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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원 날아간 버핏" 하인즈케첩이 주는 비용절감의 교훈

조회수 2019. 8. 2.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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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워런버핏(Warren Buffett)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와 브라질 사모펀드 3G캐피털은 거대한 두 식품기업 크래프트(Kraft)와 하인즈(Heinz)를 합쳐 크래프트하인즈(Kraft-Heinz)를 만들었다. 대형 식품 제조회사 둘을 합치면 생산라인의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고, 부서들을 통폐합해 전체적인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투입된 금액은 총 710억 달러(약 80조원). 그야말로 세기의 합병이었다. 합병 직후인 2016년 크래프트하인즈의 매출액은 202억 달러(약 24조 원)에 달했다. 전 세계 식품 기업 중 4위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탄생시킨 새로운 식품 대기업에 찬사를 보내며 큰 기대를 드러냈다.

그러나 기대는 2년도 되지 않아 무너졌다. 몰락의 절정은 지난해 4분기였다. '한 분기'만에 무려 126억 8천만 달러(약 14조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2018년 크래프트하인즈의 '연 매출'이 260억 달러인데, 그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한 분기만에 적자로 날려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1대 주주인 버크셔해서웨이는 3조 4천억 원에 이르는 손실을 봤다. 주가도 폭락했다. 실적이 발표된 2월 22일, 주당 48달러였던 주가는 하루만에 35달러까지 주저앉았고 이후 반등하지 못한 크래프트하인즈의 주가는 지금까지도 30달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출처: 구글, 나스닥
크래프트하인즈의 최근 1년 주가추이
크래프트하인즈에 대해 내가 몇 가지 측면에서 틀렸다.
너무 비싸게 주고 샀다.
워런 버핏, 올해 2월 CNBC 방송 中

비용절감 하나에만 매몰된 크래프트하인즈

'식품 자이언트' 크래프트하인즈가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잘못된 비용 절감' 때문이다. 크래프트하인즈의 경영을 주도해온 3G캐피털은 기업을 합병하자마자 '제로 베이스 예산편성(Zero-Based Budgeting, ZBB)' 방식을 적용해 비용을 줄여나갔다. ZBB는 현상태에서 비용을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비용이 없다고 가정하고 꼭 필요한 비용만 고려해' 예산을 편성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비용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극단적인 비용절감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3G캐피털의 ZBB는 2014년 22%였던 영업이익 대비 순이익 비율은 2016년 29%로 끌어올리며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비용절감의 방향이었다. 크래프트하인즈는 2015년 한 해에만 R&D 인력을 포함해 전체 직원의 10%에 해당하는 5,100여 명의 직원을 구조조정했다. 또 북미 지역 7개 공장을 폐쇄하는 등 고정비를 1/3 수준으로 크게 낮췄다. 비용절감을 위해 자린고비처럼 허리띠를 졸라맸던 것이다. 이는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없애는 결과를 낳았다. 인력과 생산 기반을 과도하게 줄이다 보니 신제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사업을 확장할 여력도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유기농, 건강, 친환경과 같은 새로운 수요가 커지고 있었지만 크래프트하인즈는 이를 간과한 채 '기존 제품을 어떻게 하면 더 저렴하게 만들 것인가'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반면, 시장에서는 크래프트하인즈의 빈틈을 공략한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중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2010년 창립한 '서 켄싱턴(Sir Kensington's)'이다. 서 켄싱턴은 '왜 케첩은 죄다 하인즈인 걸까'라는 의문을 가진 두 명의 대학생이 만든 케첩 업체다. 미국 케첩시장은 한때 하인즈의 점유율이 80%를 넘겼을 정도로 하인즈가 독점하고 있는 시장인데, 이에 반기를 든 업체가 탄생한 것이다.

서 켄싱턴은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을 고려해 하인즈 케첩보다 '설탕을 50%, 나트륨을 33% 줄여' 만들었다. 또 하인즈 케첩의 플라스틱 용기와 달리 유리병 용기에 담아 고급 케첩의 이미지를 가미해 브랜드를 차별화했다. 새로운 케첩의 등장에 미국 소비자들은 큰 호응을 보였다. 특히 건강, 유기농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빠르게 성장한 서 켄싱턴은 결국 2018년 미국 유기농 식품매장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에서 하인즈를 제치고 케첩 판매 1위의 자리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더 이상 미국 케첩 시장이 하인즈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춘 비용절감은 결국 크래프트하인즈를 '매력없는' 기업으로 만들었다. 매출액 기준 세계 4위에 빛나던 거대 식품기업이 트렌드를 쫓지 못하고 먹어봐야 몸에 좋지 않은 제품만 만드는 곳으로 전락한 것이다. 데이비드 카스(David Kass) 메릴랜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를 두고 "크래프트 하인즈 경영진은 건강하고 신선한 먹을거리를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 변화를 예상하지 못하고 비용절감에만 골몰했다"라고 비판했다.

