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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에서 쫓아낸 '이 남자', 디즈니를 부활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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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픽사애니메이션의 성공을 이끌고 있는 존 래스터는 디즈니의 ‘칼 아츠’를 다니면서 애니메이션계의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1981년 컴퓨터그래픽에 꽂힌 이후 평생을 ‘비주류’로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비주류성’이 혁신과 창의성을 낳았고 픽사의 대성공을 만들어냈죠. 자신의 의견이 묵살된 경험이 많았던 래스터는 픽사 직원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아이디어 창출을 돕고 있습니다. 래스터의 픽사 경영 원칙들을 프리미엄 경영매거진 DBR과 함께 알아보았습니다.

기술에서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본 래스터

픽사와 디즈니의 애니메이터, 감독, 제작자, 작가인 존 래스터

출처디즈니 블로그

래스터는 1957년 캘리포니아 주의 할리우드에서 자동차 판매상으로 일하던 아버지와 고등학교 미술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하고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래스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월트 디즈니가 세운 캘리포니아예술학교(California Institute of Arts, 칼아츠)에 입학했다. 칼아츠 시절 이미 화려한 경력을 쌓은 래스터는 졸업 후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은근한 경계 속에 1979년 디즈니에 입사했다.


그러던 1981년 어느 날 칼아츠를 같이 다녔던 친구가 영화 ‘트론’의 몇몇 장면을 봐달라고 래스터를 불렀다. 디즈니가 제작하던 실사 영화인 ‘트론’에는 약 15분 분량의 컴퓨터 그래픽이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그 친구가 그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디즈니의 한 트레일러 안에서 래스터와 친구들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만든 최초의 ‘신’을 보았다. 빛의 오토바이들이 펼치는 가상의 경주 장면이었다.



사실 이 장면에는 캐릭터 애니메이션은 전혀 없고 지금의 눈으로 보면 컴퓨터그래픽도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본 래스터는 어떤 계시를 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화면의 입체감을 여태껏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만일 이 그래픽 기술을 활용한다면 애니메이션 제작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거야말로 월트 디즈니가 생전에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새로운 차원의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했다. 

최초로 배우를 컴퓨터그래픽 배경에 합성한 영화 '트론'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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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스터는 경영진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제작비가 많이 든다며 컴퓨터그래픽을 주장하는 래스터를 골칫거리로 여겼다. 그럼에도 래스터는 걸핏하면 컴퓨터그래픽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자문을 받았고, 급기야 선배를 설득해서 30초짜리 테스트 필름을 제작하는 기획안을 올렸다. 경영진은 이 아이디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래스터는 상사로부터 짐을 싸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건 제작되지 않을 테니까 디즈니에서 자네 프로젝트는 이제 끝났네. 그러니 자네가 있을 자리는 없어. 디즈니와 자네 사이의 계약 관계도 끝났단 말이네.”

이렇게 래스터는 디즈니에서 쫓겨났다.


10년 넘게 비주류로

컴퓨터그래픽에 관심을 갖게 된 후 래스터는 콘퍼런스나 관련 전시회를 쫓아 다녔다. 또 3D 화면을 만들기 위해 컴퓨터그래픽 기술자들에게 자문을 받다 보니 유명 엔지니어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다 자연스레 루카스필름의 컴퓨터사업부에서 컴퓨터그래픽 부문을 이끌고 있던 에드 캣멀(Edwin Catmull)과도 알게 됐다. 캣멀은 래스터가 디즈니에서 해고됐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당장 그를 스카우트했다. 이렇게 해서 1984년부터 래스터는 루카스필름 컴퓨터사업부에서 일하게 됐다.


