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갔다"던 리바이스가 둔 신의 한 수, 6조 6천억 매출 달성 쾌거

조회수 2019. 7. 14.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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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남녀노소 즐겨 입는 ‘청바지’. 청바지를 최초로 발명해 세계인의 옷으로 만든 것은 미국 의류업체 리바이스 스트라우스(Levi Strauss, 리바이스)다. 그런데 '세계최초'라는 말이 무색하게 리바이스의 청바지는 전통만 고집하다 패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었다. 해외 주요 언론은 “리바이스는 더이상 쿨하지 않다”라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출처: 라쿠텐
최초의 오리지널 블루 진 컬렉션 '리바이스 501'

그런데 최근에는 리바이스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지난해 10여 년 만에 56억 달러(약 6조 6천억원)의 연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 3월 20일(현지시간)에는 뉴욕 주식시장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블룸버그통신과 파이낸셜타임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리바이스는 이날 기업 공개를 통해 주당 17달러에 3670만 주를 팔아 6억 2330만 달러(약 7300억원)를 차입했다고 밝혀졌다. 1985년 상장폐지 된 이후 꼭 35년 만의 일이었다. 쇠락의 길로 접어들던 리바이스가 어떻게 부활에 성공한 것일까.

'국민 청바지'의 탄생부터 짚어보자

19세기 후반, 모두가 황금 노다지를 찾아 미국 서부로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 생긴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샌프란시스코다. 한두 해 사이에 갑자기 30만 명이 몰려들었다. 1850년 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든 인파 중에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라는 21살 된 청년도 끼어 있었다. 리바이는 3년 전인 1874년 샌프란시스코로 먼저 이주해 포목장사를 하고 있던 누나를 찾아 갔다. 당시 유럽에서 빈손으로 이민 와 자본이 없었던 유대인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행상이었다. 그렇게 리바이도 광산을 돌아다니며 포목을 파는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리바이가 가만히 지켜 보니 광부들은 포목보다 작업용 바지를 원하는 것 같았다. 작업하기 좋은 두껍고 질긴 바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출처: 위키백과
리바이 스트라우스의 사진

타고난 장사꾼이었던 리바이는 곧바로 텐트용으로 생산된 데님을 이용해 바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청바지가 탄생했다. 청바지는 광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853년 미국의 의류 브랜드인 ‘리바이스(Levi’s)는 그렇게 태어났다. 한 유대인 청년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청바지는 이후 동부 도시 근로자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1940년대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들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됐다. 특히 1950년대 중반에는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 ‘위험한 질주’의 말런 브랜도 등이 영화 속에서 입고 나오면서 청바지는 그야말로 야성과 저항 등 청년 문화를 대변하는 상징코드가 되기도 했다.

잘나가던 리바이스, 성장세 주춤하더니

‘국민 청바지’란 수식어로 승승장구 하던 리바이스는 1990년대에 들면서 돌연 성장이 멈췄다. 1996년 최고조에 달했던 매출액(70억 달러)은 이후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0년 연말 기준 매출액은 46억 달러로 4년 전에 비해 35%나 줄어들었다. 시장 가치는 더 심하게 하락했다. 당시 애널리스트들은 4년 동안 시장가치가 140억 달러에서 80억 달러로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리바이스의 최고 경영진은 성장 정체가 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성장률이 하락하기 직전에 주요 지표들은 놀라울 정도로 호조세를 보였다. 1995년의 성장률은 당시 수 년 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출처: 게스 공식 유튜브

리바이스트라우스의 성장 정체 현상이 나타난 것은 핵심 시장에서 고객들의 선호도가 변하고 새로운 행동양식이 등장했지만 이런 변화를 감지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리바이스는 게스(GUESS), 캘빈클라인(Celvin&Klein)과 같은 신규 시장 진입자들이 차별화 제품으로 기반을 잠식하고 있을 때에도 기존 제품과 서비스에만 투자했다. 1999년 리바이스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인 고든 생크는 “모두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신호를 읽지 못했거나 무시한 것”이라고 인정하며 후회했다.

리바이스의 구원투수로 나선 칩 버그

출처: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칩 버그의 사진

1. 혁신없는 경영진 전면 교체에 나섰다

리바이스가 다시 회복세를 보인 데에는 2011년 9월 칩 버그(Chip Bergh)를 CEO로 영입하면서 부터다. 칩 버그는 프록터앤드갬블(P&G)에서 28년동안 브랜드 관리를 담당하던 마케팅 전문가다. CEO로 취임한 버그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됐다. 리바이스의 연매출이 2001~2010년 사이 한 번도 45억 달러를 넘기지 못했다는 것. 그는 예상보다 형편없는 실적에 깜짝 놀랐다. 그는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최고위 임원 60명을 각각 한시간씩 만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질문은 미리 이메일로 보냈다.

질문을 던졌을 때 답을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저 멍하니… 임원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노를 젓고 있는게 분명했다.

미팅을 15~20번쯤 마치고 나자 버그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리바이스에는 명확한 전략도, 절박함도, 재무적인 규율도 없었다. 게다가 데이터 관리도 엉망이었다. 변화가 절실했다. 버그는 리바이스를 탈바꿈하기로 결심했다. 버그는 경영진을 교체하기 시작했다. 버그가 처음 일을 맡았을 때 그에게 직접 보고하던 임원이 11명이었는데 18개월 안에 그중 9명이 나갔고, 현재는 한 명만 남아 있다.