3G캐피털과 경영진은 뒤늦게 신제품 개발에 투자하며 조미료 없는 맥앤치즈, 설탕을 줄인 케첩, 유기농 카프리썬 등을 출시했다. 또 지난 4월에는 경영난을 반영해 CEO를 교체하는 등 반등을 위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신제품 카테고리에서는 후발주자가 되어버린 하인즈에게 관심을 주는 소비자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출처: 크래프트하인즈 홈페이지
2017년 뒤늦게 출시한 설탕 50% 줄인 케첩
비용을 절감하되, 고객가치는 건드리지 말라

비용절감은 기업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필수 요소다. 하지만 크래프트하인즈의 사례에서 보듯 비용절감도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하다. 섣부른 비용절감 시도는 기업의 수익은 고사하고 오히려 기존의 고객들까지 떠나보내는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성공적인 비용절감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비용절감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는 것이다. 비용절감은 궁극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혁신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물이다. 비용절감이 필요하다면 기존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세심하게 관찰, 분석해서 개선할 포인트를 찾는 것이 그 첫걸음이어야 한다. 이러한 고민없이 단순히 '생산비용을 낮추겠다'는 것에 집착하다보면 결국 질 낮은 원자재 사용, 무리한 구조조정 등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된다. 크래프트하인즈가 비용절감과 생산효율성에 사로잡혀 R&D 인력을 감축하다 결국 신제품 개발 역량을 스스로 깎아먹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두 번째는 비용절감을 하더라도 고객가치는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용절감을 하는 기업들은 비용절감의 성과가 혹시 고객이 누려온 가치와 맞교환(Trade-off)되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사실 고객들은 기업의 비용절감에 별 관심이 없다. 아무리 획기적인 비용절감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고객가치를 조금이라도 훼손한다면 고객 입장에서는 불쾌할 뿐이다. 따라서 비용절감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고객가치가 제공되도록 각별히 신경쓰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혹시 고객가치의 훼손 위험이 있다면 이에 대한 보완책을 반드시 준비해야만 한다.

세 번째는 비용절감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것이다. 크래프트하인즈의 사례처럼 보통 비용절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쪽은 경영진이다. 하지만 효과적인 비용절감의 방안은 보통 현장 직원들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직접 프로세스의 일부로 참여하고 있기에 비효율성이 발생하는 부분과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현장의 상황과 직원들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비용절감을 이끌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비용절감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버거킹의 경우, 경영진이 직접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파악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유니폼을 입고 직원들과 같이 햄버거를 만들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이 과정에서 폐점할 매장, 프랜차이즈로 전환할 매장이 자연스레 걸러졌고, 과도하게 많았던 메뉴를 12개로 대폭 줄인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덕분에 재료비는 줄고 서비스 속도는 빨라지며 비용절감의 효과가 발생했다. 경영진과 현장 직원들이 힘을 모아 얻어낸 성과였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라면 누구나 비용절감을 간절하게 원한다. 그러나 크래프트하인즈의 사례에서 보듯 섣부른 비용절감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위험이 크다. 당장의 수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고객들이 기업을 떠나가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비용절감을 조금 더 고객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올해 어떻게든 이만큼의 생산 비용을 줄인다"라는 목표에만 집중하기보다는 "고객들이 비용절감 조치로 인해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라는 것까지 함께 고려할 때, 비로소 성공적인 그리고 지속가능한 비용절감 계획 수립이 가능할 것이다.

인터비즈 이태희, 장재웅
inter-biz@naver.com

참고자료

이상화, 비용절감 자체가 목표될 순 없어. 개혁을 위한 자발적 참여 유도해야, DBR220호​

PitchBook, "How 3G Capital and a $50B buyout turned Kraft Heinz upside down", 2019.05.23

CNBC, "Kraft Heinz's new CEO inherits challenges left behind by cost-cutting", 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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