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규제, "우리는 이렇게 대응합니다"

조회수 2019. 9. 22.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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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지난 7월 4일, 일본은 한국을 대상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 과정에서 사용되는 플루오린폴리이미드(FPI)와 포토리지스트(PR), 에칭가스(HF, 고순도불화수소) 등 3개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감행했다. 각 소재에 대한 일본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70~90%로 매우 높아 한국으로써는 치명적인 조치였다. 이후 8월 28일,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해 수출규제 품목을 1194개로 확대했다. 그 여파로 8월달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3.6% 줄어든 442억달러에 그치기도 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피해는 아직까진 제한적이다. 하지만 국가 간의 무역갈등은 '의도적'으로 단행된다는 점에서 자연재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전세계 공급망이 세밀하게 연결돼 있는 상황에서 무역전쟁은 파급력이 크다. 실제 한일 무역갈등은 한국과 일본 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대만 등 공급망과 관련된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제는 의도적인 공급망 흔들기로 인해 발생하는 리스크를 관리하는데 기존의 리스크 관리 방법들이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럴 때 기업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리스크 대응책으로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이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위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방법 중 하나인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을 DBR 280호를 통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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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망을 취약하게 만드는 원인 & 공급망 리스크 관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대부분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은 더 복잡해지고 넓어지며 취약해지는 추세다. 그에 따라 금융이나 보건 이슈를 포함, '전염성'이 강한 사건들은 인적 네트워크와 밀접하게 연결된 공급망을 통해 확산되기도 한다.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는 자연재해나 산업재해, 테러로 인한 비즈니스 중단 같은 단발적인 사건과는 달리 글로벌 위기는 여러 국가와 다양한 산업에 동시다발적으로 큰 충격을 끼치며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든다. 그렇다면, 글로벌 공급망을 더욱 취약하게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를 포함해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을 커지게 하는 주요 원인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글로벌 무역의 폭발적 성장

원가 절감을 위한 아웃소싱 방식의 증가, 정부 및 규제 당국 등 점점 많은 참여자가 개입해 복잡성 증가 

(2) 제품과 서비스의 다양성 증가

수요 예측 난이도가 높아지고 과대, 과소 재고 및 고비용으로 이어짐 

(3) 다양한 기술, 더 커진 복합성

제품 복합성의 증가로 더 많은 공급업체가 필요해짐 

(4) 본질적으로 취약한 시스템

컴퓨터를 통한 정밀한 재고 조정 등은 뜻밖의 사건에 더 큰 충격을 받음

출처: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다양한 원인에 의해 취약해질 수 있는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고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기업은 전략적 옵션을 세울 때 '발생 가능성을 줄일 것인가?' 아니면 '영향을 줄일 것인가?'라는 두 개의 보완적인 접근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먼저, 회사는 산업 규제를 준수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민감하게 모니터링해야 한다. 또한 임직원과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공급망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예방, 회피, 완화시킴으로써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또 의도적인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정보 보안을 포함한 안전, 품질 및 보안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예방 활동을 통해 발생 가능성을 감소시키는 활동으로 모든 리스크를 제거할 수는 없다. 더구나 예방 활동은 예측 가능하거나 알려진 리스크에 대해서는 적용 가능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는 없다.


그래서 둘째로 만일의 일에 대비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예비 재고, 예비 용량과 같은 선택적 자산을 보유하고 대체 공급 채널을 확보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생산 공정의 유연화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에 도움이 된다. 삼성전자나 하이닉스가 일본산 반도체 부품에 대한 대체 공급 채널을 확보해뒀다면 일본이 이들 부품을 볼모로 무모한 무역갈등을 일으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대응 효과 극대화를 위해 기업은 비상운영센터를 운영하거나, 비즈니스 연속성 계획 및 비상보고 및 의사결정 절차 등을 미리 만들어둘 수 있다. 유연성을 증대하고 '만에 하나(Just-in-case)'를 위한 자원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알려지지 않고 예상하기 어려운 위협에 대응하는 회복력을 가질 수 있다.