2. 고객 가정방문으로 브랜드의 본질을 찾다

한편 버그는 시장과 고객에 대해 파고들었다. 일례로 고객의 집을 직접 방문하기까지 이른다.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관심사, 제품을 사용하는 방식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CEO가 된 지 2개월째에 접어들었을 때에 인도 벵갈루루에 거주하고 있는 한 여성 고객의 가정을 방문했다. 그는 이 곳에서 강력한 인사이트를 얻게 됐다.

인도 여성 고객은 허드슨, 게스, 캘빈클라인 등 여러 브랜드의 청바지 10벌 정도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두 벌의 리바이스 청바지를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각각의 청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가장 마지막에 리바이스 청바지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첫 번째 청바지를 가리키며 “이건 제가 자주 입는 청바지예요. 친구들을 만나거나 할 때요”라고 말했다. 두 번째 청바지를 보면서는 “대학 다닐 때 입었던 청바지에요. 이젠 몸에 맞지 않아서 입을 수 없지만, 추억이 많아서 버릴 수가 없네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청바지는 그냥 입는 거고, 리바이스 청바지는 그 안에서 같이 사는거죠,”라는 말을 덧붙였다.

출처: 리바이스 공식 유튜브

순간 버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표현이 곧 리바이스의 본질이었다. 버그 또한 리바이스와 함께 자란 세대였다. 그렇게 “리바이스 안에 산다(Live in Levi’s)”라는 태그라인이 탄생했다. 그럴듯한 태그라인을 만들었다고 해서 새로운 돌파구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리바이스에는 명확한 전략이 필요했다.

3. 4가지 핵심전략을 세웠다

그럴듯한 태그라인을 만들었다고 해서 새로운 돌파구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리바이스에는 명확한 전략이 필요했다. 칩 버그는 4가지 핵심 전략을 세우고 본격적인 혁신에 나섰다.

1) 수익성 높은 핵심사업부문을 만든다 : 리바이스 현금흐름과 영업이익의 80%가 남성바지 부분에서 나오고 있었다. 버그는 핵심 사업부문이 건강하지 않으면 비즈니스는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 더 많이 확장한다 : 당시 여성의류 시장에서 리바이스의 점유율이 매우 낮았다. 상의 또한 많이 팔지 못하고 있었다. 의류산업에서 보통 사람들이 바지나 치마 한 벌을 살 때 상의는 3~4벌을 사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리바이스의 판매 수치는 이와는 정반대였다. 바꿔말하면 그곳에 기회가 있다는 의미였다.

3) 선도적인 옴니채널 소매업체가 된다 : 리바이스는 매출 대부분이 백화점에서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전 세계에 2700개의 직영매장도 있고, 온라인 쇼핑몰도 있었다. 버그는 두 채널을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직영매장에서는 고객의 경험을 통제할 수 있었다. 또 판매 마진도 더 높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 시간이 갈수록 온라인이 의류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에서 였다.

4) 운영 효율성을 높인다 : 버그는 기술 개발과 혁신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고자 했다. 비용을 절감하고 현금흐름을 늘려야 했다. 이를 위해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재무적으로도 규율을 갖추었다.

출처: 리바이스 공식 유튜브
유레카 랩 내부 전경

버그는 새로운 전략으로 모은 자금으로 리바이스의 연구센터인 ‘유레카 혁신 랩’에 투자했다. 이 연구소는 터키의 촐루에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디자이너 대부분은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촐루에 가려면 12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1년에 한두 번씩만 촐루에 다녀왔다. 샘플을 주고 받는 데도 큰 돈이 들었다. 의류분야의 혁신작업은 반복적이고 또 직접 만져봐야만 가능한데, 의류기업이 혁신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2013년 새로운 연구센터를 연 뒤 거둔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2015년에 선보인 여성데님 라인이다.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 애슬레저 의류가 인기를 끌고있었다. 착용감이 편안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리바이스가 만든 청바지는 신축성이 없어 뻣뻣했다. 여성 소비자들이 리바이스를 찾을 리가 만무했다. 이 점을 고려해 착용감이 편한 청바지를 개발했다. 상의 카테고리도 개선했다.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는 로고 플레이(LOGO PLAY) 트렌드를 반영해 리바이스 로고가 적힌 다양한 상의도 선보였다. 현재 상의 판매는 리바이스 사업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리바이스의 고객은 그 어느때보다 젊다

리바이스는 '엄마 아빠가 입는 청바지'라는 올드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오프화이트, 나이키, 베트멍 등의 브랜드와 협업을 펼치고 있다. 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크리스틴 스튜어트, 키이라 나이틀리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사랑하는 브랜드'라는 스타마케팅을 펼치며 젊은 소비자들을 다시금 사로잡고 있다.

출처: 리바이스 공식 인스타그램

그는 "리바이스가 역사적 정점이었던 연매출 70억 달러를 넘어서, 언젠가는 100억 달러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2000년대 초반 리바이스는 한 세대에 해당하는 소비자들을 잃었지만 현재 우리의 고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젊다고" 말했다. 과거보다 나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꿈꾸는 리바이스의 행보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 이 글은 프리미엄 경영매거진 DBR·세계적 경영저널 HBR을 참고, 발췌해 작성했습니다.

▶리바이스, 캘빈 클라인, 그리고 게스… 패션 권력 낳은 창의적 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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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바이 스트라우스 CEO, 상징적인 브랜드를 다시 성장으로 이끄는 법'

인터비즈 이슬지, 임현석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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