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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가던 '이 브랜드', 톰 크루즈 덕에 기사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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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 하면 어떤 브랜드가 떠오르는가. 제일 유명한 브랜드를 꼽으라면 ‘레이밴(Ray-Ban)'이다. 1937년 설립 후 '선글라스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레이밴은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레이밴의 시작은 '필요가 낳은 발명품'이었다. 우리말로 '빛(Ray)을 막아준다(Ban)'는 단순한 이름을 가진 이 브랜드는 군용품으로 시작해 일상품이 됐다가 다시 명품 전략에 힘입어 패션 아이콘에 등극한 독특한 사례다. 더글라스 맥아더와 톰 크루즈, 마이클 잭슨을 잇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실용성의 상징에서 패션 아이콘으로 옮겨간 스토리를 살펴보자.

출처레이밴 공식 홈페이지, flickr SarahN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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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가 낳은 발명품...전투기 조종사들 위해 처음 제작된 '레이밴 안티글레어'

레이밴은 1930년 미국 공군의 요청에서 시작된 브랜드다. 1930년대는 항공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전투기 조종사들은 전보다 높은 고도까지 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높은 고도에서 비행하는 조종사들은 강렬한 태양 빛때문에 두통과 고공병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미국 공군 중장인 존 머크리디는 콘택트렌즈 생산 전문업체인 '바슈롬'에 자외선과 적외선을 막을 수 있는 항공 선글라스를 제작해달라 요청한다.

1936년 바슈롬은 태양광을 막을 수 있는 렌즈를 6년 간 연구한 끝에 '레이밴 안티글레어(Ray-Ban ANTI-GLARE)'라는 이름의 프로토타입 선글라스 개발에 성공했다. 사명이 된 레이밴(Ray-Ban)도 선글라스 제작 목적인 빛(Ray)을 막아준다(Ban)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 공군은 바슈롬이 제작한 이 선글라스를 미 공군은 군수품으로 정식 채택했다.

흔히 레이밴하면 떠올리는 독특한 형태의 디자인, 녹색 렌즈와 잠자리 눈 모양의 틀은 안티글레어의 디자인이다. 이는 철저하게 실용성에 기반한다. 안티글레어는 시야 방해없이 자외선과 적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녹색 렌즈를 사용했다. 또한 눈동자를 사방으로 굴려도 보이지않는 사각지대가 없도록 잠자리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안경테가 살짝 밑으로 처지게 제작해 비행 시 계기판을 보기 수월하도록 만들었다.

'ANTI-GLARE'의 모습

출처pinterest

바슈롬은 이 선글라스가 일상품으로서도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1937년 '레이밴(Ray-ban)'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를 설립한 후 일반 대중들에게도 안티글레어 모델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3.75달러라는 비싼 가격에도 가시광선을 반사하는 뛰어난 기능 덕에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1년 후 안티글레어는 플라스틱 프레임에서 메탈 프레임으로 바뀌어 레이밴 에비에이터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레이밴의 이름을 널리 알린 스테디셀러다.

맥아더 장군이 대중화시킨 에비에이터...하나의 '문화 현상' 되다

실용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던 레이밴은 1940년대 들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까지 등극한다. 군용 선글라스로 시작한 레이밴이 대중의 인식 속에 깊이 자리매김하게 된 건 당시 '미국 문화의 아이콘'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공이 컸다.

필리핀 레이테만에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이 레이벤을 쓰고 있는 모습

출처위키피디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1930년대 후반부터 40년대까지 문화를 선도하는 아이콘은 전쟁 영웅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천상륙작전'으로 익히 알려져있는 맥아더 장군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미국의 국민적 영웅이었다.

그런 그가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필리핀에 복귀하는 모습은 사진기자들에 의해 방송과 신문으로 대중들에게 전해졌다. 사진 속 맥아더 장군은 레이밴의 에비에이터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이 사진이 퍼지면서 에비에이터는 '전쟁 영웅의 선글라스'로 불리며 전국적인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맥아더 장군이 만들어낸 에비에이터의 유행은 전쟁이 끝난 후 '웨이페어러(Wayfarer)'의 유행으로 이어졌다. 이번엔 할리우드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 주역이었다. 1952년 레이밴은 이전보다 커진 렌즈 사이즈와 더 두꺼운 플라스틱 프레임으로 패션 악세사리처럼 착용할 수 있는 '웨이페어러(Wayfarer)'를 선보였다.

웨이페어러를 착용한 제임스 딘(좌)과 오드리 햅번(우)의 모습
출처pinterest,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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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안경 소재로 금속을 사용하는 것이 더 고급품처럼 여겨졌기에 플라스틱 프레임의 선글라스가 대중의 외면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는 내부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제임스 딘이 '이유 없는 반항(1955)'에서, 오드리 햅번이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에서 웨이페어러를 착용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

그렇다고 해서 레이밴이 마냥 승승장구한건 아니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미국에 디스코 열풍이 불면서 큰 위기를 맞는다. 디스코에 열광하던 대중들은 현란한 색의 오버사이즈 선글라스를 선호했고 디자이너 브랜드에서는 로고를 큼지막하게 디자인한 선글라스를 내놓기도 했다. 당시의 트렌드와 결이 맞지 않았던 레이밴은 '한물 간 브랜드'로 전락하고 말았다. 레이밴은 1980년대 초 자사의 히트상품이었던 웨이페어러 생산 중단을 진지하게 검토했을 정도다.