'블랙스완' 피하는 방법,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블랙스완(Black Swan)

예외적이면서 발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건 혹은 현상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를 가리켜 '블랙스완(Black Swan) 현상이라고 한다. 이런 블랙스완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과거에 비해 매우 낮아졌다. 통상적인 예측 기법들은 구조적으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미래가 진행될 것이라는 암묵적 가정에 기초하지만 무역 제재와 같은 국가 간 갈등은 그렇지 않아서 통상 미래를 예측하는 데 사용되는 표준 예측 기법(Standard forecasting techniques)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개별 기업이 해볼 수 있는 리스크 대응책으로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이 있다.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구조화된 방법론을 기반으로 상세한 시나리오와 그 영향을 상상해보고 그런 시나리오에서 어떻게 비즈니스를 운용하고 성장시킬 것인지 전략을 개발하는 방법이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사작전의 일환으로 사용됐던 것이 그 시초다. 이 기법은 여러 가지 다른 미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촉발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따라서, 복수의 상호 배타적이고 분화된 시나리오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각 시나리오는 상세한 줄거리를 담고 있어야 한다. 또한 시나리오별 대응책은 실제로 가능해 보여야 하며 설사 그렇지 않을 경우라 하더라도 내적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이 시나리오 플래닝이 본격적으로 기업 경영에 도입된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그리고 최초로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을 통해 글로벌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회사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회사이자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인 '로열 더치 쉘(Royal Dutch Shell)'이다.


1969년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 정권은 석유 생산량을 줄이고 가격을 올렸고, 중동의 다른 석유 생산국들도 석유 생산량을 줄였다. 그 후, 중동 전쟁은 1973년 10월 석유 전쟁으로 번졌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원유 생산을 줄이고 석유 가격을 4배 올렸다. 이 사건이 전 세계에 미친 영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세계 경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불황에 빠졌고 많은 석유회사들이 예상치 못한 사건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로열 더치 쉘 그룹은 1960년대 중반부터 중동의 정세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고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 시나리오 기획팀을 두고 시나리오 플랜을 짰다.


쉘은 석유 공급이 통제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대비해 시나리오를 미리 수립했고, 다른 기업들이 석유 파동으로 우왕좌왕할 때 기초 설비 확장 투자에서 제품의 질 향상 투자로 전략을 수정하고 미래의 안전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메이저 석유 회사 중 최하위에 속했던 쉘은 석유파동 이후 수익률 1위, 규모 2위의 석유 회사로 도약할 수 있었다.

출처: UPS 코리아
글로벌 물류회사 UPS 트럭

또다른 사례로는 글로벌 물류회사인 'UPS(United Parcel Service)'가 있다. UPS는 1997년 시나리오 기법 연습 훈련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경쟁적 환경에서 UPS의 글로벌 사업은 무엇이 핵심일지"에 대해 질문했다. 그 결과, UPS는 소비자의 근처에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이에 2001년, 1억 9100만 달러를 들여 경영난에 처한 MBE(Mail Boxes Etc.'s, 포장 및 물류, 통신 및 비즈니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 최대의 리테일 네트워크)의 4000여 개 지점(현재의 The UPS Store)을 인수했다. 이를 통해 UPS는 개선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었다.


UPS가 이런 조치를 취하자 경쟁사 페덱스(FedEx)는 2004년에 24억 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을 내고 현재의 'Fedex Office'인 '킨코스(Kinko's, 프린트 및 배달 서비스 하던 업체)'의 1200개 가량의 소규모 지점을 인수했다. 시나리오 기법 덕분에 UPS는 시대의 변화와 기회를 경쟁사보다 빠르게 감지하고 한 발 먼저 움직일 수 있었다.



그 후로도 UPS는 시나리오 기법을 꾸준히 사용했다. 2010년에는 "2017년 세계시장 및 주요 지역시장에서 UPS의 미래는 무엇이 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새 시나리오 기법 연습 훈련을 실시했다. 뿐만 아니라 2014년에는 자사의 사업모델 개방성 정도와 사업 환경을 기준으로 4가지 시나리오를 도출해 앞으로 펼쳐질 수 있는 다양한 미래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시나리오 플래닝이 일반 예측과 다른 점은 미래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자사에 부족했던 부분이나 변화할 미래에 대비해 준비할 수 있는 점들을 '감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로열 더치 쉘은 시나리오 기법을 통해 다른 기업들이 석유파동으로 혼란스러울 때 리스크를 기회삼아 세계 2위 석유회사로 도약했고, UPS는 시나리오 기법 덕분에 행동을 취하기 적절한 시기에 가능한 변화 및 기회를 인지할 수 있었다. 물론 미래는 불확실하기에 시나리오 기법을 사용했다고 해서 정확한 양적 결과를 예측하기는 힘들다. 다만, 미래의 시나리오를 통해 기업이 직면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봄으로써 관리자의 시각을 확장시킬 수 있고 조직으로 하여금 현재와 매우 다를 미래 모습에 대해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시나리오 기법을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80호

필자 요시 셰피(Yossi Sheffi) MIT대 엔지니어링시스템학과 교수·MIT 트랜스포테이션·로지스틱스센터 디렉터

인터비즈 김동섭, 장재웅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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