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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까다로운 '기내식' 비즈니스의 세계

조회수 2019. 6. 25.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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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식의 묘미는 불편함이다. 이코노미석에선 팔꿈치를 몸에 붙인 채 옴싹달싹할 수 없는 자세로 식사 포장을 벗겨내야 한다. 모두 똑같은 시간에 조심스럽게 이뤄지는 기내 식사는 긴 여정에 들어서기 위한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상식적으론 옷을 더럽힐 가능성이 전혀 없는 간단한 음식 정도로도 될 텐데 왜 포크 등 식기까지 쓰면서 기내식을 먹는 걸까? 이탈리아의 철학자 움베르트 에코의 가설이 재미있다. "승객으로 하여금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기분을 갖게 하려는 것". 음 그렇지. 후식으로 나오는 케이크를 떠올리면 꽤 설득력있게 들린다.

출처: 동아일보DB

그러나 조금 더 비즈니스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기내식 준비가 호사와 낭만으로만 이뤄진 사업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하늘 위에 낭만과 무관하게 비즈니스 조건은 가혹할 정도다. 우리가 아시아나 기내식 중단 사태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다.

이익률 18%...알짜사업이지만
'규모의 경제' 실현 조건

국내 항공사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기내식을 소화할까. 대한항공은 인천·김포·부산 자체 공장에서 하루 7만 5000명, 아시아나항공은 성수기 기준으로 3만 명분을 조달한다. 평균적으론 2만 5000명 분이다.

지난해 6월까지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을 담당한 케이터링 업체 LSG스카이셰프코리아는 2017년 매출 1890억 원, 영업이익 344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이 18.2% 수준이다. 그 전년도 영업이익률은 23%에 달했다. 항공 운송의 경우엔 중간 이윤율이 5%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기내식 사업은 꽤나 알짜사업이다.


시장 규모는 글로벌 기준으로 연간 17조 원, 국내 항공사 기준으론 연간 4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 규모라면 도시락 업체들도 도전할만 하지 않을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기내식 비즈니스는 꽤나 까다로운 항공법과 위생 기준을 만족시켜야 해 초기 큰 규모의 설비투자가 필수다. 일반적으로 당일 제작-납품시스템이어서 공항 근처에 공장을 갖추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빵과 같은 포장제품도 이틀 이상 지난 제품은 보통 쓰지 않는다. 군소업체가 쉽사리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항공사와 안정적인 거래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않으면 투자가 무의미해진다. 거래처가 항공사로 제한적이다 보니 제대로 된 '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도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상그룹이나 CJ그룹 등 국내 식품 대기업도 도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입장벽이 견고한 시장이다. 

출처: 게이트고메 홈페이지
(게이트고메 서비스 지역.)

규모의 경제는 필수인 데다가 이용자 눈높이는 높아지는 추세이다 보니 노하우를 갖춘 주요 업체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흐름이 보인다. 글로벌 기내식 시장에선 독일항공사 루프트한자 계열인 LSG스카이쉐프(LSG)와 최근 중국의 거대자본 하이난그룹이 스위스서 인수한 게이트고메가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지 공장을 통한 당일 조달 시스템은 필수이다 보니, 주로 각국 공항에 주요 항공사와 합작 형태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

LSG의 경우, 2017년 매출만 우리돈으로 약 4조 원에 달한다. 2017년에 제공한 기내식만 7억 개에 이른다. 거래를 맺은 항공사는 무려 약 300개. 이보다는 후발주자이지만 게이트고메의 연간 매출도 우리돈으로 약 3조 원을 넘는 수준이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모습.)

진에어나 제주항공 등의 연 매출이 1조 원에 조금 못 미치는 것을 감안하면 왠만한 항공사 매출 보다도 나은 셈이다. 두 업체가 기내식을 팔아 올린 매출 규모는 2017년 아시아나 항공이 기록한 매출규모(약 6조 2000억 원) 보다 많다. 영업이익률을 고려하면 주요 항공사 매출도 부럽지 않다.

