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세는? 신발을 주식처럼 거래하는 미국의 '이곳'
제품을 구매한 후 원래 가격에 웃돈을 얹어 되파는 리세일(resale) 시장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중요시여기는 20~30대 밀레니얼 세대에 의해 한정판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리세일 전문 업체 스레드업(thredUP)의 ‘2018 리세일 리포트’에 따르면 미국 리세일 시장 규모는 2018년 240억 달러(한화 약 29조)에서 2022년 410억 달러(한화 약 50조)에 이를 전망이다.
리세일 시장에서 가장 활발히 거래되는 대표적 품목은 단연 운동화다. 한 예로, 지난 2017년 발매된 나이키 '에어 조던1 하이 OG 로얄블루'의 발매가는 13만9천원이었지만 현재 리세일 사이트에서 30만원~150만원대에 거래된다. 무려 10배 넘는 가격으로도 팔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리셀(resell)과 재테크의 테크(tech)'를 합친 리셀테크라는 말도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리셀링을 아예 비즈니스 모델로 구상해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중개 플랫폼으로 거듭난 곳이 있다. 2015년 설립된 온라인 리세일 마켓 플랫폼 스탁엑스(StockX)가 그 주인공이다. 이 회사는 창업 3년만에 기업 가치 '1조'를 달성해 화제가 됐다. 매 달 평균 1500만명의 사람들이 스탁엑스를 사용하고 한달 거래액은 1150억원에 달한다. 스탁엑스는 800명에 이르는 직원들과 함께 운동화 리세일을 넘어 가방, 시계 등의 악세사리와 의류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스탁엑스 사업모델의 특이점은 신발을 주식 거래하듯 사고 판다는 점이다. '운동화계의 증권시장'이라는 비전을 갖고 시작해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세웠다는 평을 받고 있다.
운동화 수집광이 세운 회사...에미넴, 마크 윌버그도 투자해
2015년 창업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면 '운동화 덕후'였던 스탁엑스의 창업주 조쉬 루버는 지신이 소유하고 있던 인기 모델 몇 켤레를 파는 과정에서 운동화 거래 플랫폼의 한계를 체감한다. 당시 인기많은 운동화 모델들은 주로 전자상거래 플랫폼 이베이(EBAY)에서 리세일되곤 했지만 문제점은 가격을 매기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실에 사기꾼들은 활개를 치고 리세일 플랫폼들은 사용자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신발 리세일 산업의 한계를 느낀 이는 루버뿐만이 아니었다. 미국 NBA 농구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Cleveland Cavaliers)의 소유주이자 금융 기업 '퀴큰 론즈(Quicken Loans)'의 설립자인 댄 길버트 역시 이에 동감했다. 이들은 주식 시장의 메커니즘을 운동화 리세일 시장에 적용해보고자 했고 여기에 사업가 그렉 슈워츠가 합류하면서 스탁엑스가 탄생했다.
2017년 스탁엑스의 초기 투자자로 래퍼 에미넴과 배우 마크 윌버그가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을 비롯한 여러 투자자로부터 600만 달러(한화 약 70억원)를 투자받았다. 최근엔 시리즈C 펀딩으로 여러 투자 기업들로부터 185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는데 이는 미시건주 스타트업 사상 가장 큰 투자 금액으로 전해진다.
오늘의 시세는...? 사이즈, 날짜, 유행따라 달라지는 신발 가격
스탁엑스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방식은 이렇다. 같은 모델이더라도 수십 수백명의 리셀러들이 각자 원하는 거래가를 스탁엑스에 등록한다. 가격은 사이즈, 날짜에 따라 달라진다. 구매 희망자는 자신이 원하는 모델과 사이즈를 선택한 후 리셀러가 제시한 가장 최저 가격, 다른 소비자들의 최고 입찰 가격 등을 쉽게 비교할 수 있다. 현재 등록되어 있는 최저 가격에 즉시 구매가능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구매가를 입찰시켜놓고 시세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구매 희망자의 가격과 판매자의 가격이 맞아떨어지면 거래가 성사되고 스탁엑스는 약 10%정도의 수수료를 떼어가는 식이다.
스탁엑스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할 때 주식 거래를 철저히 벤치마킹했다. 스탁엑스에 등록되어 있는 운동화 모델들은 주식의 종목이라 할 수 있고 운동화의 마지막 거래가는 현재 주가, 직전 거래가는 전 거래일 주가를 의미한다.
홈페이지에는 모델의 역사, 발매가뿐 아니라 날짜, 사이즈 등이 반영되어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희망 판매가와 구매가를 확인할 수 있다. 추가적으로 52주 신고가, 신저가, 주가변동성 개념도 적용해 시세 변동을 그래프로 보여주기도 한다. 또 최근 24시간동안 미국에서의 각 브랜드 리세일 운동화 거래량을 지수화한 나이키, 조던, 아디다스 지수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주식의 IPO(주식공개상장) 개념도 도입해 제품이 출시되기 전 가장 높은 공모가를 제시한 구매희망자에게 제품을 판매한다.
스탁엑스는 포트폴리오 기능도 제공한다. 사용자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델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해 종합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스탁엑스는 포트폴리오를 통해 사용자가 소유한 모델들의 현재 시세와 시장 가치 등을 통계로 보여준다. 보통 운동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유 리스트를 정리하곤 하는데 포트폴리오 기능은 그러한 사용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스탁엑스의 성공에 기여했다.
"100% 정품 보장"...후각까지 사용하는 정품 감별팀
'과연 이 제품이 정품일까' 중고품 거래를 할 때 생겨나는 또 다른 걱정거리다. 스탁엑스는 '100% 정품(Authentic) 보장'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이들이 이렇게 자신하는 이유는 회사 내에 '정품 감별팀(Authentic team)'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미국 디트로이트와 영국에 위치한 본사 두 곳에서 정품 감별팀을 운영하고 있다.
스탁엑스에선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거래가 성사됐다고 해서 바로 구매자에게 물건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일단 거래가 성사되면 판매자는 정품 감별을 위해 스탁엑스로 물건을 보낸다. 스탁엑스의 감별사들은 하루 평균 4000~6000켤레의 운동화를 감별한다. 이들은 로고의 위치, 크기, 패턴 등의 시각적 요소뿐 아니라 밑창의 접착제 냄새와 같은 후각적 요소를 이용하기도 한다. 감별이 끝나면 '검증된 정품(verified authentic)'이라는 초록색 태그가 붙어 구매자에게 배송된다.
정품 감별사라는 전문적인 직업이 따로 있던 것은 아니었기에 스탁엑스는 정품 감별팀에 처음 들어온 직원들을 위한 훈련 메뉴얼과 강의를 직접 구상했다. 교육을 거친 감별사들은 점점 더 난이도가 어려운 업무를 부여받는 식이다.
스탁엑스는 '가격 뻥튀기', '짝퉁' 등 리세일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창업 3년만에 유니콘 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제는 운동화를 넘어 '만물계의 증권시장'을 꿈꾸고 있다.
올해 6월에는 이베이와 뉴욕 증권가 등에서 근무한 이력을 가진 스콧 커틀러가 스탁엑스의 신임 CEO로 취임했다. 그는 "스탁엑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그야말로 혁신적이다"라고 말하며 "유럽과 아시아 시장으로 더욱 입지를 넓힐 계획이다. 뉴욕에는 오프라인 리세일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며 베어브릭 같은 소장용 장난감과 럭셔리 브랜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인터비즈 임현석, 신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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