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지난 음식파는데 손님은 와글와글 "대체 왜?"

조회수 2019. 6. 29.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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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이나 기타 식재료를 대량으로 유통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상품, 잉여 생산물이 발생한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팔 수 없는 것'은 곧 '가치 없는 것'이기에, 이들은 폐기하는데 돈만 들어가는 음식물 쓰레기 취급을 받아왔다. 이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기까지 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UN 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에 따르면 전 세계 음식물 소비량의 1/3인 13억 톤이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진다. 국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만 연간 500만 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하고, 이 중 70%는 모두 유통 및 보관 과정에서 버려지는 것들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지금까지는 이렇게 상품가치가 없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들을 폐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상식이 깨지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먹을 수만 있으면 조금 못생기면 어때?"라는 생각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품가치가 없는 식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푸드 리퍼브(Refurbish)'를 탄생시켰다. 버려질 뻔한 식품들은 어떻게 다시 태어나고 있을까.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리지 마세요!

마트에 가면 균일한 크기, 비슷한 생김새의 채소들이 한가득이다. 하지만 모든 채소들이 이처럼 예쁘게만 자랄 수는 없다. 농장에서는 외관상 흠집이나 변형된 형태를 가진 막대한 양의 과일, 채소들도 함께 생산된다. 이들은 품질에 아무 이상이 없어도 상품가치가 낮다는 이유로 음식물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미국 환경보호단체 NRDC에 따르면, 미국에서 생산되는 과일, 채소의 20%는 단지 생김새를 이유로 버려지고 있다.

출처: 인테르마르셰 페이스북
(인테르마르셰의 못생긴 제품 홍보 포스터)

'못생겼다(Ugly)'라는 이유로 멀쩡한 농산물이 버려지는 것은 큰 낭비다. 때문에 최근 해외 유통업체들은 이러한 못난이 제품을 리퍼브 제품처럼 판매하기 시작했다. 2014년 프랑스의 슈퍼마켓 체인 '인테르마르셰(Intermarche)'가 "못생긴 당근? 수프에 들어가면 상관없잖아."와 같은 문구의 포스터를 뿌리며 크게 효과를 본 것이 시발점이었다. 이후 '못생긴 농작물' 열풍은 유럽, 미국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현재는 월마트(Walmart), 홀푸드(Whole Foods), 크로거(Kroger's) 등 유통업체들까지도 동참해 일반 채소의 30~50% 저렴한 가격에 못생긴 채소를 판매하는 중이다.

못생긴 농산물을 활용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스타트업도 등장하고 있다. 소비자 또는 식품기업을 상대로 농산물을 유통하는 것인데, 특히 못생긴 작물을 매주 직접 배송해주는 구독 서비스가 주목받는다. '임퍼펙트 프로듀스(Imperfect Produce)'가 대표적이다. 버려지는 농작물에 대한 경각심이 컸던 20대 후반의 두 청년 벤 사이먼(Ben Simon)과 벤 체슬러(Ben Chesler)는 2015년 8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못생긴 농작물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원래는 기존의 식료품점과 파트너를 맺어 유통을 하려고 했지만, 업체들은 상품성 없는 농산물을 팔려는 청년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하는 구독 형태의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다.


업계의 예상과 달리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일반 마트보다 30% 저렴한 가격으로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매주 배송해주는 서비스에 소비자들은 큰 호응을 보였다. 본인의 입맛에 맞게 원하는 과일과 채소를 선택할 수 있고, 원한다면 100% 유기농 상품으로 구성할 수도 있어 만족도 또한 높았다. 덕분에 현재는 22개 도시에서 2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약 250개의 농가로부터 못생겼지만 신선한 농작물을 공급받고 있다. 사이먼은 현재까지 쓰레기로 버려질 농작물 4천만 파운드(약 1만 8천 톤)를 구했으며 올 한 해에만 5천만 파운드(약 2만 3천 톤)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임퍼펙트 프로듀스 홈페이지
(못생긴 고구마를 포장 중인 직원)
출처: 임퍼펙트 프로듀스 홈페이지
(임퍼펙트 프로듀스의 구독 옵션)