영화 '위험한 청춘'(좌)과 '탑건'(우) 스틸컷
출처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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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진 레이밴은 공격적인 PPL(Product Placement) 전략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1982년 레이밴은 광고대행사인 UPP(Unique Product Placement)사와 5만 달러(한화 약 6천만원)의 1년 계약을 맺었다. 레이밴 제품을 영화배우나 탤런트 등을 통해 PPL을 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레이밴의 제품들은 1년만에 60편이 넘는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PPL의 가장 큰 수혜자는 생산 중단까지 생각했던 웨이페어러 모델이다. PPL을 하기 전 18,000개에 불과했던 웨이페어러의 판매량은 1983년 톰 크루즈가 영화 '위험한 청춘'에서 이를 착용하고 나오면서 36만 개로 급증했다.

위험한 청춘에 이어 톰 크루즈는 전투기 조종 훈련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탑건(1987)'에서 맥아더 장군이 착용했던 모델과 동일한 에비에이터를 착용하고 나왔다. 톰 크루즈의 착용 이후 레이밴은 예전의 영광을 되찾기 시작한다. 실제로 탑건 개봉 후 레이밴의 판매율은 40%나 증가했고 맥아더 장군 이후 또 다시 에비에이터 열풍이 불었다. 한국서는 탑건의 영향으로 에비에이터를 구하기 쉽지 않아 미군 기지 근처에서 웃돈을 주고 사고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는 '레인 맨(1989)'에서 역시 레이밴 선글라스를 착용해 매출을 15% 증가시켰다. 이는 아직까지도 톰 크루즈가 레이밴 재기 성공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외에도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은 레이밴 선글라스를 자신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활용했다. 마이클 잭슨은 198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레이밴 에비에이터를 쓰고 나타났고, 윌 스미스와 토미 리 존스는 1997년 영화 '맨 인 블랙' 속에서 레이밴의 프레데터를 착용했다. 이렇듯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에서, 시상식 속 가수의 모습에서 레이밴을 봐온 대중들은 레이밴을 더욱 갈망하게 됐다.

1984년 그래미 시상식에 참석한 마이클 잭슨(좌)과 맨인블랙 포스터(우)
출처스포츠동아,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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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티카에 인수된 레이밴...시너지 효과 내며 글로벌 브랜드의 입지 공고히 다져

레이밴은 1999년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탈리아의 '안경 공룡'으로 불리는 룩소티카 그룹이 바슈롬이 보유한 레이벤 브랜드를 6억6천만 달러(한화 약 8000억원)에 인수하면서다. 이탈리아에 기반을 둔 안경 제조업체 룩소티카 그룹은 오클리, 보그 등 다수의 자사 브랜드를 보유하고, 샤넬, 프라다, 랄프로렌 등의 안경 분야 라이선스 제작을 전담하는 세계 1위 아이웨어 기업이다.

출처위키피디아, 레이밴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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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 이후 레이밴은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룩소티카는 레이밴에 패션 트렌드를 고려한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했고 처음으로 티타늄 소재를 프레임에 접목하며 질적, 기술적 혁신을 이뤄냈다. 또한 대대적인 상품 확장을 추구해 2003년 레이밴은 아동용 선글라스 브랜드 '레이밴 주니어(Ray-Ban Junior)'를 런칭하기도 했다.

선글라스가 패션 아이템으로 보편화된 후에도 레이밴은 최초의 탄생 목적이었던 실용성을 놓치지 않았다. 레이밴은 선글라스를 제작할 때 가시광선은 65%, 자외선은 100% 차단하는 렌즈로만 생산하는 원칙을 고수한다.

내구성이 뛰어나 렌즈의 충격 흡수 능력과 긁힘 방지 기능은 미국식품의약국(FDA)의 낙하 충격 테스트에 통과하기도 했다. 레이밴이 수많은 선글라스 브랜드들의 등장으로 입지가 좁아지곤 있지만 여전히 실용성으로 차별화하는 점은 인상적인 대목이다. 핵심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다.

레이밴의 위기와 극복 사례는 차별화하기 어려운 제품 영역일수록 품질과 디자인 모든 고려 요소에서 다 만족할 만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명품 전략에 있어선 그 브랜드만의 독특한 스토리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레이벤 보다 더 독특하고 트렌디한 선글라스는 나올 수 있지만, 이처럼 풍부한 스토리를 가진 선글라스는 나오기 어렵다. 지금도 선글라스하면 레이밴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다.

인터비즈 임현석, 신혜원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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