포장 보관 운송 톱니바퀴처럼 맞아야...공급지연시 기내식 업체가 책임 부담

한국에서 기내식 사업을 벌이는 업체는 대한항공 기내식센터, LSG스카이셰프, 샤프도앤코, CSP 4곳에 불과하다. 올해부터 참여하기로 한 게이트고메코리아는 지난해 3월 공장 화재로 인해 생산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아시아나항공 사태서 언급된 샤프도앤코는 주로 중동 항공사에 할랄푸드(무슬림이 먹는 음식)로 특화한 덕분에 성장한 업체다. 국내 기내식 업체 중 한 곳인 CSP는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티웨이 등 저가항공사와 거래를 맺고 있다. 국내 시장의 한계상 업체수는 더 늘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출처: 동아일보 DB
(싱가포르항공의 SATS 케이터링 센터)

기내식 사업이 까다로운 것은 통상적으로 식자재를 반입해 음식을 만들고, 이를 식기에 담은 뒤 포장을 해서 항공기에 싣는 과정까지 총 6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우선 기내식 조리실에 입장하려면 머리에 이중 모자를 쓰고 온 몸을 둘러싸는 가운을 입는 것은 기본이고 드나들 때마다 밀폐 공간에서 에어워셔기를 통해 공기 샤워를 해야 한다. 테러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조리실 문은 보안게이트로 이뤄져야 한다.

출처: 동아일보 DB
(조업사가 기내식을 담은 카트를 내부로 옮기고 있다.)

대량 생산된 음식은 항공사에서 사용하는 용기에 담아 메뉴별로 옮긴다. 이때 기내식의 최우선 고려 요소는 재료의 신선도 유지와 위생 상태다. 보통 당일 생산을 기내식 공급 원칙으로 삼는다. 포장 가능한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하루 전 진공포장한 뒤 적절한 온도에서 보관한다. 항공사마다 다르긴 하나, 보통 고열로 가공하지 않은 달걀 및 유제품 등은 제공 금지 품목에 속한다.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사태를 통해 식사업체와 항공사 간의 거래계약 내용이 일부 공개됐는데 이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과 하청업체와 맺은 계약에서 30분 이상 공급 지연 시 음식값의 절반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와 같은 지연 규정은 대부분의 업체에 적용된다.(물론 공급능력이 부족한 업체에 같은 규정을 적용한 점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공급이 지연될 경우 항공기 출발에 영향을 미치는 탓이다.

출처: 동아일보 DB
(사진을 계속 보면 카트가 굴러오는 느낌이 드는 매직아이..가 아니라 항공기 기내식 카트 사진.)

완성된 음식을 식기에 세팅하고 푸드 트럭을 통해 탑재하는 작업도 까다롭다. 이후 항공기에 탑재하기 위해선 카트로 옮기는 작업도 거쳐야 한다. 카트에는 일련변호가 적힌 잠금장치를 설치해 외부의 접촉을 차단한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만 납기를 맞출 수 있다. 제때 납기가 생명인 만큼, 복잡한 하청 구조를 거칠 경우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이 계약했던 기내식 업체에서 식사를 제때 납품하지 못해 이른바 '기내식 사태'가 불거졌다. 당시 파문을 통해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과 달리 기내식을 외주로 납품받는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도 처음엔 자체적으로 기내식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2003년 기내식 사업부를 루프트한자 계열의 LSG스카이셰프에 매각했다. 외환위기와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파동 등이 맞물리면서 항공사가 어려운 시기에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했다는 게 아시아나항공 측의 불만이었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은 기내식 제공업체를 LSG스카이셰프에서 게이트고메코리아로 바꿨다. 지난해 7월부터 30년 납기를 보장하는 계약이었다. 그러나 지나해 3월25일 인천에 있는 게이트고메코리아 신축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예정된 공급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결국 기존 업체였던 LSG에 임시로 납품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계약을 끝내는 과정에서 감정이 상한 LSG 측이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비즈 최예지
inter-biz@naver.com
출처: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39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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