하지만 루카스필름에서 그리 오래 일하지는 못했다. 루카스필름은 재정이 악화되자 컴퓨터그래픽 부문을 매각하려했다. 결국 1986년 1월 컴퓨터그래픽 부문은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에게 팔렸다. 잡스는 루카스에게 500만 달러를 지불하고, 따로 500만 달러를 여기에 투자했다. 이렇게 픽사라는 회사가 탄생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픽사 본사

출처픽사 홈페이지

래스터는 새롭게 출발한 픽사에서도 비주류였다. 잡스의 관심은 오로지 컴퓨터 사업이었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잡스는 래스터를 포함한 애니메이션 부서가 필요없다며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캣멀을 비롯한 경영진은 우수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낼수록 픽사의 컴퓨터가 더 잘 팔릴 것이라고 잡스를 설득해 살아남았다. 이 시기에 만든 '틴 토이'는 1988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컴퓨터 판매는 늘어나지 않고 적자만 쌓여갔다. 자연스레 남들이 벌어온 돈을 쓰기만 하던 애니메이션 부서는 다른 부서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그래서 1990년부터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을 중단하고 TV 광고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래스터로서는 처음으로 회사에 돈을 벌어다준 것이다. 애니메이션 제작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복권, 구강청결제, 껌, 자동차 등 다양한 기업에서 광고 제작을 부탁했고 한 해 10편 이상씩 만들었다. 이렇게 애니메이션 부서를 꾸려갔다.


그러던 중 래스터를 쫓아냈던 디즈니에서 픽사와 손잡고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 1991년부터 ‘토이 스토리’를 장기간에 걸쳐서 준비했다. 물론 이 기간에도 TV 광고 제작은 꾸준히 하면서 영화 작업을 진행했다.



결국 1995년 개봉한 ‘토이 스토리’가 대박이 나자 픽사는 온전히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 스튜디오로 탈바꿈하게 됐다. 1981년 ‘트론’에서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본 이후 무려 15년 만에 이뤄낸 꿈이었다.

다양성과 아이디어가 숨쉬는 픽사

이렇게 래스터는 항상 비주류였고, 성공하기 전까지 그의 의견은 자주 묵살되곤 했다. 그는 픽사의 직원들만큼은 이런 경험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다양성과 예외적인 아이디어가 사장되지 않도록 독특한 경영을 픽사에 도입했다.


첫째, 직원들에게 충분한 권한을 준다. 픽사에서는 영화 제작을 담당하는 팀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한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한 사안에 대해 문제가 생기면 위에 기대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한다. 심지어 예산 문제까지 해당 영화의 감독과 팀들이 알아서 결정하도록 내버려둔다.



디즈니와 픽사가 합병한 뒤 캣멀 사장과 래스터는 디즈니의 재무팀을 없애버리고 제작팀이 스스로 예산을 짜서 집행하게 했다. 제작비는 당연히 올라갔지만 그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이런 방식으로 제작된 '라푼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오랜만에 대히트를 기록했다.

사장인 캣멀과 CCO인 래스터는 디즈니의 조직문화를 바꾸고, '라푼젤'을 성공시킨다

출처디즈니 홈페이지

둘째, 아이디어가 불어나도록 자극한다. 픽사는 직원들이 이상한 생각이 떠오르면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스스로 실험하고 시도해 볼 수 있는 풍토를 조성했다. 픽사는 ‘애니메이션 데일리(Animation Daily)’라는 일일 리뷰회의를 매일 연다. 전날 시도해본 아이디어의 결과물을 작은 영화방에서 틀어보며 동료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이 회의는 업무 진척도를 체크하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를 더하는 게 목적이다. 그래서 미완성 상태 그대로 보여주고 동료들의 의견을 얻는다. 작업물이 어느 정도 완성된 단계에서는 조언을 주기도 어렵고 수정도 힘들지만 미완성 상태에서는 아이디어의 발전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셋째, 직원들이 교류하도록 한다. 다양한 분야의 직원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이 만들어주고 있다. 픽사의 본사 건물은 화장실, 회의실, 카페, 식당이 모두 중앙에 몰려 있다. 건물이 워낙 커서 양쪽 끝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중앙으로 오기가 꽤 불편하다. 그럼에도 건물을 이렇게 설계한 이유는 사람들이 넓고 긴 뜰에서 심심찮게 서로 마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래스터는 애니메이션 쪽에서 일하는 직원과 기술을 담당하는 엔지니어가 의도하지 않게 우연히 만날 때 창의성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픽사 본사 건물에는 화장실, 카페 등이 모두 중앙에 몰려 있다

