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묵힌' 숙성쌀.. 쉐프들에게 인기 폭발?

조회수 2019. 7. 21.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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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쌀 산업은 혁신이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새로운 품종 하나를 개발하는 데만 십수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토리노 인근 곡창 지대에서 쌀농사를 짓는 론도리노(Rondolino) 가문은 작지만 세계적인 '쌀 혁신'을 20여년 간 이어오고 있다. 품종이 아닌 제조공정 혁신을 통해서다. 그렇게 그들이 만들어 낸 쌀 브랜드 '아퀘렐로(Acquerello)'는 전 세계 셰프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로 꼽힌다.

출처: 아퀘렐로 공식 페이스북
아퀘렐로 쌀과 제품

쌀 통조림? '캔'에 담겨 판매되는 아퀘렐로 숙성 쌀

아퀘렐로를 처음 마주하면 가장 먼저 독특한 포장이 눈에 들어온다. 일반적인 쌀 브랜드와 달리 아퀘렐로는 캔에 담겨 있다. 도정 후 산패 방지를 위해 쌀과 함께 질소를 충전해 캔에 밀봉한 것이다. 안에 든 쌀 품종은 평범하다. 이탈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르나롤리(Carnaroli) 품종이다. 카르나롤리는 찰진 특성을 갖고 있는 자포니카 계열 쌀 중에서 알이 상당히 굵은 품종이다. 아퀘렐로는 카르나롤리 품종으로 농사를 짓고, 추수 후 도정을 하지 않은 낱알 상태로 최소 1년 반을 숙성고에서 숙성시킨 후 제품화해 내보낸다. 최근에는 최대 7년까지 숙성한 쌀도 판매하고 있다. 쌀에 일종의 빈티지 개념을 도입한 셈인데, 햅쌀을 선호하는 우리가 보기엔 7년 숙성한 쌀을 판다니 놀라울 뿐이다.

숙성 쌀은 이탈리아 쌀 산업 위기로 탄생했다. 아퀘렐로를 생산하는 론도리노 가문은 대량 생산된 저가 쌀 수입으로 이탈리아 쌀 산업이 위협을 받자 위기 극복을 위해 '품질 연구'에 매진했다.

출처: 동아일보, 문정훈 교수 제공
(이탈리아 토리노 지방에서 쌀 농사를 짓고 있는 론도리노 가문은 제조 공정을 차별화한 쌀 브랜드 ‘아퀘렐로’로 유명 셰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쌀은 숙성하면 수분이 빠지며 향미가 달라진다. 또 쌀 숙성 과정에서 쌀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균열이 생긴 쌀은 품질 관리에 실패로 본다. 그러나 아퀘렐로는 이를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운다. 마치 쌀을 드라이 에이징(dry aging)하는 것과 같다.

아퀘렐로의 미세한 크랙은 비교적 짧은 시간(15분 내외) 조리하는 리소토(risotto)를 만들 때, 리소토 소스가 쌀에 잘 배어들게 하는 비결이 된다. 이 점이 세계적인 쉐프들을 사로잡았다. 현재 작은 박물관으로 개조된 론도리노 가문 옛 농장 건물엔 세계 유명 셰프들과 진행한 다양한 협업 내용이 전시돼있다. 아퀘렐로의 CTO 움베르토 론도리노(Umberto Rondolino)는 "아퀘렐로의 성공은 셰프들과의 협업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아퀘렐로의 가치를 발굴하고 그 가치를 전 세계에 전달한 덕분에 아퀘렐로가 지금처럼 사랑받게 되었다. 

제조 공정의 차별화... 일반 쌀 제조 공정 5단계 -> 24단계로 늘려

아퀘렐로의 또 다른 차별화 포인트는 그 독특한 제조 공정에서 찾을 수 있다. 아퀴렐로는 쌀 도정 과정에서 떨어져 나가는 미강(米糠, 벼에서 왕겨를 뽑은 뒤 백미 도정 과정에서 분리되는 속겨)을 모아 곱게 간 뒤 쌀알과 섞어 제조한다. 실제로 캔에서 쌀을 꺼내 겉면을 보면 노릇한 미강이 얇게 코팅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말은 간단해 보이지만 구체적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쌀은 5단계(재배, 추수, 탈곡, 도정, 포장) 제조 공정을 거쳐 출시되는 반면, 아퀘렐로의 제조 공정은 무려 24단계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이 공정 방식을 통해 아퀘렐로 쌀에는 독특한 풍미가 생긴다. 미강에 함유된 미네랄과 단백질 등을 흡수한 덕에 그 어느 쌀보다 영양도 풍부하다. 그래서 아퀘렐로 쌀은 씻어 먹으면 안된다고 한다. 캔에서 꺼낸 그 상태로 조리해야 그 고유의 맛과 영양을 즐길 수 있다.

출처: 아퀘렐로 공식 페이스북
(아퀘렐로 쌀알의 모습. 확대해서 자세히 보면 쌀 표면의 미세한 균열과 코팅된 하얀 미강을 확인할 수 있다.)

기계화와 자동화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론도리노 가문이 쌀 사업을 처음 시작했던 1935년 당시 120여 명에 달했던 인부 수는 현재 단 20여 명으로 줄었다. 145ha당 쌀 생산을 1.5명 꼴로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아퀘렐로 쌀 생산 및 가공 분야에 최적화된 시설로 개조한 자체 RPC(Rice Producing Center, 쌀 가공시설)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한국에서는 사실상 시도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모든 쌀은 지역 RPC를 통해서만 가공돼 판매가 가능하다. 대형화·자동화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각 지역 농가에서 수집된 쌀들이 RPC에서 모두 섞인다. 효율성 확보에 유리할 수 있으나 차별화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아퀴렐로 제조 시설 전경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59호
필자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부교수
인터비즈 권성한, 박은애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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