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빅3 업체들조차 이번 시내 면세점 신규 입찰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M 면세점이나 신촌 소재의 탑시티 면세점의 고전을 지켜본 중소-중견 기업 분야 입찰은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면세 사업은 세계 1위 규모다. 개별 면세점으로 보아도 1위인 스위스 듀프리와 2위 롯데 면세점 간의 차이는 크지 않으며, 신라 면세점도 세계 3위 규모 면세점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국내 면세사업의 유명세는 오래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요 고객의 80% 이상이 따이궁인 기형적 구조는 언제 또다시 위협으로 작용할지 알 수 없다. 면세사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유지하려면 이제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할 때다.

인터비즈 윤현종 박윤주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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