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타자'였던 '이 사람'이 '투수'가 된 이유

조회수 2019. 11. 9.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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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아일보
'천재타자'로 알려져있는 프로야그 선수 스즈키 이치로

올해 초 은퇴한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 선수 스즈키 이치로는 항상 마운드에 서고 싶어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엄청난 타자였고 빼어난 우익수였지만 가는 곳마다 감독들에게 “혹시 투수가 필요하면 저는 불러 주세요”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그랬고 뉴욕 양키스에서 뛸 때도 그랬다. 그러다가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등판 기회를 한번 얻었다. 2015년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8회에 등판해 2안타를 맞고 1실점을 했다. 18개의 투구 중 11개가 스트라이트크였으며 최고 구속은 142km 였다. 이치로의 처음이자 마지막 메이저 리그 등판이었다.

그런데 이치로는 은퇴한 후에 투수가 되는 꿈을 이룬 듯 하다.


이치로는 요즘 정규 시즌 중에는 시애틀에 살면서 매리너스 구단 특별 보좌관 역할을 맡고 있다. 홈 경기 때는 매리너스 선수들에게 타격 훈련을 해주고 홈 경기가 없으면 1시간 여 떨어져 있는 곳에 가서 2군 선수들과 타격 연습을 한다. 정규 시즌 중에는 매리너스 선수들과 스트레칭을 하고 볼을 주고 받으며 타격 팁을 주는 이치로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시작은 지난해 정규 시즌이었다. 선수가 아닌 특별 보좌관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던 이치로는 선수들과 덕아웃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타격 연습장에 주로 상주했는데 타자들에게 연습 볼을 던져주기 시작한 게 출발점이었다.

지독한 연습 벌레로 알려진 이치로는 연습 볼 던져주는 것도 연습을 시작했다. 아니, 연습 볼 던져주는 걸 연습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치로니까. 지독한 연습 벌레니까. 완벽주의자니까. 그는 매일 투구 연습을 시작했다. 어떤 때는 타자에게 던지기도 했고 어떤 때는 그냥 비어있는 배팅 케이지의 네트에다 던지기도 했다. 하루 200개까지 던지고 또 던졌다.


그걸 본 타자들은 그에게 연습 볼을 던져 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처음에는 3000 안타를 친 전설이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게 거의 확실한 선수에게서 연습 볼을 받아 친다는 신기함에 그에게 부탁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치로의 구질이 좋다는 점을 알고 그에게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연습 볼 투수는 특별한 능력을 요구한다. 계속해서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던져주는 템포도 중요하다. 이치로의 공은 모든 게 완벽했다. 공이 똑바로 오고 부드럽게 들어오기 때문에 치기가 쉽다. 무엇보다도 항상 스트라이크를 던진다. 이치로는 변화구도 마스터했다. 그는 투심, 포심, 커터, 커브, 슬라이더를 던질 줄 아는데, 모두 스트라이크로 던질 수 있다. 연습 볼 배팅을 할 때 구종 별로 던져 줄 수 있는 선수가 얼마나 될까.

불만이 없지는 않았다. 이치로의 어깨가 워낙 강해서 연습 공으로는 너무 세다는 평가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치로는 조금 힘을 빼고 던져줬다. 46세의 은퇴한 야구 선수가 몸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그럴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출처: 동아일보

이치로는 투수가 되는 꿈을 은퇴 후에야 이루게 된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그가 하찮게 느껴질 수 있는 연습 볼 투수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치로는 메이저 리그의 전설이다. 그가 타자들이 잘 칠 수 있도록 타격 연습용 투구를 자진해서 던져 준다는 건 많은 걸 내려 놓지 않고서는 참으로 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게다가 더 좋은 연습용 투구를 던져주기 위해서 하루에 200개까지 던지는 연습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은 더욱 충격적이다.

아니면 내가 잘못 생각한 걸 수도 있다. 그는 많은 걸 내려놓은 게 아니라 어떻게라도 야구를 할 수 있으면 즐겁기 때문에 신나는 마음으로 연습 볼 투수가 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이치로는 야구를 사랑한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자존심을 내려놓고 하는 일이건, 너무 좋아서 하는 일이건 일가를 이룬 사람의 이런 모습은 정말이지 보기 좋다.

※ 참고 글

뉴욕타임즈: Ichiro Suzuki Is Saying Farewell, Yet Still Perfecting a New Craft

Chosun.com: 이치로, 투수로 '깜짝' 등판…최고 구속 142km+변화구 자유 구사, 결과는?

필자 김선우

약력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문지리학과 졸업
- 워싱턴대(시애틀) 경영학 석사
-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 <40세에 은퇴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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