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커피 브랜드의 무덤'이라 불리는 '이 나라'

조회수 2019. 9. 4.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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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는 세계 3위(매출 기준) 커피 시장으로 불리는 한국을 사실상 석권했다. 하지만 이런 글로벌 브랜드도 유독 고전을 면치 못하는 시장이 있다. 베트남이다. 이곳 커피 시장 점유율 1위는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아니다. 토종 '하이랜드 커피(Highlands Coffee)'다. 2017년 베트남 시장 매출 2위였던 스타벅스는 2018년에 베트남 현지 브랜드인 '더 커피하우스(The Coffee House)'에 자리를 양보하고 3위로 밀려났다. 세계 각국의 커피 시장을 점령한 스타벅스와 유명 글로벌 브랜드들이 베트남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외 커피 브랜드의 무덤'이라 불리는 베트남 커피 시장

작년 베트남 경제성장률은 7.08%. 그야말로 '핫'한 나라다.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이자 수출국인 베트남은 경제 성장과 함께 국민 소득이 증가해 1인당 커피 소비량이 10년 사이 3배 늘었다.

그러나, 글로벌 커피 브랜드는 베트남 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39개국에 진출해있는 호주계 커피 브랜드인 '글로리아 진스(Gloria Jean's Coffees)'는 2017년 4월, 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베트남에 진출한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같은 해 5월엔 '뉴욕 디저트 커피(NYDC)'가 '비싸다'라는 평을 받으며 베트남에서 철수했고, 2008년에 진출한 커피 빈은 베트남 토종 브랜드들에 밀려 매장을 축소했다. 국내 커피 브랜드인 '카페베네'는 2014년에 베트남에 진출했지만 사업을 축소하고 있고, 2015년에 진출한 '할리스'는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철수하기도 했다.

출처: 할리스 홈페이지
베트남 시장에서 철수한 국내 커피 브랜드 '할리스'

2013년에 베트남에 진출한 스타벅스는 그나마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위세를 지키고 있지만, 이 역시도 토종 브랜드들의 공세에 밀리고 있는 모양새다. 현재 베트남에서 매출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하이랜드는 2017년에 약 600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했고 이는 스타벅스 매출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인 스타벅스마저 현지 브랜드들에 밀리고 시장에서 철수하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많아지면서 베트남은 '글로벌 커피 브랜드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베트남 시장 철수한 글로벌 커피 브랜드들, 스타벅스는 지난해 현지 브랜드 '더 커피하우스'에 밀려...

출처: StarbucksVietnam 인스타그램
베트남 스타벅스

2013년에 베트남에 진출한 스타벅스는 현재 호찌민과 하노이를 중심으로 총 47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작년에 50개 이상의 매장을 열어야 했으나 당시 매장 수는 30여 개에 그쳤다. 베트남에 진출한지 10년이 돼가는 커피빈의 매장 수가 15개라는 점을 미뤄볼 때, 스타벅스의 성과는 썩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스타벅스보다 1년 뒤인 2014년에 문을 연 베트남 현지 브랜드 '더 커피하우스'는 현재 전국에 133개 매장을 보유해 매장 수로 시장 2위를 달리고 있다. 매장 개수만이 문제가 아니다. 2017년 스타벅스의 매출은 하이랜드에 이어 시장 2위였지만 2018년 매출은 6억 동으로 매출 6억 6900만 동을 달성한 커피하우스에게 2위의 자리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굴지의 글로벌 브랜드들이 베트남에서 철수하고, 남아있는 브랜드들이 생각만큼 성과가 좋지 못한 데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베트남의 커피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다. 현지 브랜드보다 베트남 사회와 문화, 소비자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뒤처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일단 베트남은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찬 음료에 대한 수요가 많다. 그러다 보니 비싼 가격을 주고 음료를 사 먹기보다는 취향에 맞는 저렴하고 시원한 음료를 자주 사 먹는 편이다. 그러나, 스타벅스 제품의 가격대는 현지 브랜드에 비해 높게 형성돼있어 너그럽게 돈을 쓸 의향이 있는 관광객이 아닌 일반 소비자에 대해선 유인력이 떨어진다. 이탈리아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인 '에스프레사멘테 일리(Espressamente Illy)'와 '뉴욕 디저트 커피(NYDC)' 역시 비싼 가격으로 인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아 결국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출처: 스타벅스 홈페이지
스타벅스 Vietnamese Iced Coffee

또한, 베트남의 젊은 층은 단 커피와 아이스티, 녹차 가공음료나 과육이 첨가된 음료를 선호한다. 밀크티 역시 큰 인기다. 그러나, 이런 수요를 제대로 메뉴에 반영하지 못한 호주계 커피 브랜드 '글로리아 진스'는 베트남 현지 커피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과 현지인들의 입맛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으며 철수해야만 했다. 스타벅스는 '베트남 스타일 커피(Vietnamese Style Coffee)'와 같이 베트남 현지에 익숙한 제품을 메뉴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브랜드 정체성을 위한 아메리카노, 라떼와 같은 기존의 주력 메뉴가 따로 있어 주로 관광객이나 일반 현지 커피에 비해 비싼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탓에 현대화에 지친 베트남 소비자들이 옛날 감성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도 시장 진입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베트남의 인기 카페 중 하나인 '콩카페(Cong Caphe)'는 1980년대 문호 개방 이전의 베트남 사회주의 시절의 분위기를 구현하고 직원의 복장이나 소품 등을 통해 향수를 자극하는 인테리어를 갖춤으로써 스타벅스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 사이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현지 브랜드들, 어떻게 소비자 공략하고 있나? "베트남스럽다"가 아직 먹힌다

해외 브랜드들이 베트남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고전을 면치 못하는 주요한 이유는 '비싼 가격'과 '현지화에 대한 어려움'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현지 브랜드들은 글로벌 브랜드의 진출에도 어떻게 방어하고 있는 걸까? '베트남의 스타벅스'라 불리는 업계 1위 하이랜드 커피는 2018년 11월 기준으로 베트남 전역에 233여 개라는 가장 많은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커피에 연유를 넣어 먹는 베트남 커피의 대명사인 '카페쓰어다(caphe sua da, 연유가 들어간 아이스커피)'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일조했다.