출처월트디즈니

또 픽사 대학이라는 사내 교양강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픽사 대학에서는 영화, 애니메이션, 컴퓨터그래픽은 물론 음악, 글쓰기, 펜싱 등 110개 이상의 과목을 운영하고 있다. 애니메이터나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보안요원, 요리사까지 누구나 수강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도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직원들이 수업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교류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픽사가 다양성을 중시하고 직원들의 예외적인 아이디어를 활용하려고 하는 이유는 영화산업이 고도로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흥행 확률은 15%를 넘지 않는다. 이처럼 불확실한 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통해 끊임 없이 혁신하며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을 즐기게 하라

하지만 혁신을 추진할 때는 딜레마가 생긴다. 바로 실패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의 문제다. 조직 차원에서는 다양성과 독특한 방식을 장려해 획기적인 혁신을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개인 입장에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혁신이 어렵다. 획기적인 혁신을 이루려면 실패가 뻔한 일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획기적인 혁신에 반드시 따르는 리스크를 픽사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출처게티이미지뱅크

픽사는 실패의 문제를 이렇게 해결했다.


첫째, 실패에 대한 안전망을 설치했다. 다른 할리우드 영화사는 영화 단위별로 고용계약을 한다. 그래서 한 영화가 끝나고 다른 영화에 투입되지 않으면 실직 상태가 된다. 영화인은 대부분 계약직이다. 그런데 픽사는 모든 인력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서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해줬다. 픽사의 이런 고용 방식은 인건비를 상승시켰지만 직원들의 입장에서 실패의 위험이 줄어들기 때문에 마음 놓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혁신을 위해 실패를 장려하라고 한다. 하지만 실질적인 안전망이 없으면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둘째, 일을 즐기는 문화를 만들었다. 권한과 자율성을 주는 게 이 때문이다. 부모가 아무리 말려도 춤과 음악에 미쳐 있는 아이는 연예인을 지망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실패해도 후회가 적기 때문이다. 즉 좋아하는 일을 하게 만들고, 제일 좋아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일을 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픽사의 많은 직원들은 자신들의 일을 좋아한다.


‘니모를 찾아서’에서 그려낸 물속 세상은 픽사가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영화에는 주인공 물고기들이 고래에게 잡아 먹혀 고래 뱃속에 들어가 있는 장면이 나온다. 미술팀 두 명은 쇠고래가 해안가로 떠밀려와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그리로 달려갔다. 그리고 고래의 몸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이런 열정으로 물속 세상과 물고기의 사실성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표현해냈다.

1988년 '틴 토이'로 아카데미상을 받았을 때 디즈니는 래스터에게 여러 차례 거액을 제안하며 디즈니로 돌아오라고 설득했다. 당시 래스터의 경제상황은 좋지 않았고 픽사에서 받는 월급은 부족하기만 했다. 그러나 래스터는 가지 않았다. 디즈니로 옮겼다면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래스터는 디즈니의 제안을 거절하며 동료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디즈니로 가서 감독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여기 남아서 역사를 쓰고 싶어요.”

약 20년 후 디즈니와 픽사가 합병했다. 래스터는 디즈니에서 CCO(Chief Creative Officer·최고창조책임자)라는 중요한 자리를 겸임하게 됐다. 그는 디즈니에서도 창의성을 기업 문화의 핵심이자 시스템으로 정착시켰다. 인수합병 당시 디즈니는 '타잔' 이후 7년 동안 히트작이 없었다.



그러나 래스터와 캣멀이 운영을 맡게 된 후 '라푼젤', ‘겨울왕국’, '빅 히어로', ‘주토피아’ 등 만드는 애니메이션마다 히트를 치고 있다. 한 때는 자신을 쫓아냈던 디즈니의 부활을 이끈 것이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한 존 래스터

출처Pixar Talk

디즈니의 부활과 픽사의 성공시대를 이끈 '존 래스터', 그는 매일 애니메이션을 혁신하고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사람이다. 앞으로 그의 손에서 나올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들이 영화계에 어떤 또 다른 변화를 가져다줄지 기대가 된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매거진 DBR 182호
필자 이병주

인터비즈 문현지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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