국내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 2017년 문을 연 '지구인컴퍼니'는 못생긴 농산물이나 팔리지 않은 잉여 농산물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못생긴 사과, 못생긴 감귤 등 원물을 30~40% 저렴한 가격에 팔기도 하지만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춘다. 농산물을 가공할 경우 못생긴 외형이 가려지고 보관 기간이 길어질 뿐만 아니라 부가가치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귤 스프레드, 자두 병조림, 포도즙 등 자체 개발한 제품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가 순식간에 매진됐다. 지난 1년 반의 기간 동안 100톤 이상의 못생긴 농산물을 구출한 지구인 컴퍼니는 업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출처: 지구인 컴퍼니 홈페이지
(못생긴 채소로 만든 죽)
출처: 지구인 컴퍼니 홈페이지
(못생긴 귤 스프레드)

유통기한 지난 음식도 다시 보자!

또 다른 푸드 리퍼브의 대상은 '남은 음식'이다. 누군가 먹고 남긴 음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팔다 남은 멀쩡한 음식, 팔고 남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 등을 말한다. '당연히 버려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먹는 데 아무런 지장 없는 음식을 단순히 팔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버리는 것은 막대한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으로 이어져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유통기한 지난 제품을 파는 것이 합법적인 덴마크에서는 리퍼브 슈퍼마켓 '위푸드(WeFood)'가 인기다. 덴마크의 시민단체 '단처치에이드(DanChurchAid)'가 운영하는 위푸드는 품질에 이상이 없지만 유통기한, 라벨 결함 등의 이유로 일반 슈퍼마켓에서 팔 수 없는 상품을 판매한다. 제품은 대형 유통업체, 베이커리 등으로부터 기부 형식으로 받아온다. 그리고 시중 가격의 30~50%의 가격에 판매해 수익을 낸 후 그중 일부를 저소득층 지원활동에 활용한다. 위푸드는 공급업체의 폐기비용을 줄이고, 소비자의 지출을 줄이며, 빈민들에게는 지원을 하는 사회적 가치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2016년 1호점을 열었을 때 덴마크의 왕세자비가 직접 방문해 극찬을 했고, 이를 계기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출처: DanChurchAid 트위터
(위푸드에 줄을 선 덴마크 사람들)
출처: DanChurchAid 홈페이지
(덴마크 소비자)

버려질 식자재를 식품으로 재탄생시키는 리퍼브 식품점도 있다. 영국의 사회적 단체 TRJFP(The Real Junk Food Project)는 2013년부터 슈퍼마켓, 식당, 케이터링 업체에서 버려질 식자재를 활용해 식당을 운영 중이다. 독특한 점은 어떤 메뉴에도 가격이 정해져있지 않다는 것. 음식의 가치를 먼저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그 가치를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느낀 효용만큼 내는 것(Pay As They Feel)'을 운영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소비자는 본인이 음식에 가치를 느낀 만큼만 지불하면 되고, 사정이 어려운 경우 식당에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식비를 대체해도 된다. 작은 카페에서 시작한 TRJFP는 현재 7개 국가 12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 중이며, 현재까지 약 5천 톤의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성과를 냈다.

출처: TRJFP 홈페이지
(TRJFP 직원)
출처: TRJFP 홈페이지
(남은 식자재를 재탄생시킨 TRJFP의 음식)

사회적 가치와 비즈니스가 점점 불가분의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 소비자들은 환경, 인권 등의 가치를 자신의 소비 행위와 결부시키고 있으며 기업들은 어떻게 제품에 사회적 가치를 엮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 시점에서 버려질 식품을 통해 친환경의 가치와 수익을 동시에 낳는 푸드 리퍼브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던져준다. 당연히 버려왔던 것들을 쓰레기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인터비즈 이태희, 장재웅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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