하이랜드에서 잘 팔리는 제품 중 하나인 '연꽃씨 음료'와 '차가운 그린 티'는 과육이 첨가된 음료와 아이스티를 선호하는 현지 10~30대 젊은 소비자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하이랜드에선 '반미'라고 불리는 베트남식 바게트 샌드위치를 주문 즉시 만들어 제공한다. 카페에서 음료와 디저트를 함께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현지인들의 성향을 반영한 것. 이 때문에 하이랜드를 방문하는 많은 소비자들은 음료와 반미를 함께 먹는 경우가 많다. 또한, '푹롱(Phug Long)'은 젊은 층을 사로잡기 위해 단 맛이 강한 밀크티와 복숭아 과육을 얹은 홍차를 개발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고급 소비층이 아닌 트렌드에 민감한 다수의 젊은 층, 학생, 직장인을 타깃으로 메뉴를 개발해 '베트남스러움'이란 가치를 포지셔닝 하는 데에 성공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베트남 커피나무

베트남의 많은 현지 브랜드들은 종이 필터 대신 작은 구멍이 뚫린 베트남 고유의 커피 추출 도구, '핀 카페(phin cà phê, 커피 여과기)'를 이용해 원두를 내리기도 한다. 일반 여과기를 사용했을 때보다 커피 맛이 풍부하고 진해 인기가 많다. 이렇게 내린 드립 커피를 '카페 핀(cà phê phin)'이라고 한다. 이 추출 방식의 유래는 베트남의 오랜 '연유 커피' 문화와 맞물린다.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 하에 있었을 당시,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1857년 베트남 남부를 중심으로 커피나무가 재배됐다. 당시 베트남에 있던 프랑스 군인과 민간인들을 위해 쉽게 상할 수 있는 생크림과 우유 대신 연유를 사용했는데 '카페 핀(Cafe Fin)'이라 불리는 용기로 걸러낸 커피 액에 연유를 섞어 마셨다.

또한, 베트남 현지 브랜드들은 아라비카 원두를 주로 사용하는 글로벌 브랜드들과는 달리 베트남에서 많이 생산되는 '로부스타(Robusta) 원두'를 많이 쓴다. 로부스타 원두는 미국, 남미에서 재배되는 아라비카 원두보다 카페인 함량이 높고 쓴맛이 강해 연유를 넣어 마시는 베트남 고유의 커피가 탄생하게 됐다.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온 베트남만의 커피 문화 때문에 현지인들은 진한 맛의 베트남식 커피에 익숙해져 있다.

토종 브랜드들의 노력은 맛과 가격에서 그치지 않는다. 베트남 호찌민 무역관이 조사한 코트라(KOTRA) 보고서 '베트남 프랜차이즈 카페가 스타벅스보다 잘 나가는 이유'에 따르면 카페 손님의 다수는 사람을 만나거나 사적인 일을 하기 위해 방문한다며 베트남 '주류' 카페들의 공통점은 여러 소비자가 함께 하는 개방적인 공간이라고 밝혔다. 카페는 개방적인 공간이라는 현지인들의 인식 덕분에 카페를 방문하는 고객들은 소음에 크게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 분위기를 즐기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베트남의 많은 카페들은 고객이 바깥을 볼 수 있도록 커다란 창을 달거나 아예 야외 공간을 확보해 내부와 외부가 단절되지 않도록 한다. 또한, 사적인 업무를 위해 방문하는 고객들이 증가함에 따라 베트남의 많은 카페들이 '무선 와이파이'를 기본으로 제공한다.

가게 앞 길거리에서 의자를 깔고 커피나 차를 마시던 베트남의 '노천카페 문화'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베트남에선 가게 앞에서 길거리를 향해 앉은 채로 커피나 음료를 마시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런 특성을 반영해 식당 야외에 위치한 테이블이 인도를 향하도록 배치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뿐만이 아니다. 베트남에선 커피를 마시며 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도 많다. 일반적으로 외부 음식 반입이 금지되는 해외 커피 브랜드와는 달리, 베트남엔 음식 반입이 가능한 곳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굴지의 브랜드들이 손을 털며 철수하고, 잔류한 브랜드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베트남 커피 시장. 베트남 현지의 브랜드들이 '베트남스러움'을 무기로 스타벅스와 커피빈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의 공세에도 잘 방어해왔지만 앞으로도 이 승리가 이어질 것이라곤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스타벅스가 예상만큼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더라도 2013년에 베트남에 진출해 50개도 안 되는 매장으로 매출 5위 안에 들고 있다는 점, 그리고 경제 성장으로 인해 베트남의 소비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에 열광하는 한국의 젊은 세대처럼 베트남 역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해외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서구식 식단이 빠르게 유입되며 입맛이 변화함에 따라 앞으로 베트남 커피 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흘러갈지 내다볼 수 없게 만든다.

인터비즈 김동섭, 윤현종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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