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에 4시간 줄 선다고? "허세 아니야?"

조회수 2019. 6. 9.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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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 250개 한정 판매!!

홈쇼핑에 나오는 홍보 문구가 아니다. 미국 수제 햄버거 계의 대표 주자 ‘인앤아웃 버거’가 서울에 단 하루짜리 팝업 스토어를 선보이면서 내건 조건이다. 실제 인앤아웃 버거는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바비레드 매장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햄버거 250개를 선착순으로 판매했다. 그런데 이 한정판 햄버거를 먹기 위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출처: 동아일보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서인지 이날 인앤아웃 팝업 스토어에는 아침 7시 전부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오전 8시를 넘어서자 기다리는 사람만 수십 명에 달했다. 인앤아웃버거는 당초 오전 11시에 문을 열 예정이었지만 대기 인원이 계속 늘어나자 오전 9시 30분부터 햄버거 판매를 시작했다. 선착순으로 팔찌를 배부해 ‘한정판’ 햄버거를 판매했는데 10시가 되기 전 준비된 팔찌 250개가 모두 소진됐다. 아침부터 2시간 이상 기다려 팔찌를 득템한 사람들은 햄버거를 맛볼 수 있었지만 이들보다 많은 사람들이 매장을 찾았다가 허탈하게 발을 돌렸다.

해외 외식 브랜드 한국 진출마다 반복되는 '줄서기' 현상

햄버거 하나를 먹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이 광경은 기시감이 들 만큼 익숙하다. 인앤아웃버거와 함께 미국 3대 수제버거 브랜드라고 평가받는 ‘쉐이크쉑버거’가 한국에 처음 진출했던 2016년 7월에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당시 30도를 넘는 고온으로 매장 밖에 줄을 서는 것이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사람들은 폭염에 아랑곳하지 않고 1시간 이상을 기다려서 한국에 처음 들어온 햄버거를 먹었다.


햄버거뿐만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해외 유명 식음료 브랜드들이 한국에 매장을 낼 때마다 비슷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가깝게는 2주 전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한국 1호 매장을 연 블루보틀 사례를 들 수 있다. 매장 개장 첫날 사람들은 오픈 시간인 8시보다 한참 전인 새벽 3~4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고, 가게 일대는 이미 오전 6시부터 인산인해였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대기해야 하는 시간은 이날 하루 종일 평균 4시간 이상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기다렸고 커피를 마시고 인증샷을 찍어 올렸다.

출처: 타이거슈가 홈페이지

이들 외에도 최근 음료 시장에 '흑당 열풍'을 불러일으킨 '타이거슈가'나 대만의 샌드위치 브랜드 '홍루이젠', 뉴욕의 컵케이크 브랜드 '매그놀리아' 등이 한국에 진출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곳들은 별다른 홍보 없이 블로그나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며 ‘핫 플레이스’가 됐다. 그리고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먼저 이 '핫 플레이스'를 경험하고 이를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기 위해 긴 줄을 마다하지 않았다.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사실 아무리 유명한 식음료 브랜드라고 해도 그래봐야 햄버거고 커피다. 항상 그렇듯 초기 사람들이 몰리는 시기만 피하면 나중에는 크게 기다리지 않고 이들 브랜드를 즐길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왜 젊은이들은 이런 브랜드들이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긴 시간의 줄서기를 마다하지 않을까?

일단 이런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 20~30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기성 세대들과 비교해서 본인만의 특별한 경험이나 자기만족을 중시하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이들은 남들이 다 아는 브랜드를 소비하기보다는 남들은 잘 모르거나 알아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희소성’이 있는 브랜드에 열광한다. 한국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인앤아웃버거의 팝업스토에를 굳이 새벽부터 찾아가 줄을 서는 것도 ‘나는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한다’는 자기만족이 가장 큰 이유라는 평가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남들보다 먼저'하는 것이다. 먼저 해야만 희소한 경험이 되고 이를 공유할 때 개인의 만족도는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구민정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남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남들보다 빨리 경험하는 데서 가치를 느끼는 심리가 요즘 세대들에게 있는 것 같다"라며 "과거 기성 세대들이 럭셔리 브랜드를 소비하면서 느끼는 배타성(Exclusivity)을 인앤아웃버거나 블루보틀에서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특성은 ‘플라시보 소비’나 ‘가심비 소비’와 같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플라시보 소비는 가짜약, 속임약을 뜻하는 ‘플라시보'(Placebo)란 단어와 ‘소비’가 결합된 신조어로 환자를 일시적으로 안심시키기 위해 투여되는 속임약인 플라시보처럼 실질적으로 객관적인 제품의 성능과는 상관없이 본인의 만족을 위한 소비를 통해 일시적인 안심과 행복을 느끼는 소비행태를 뜻한다. 가심비 소비 역시 제품의 가격과 성능이 아닌 나의 만족을 위해 소비를 하는 행태를 뜻한다. 두 단어는 모두 ‘자기만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밀레니얼 세대들의 소비 행태를 표현하는 신조어다. 즉, 이들 세대는 내가 하는 특정 경험이 내가 지불하는 가격 대비 '희소성'과 '독창성'이 있을 때 이를 기꺼이 소비하고 이를 통해 만족감을 얻는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의 한 관계자는 "몇 주만 기다리면 기다리지 않고도 해당 브랜드를 즐길 수 있겠지만 굳이 오래 기다려서라도 남들보다 먼저 해당 브랜드의 제품을 경험하려는 것은 그래야 만족이 크기 때문"이라며 "그런 심리 때문에 최근에는 한국 진출 초기 사람이 확 몰렸다가 SNS 등에 인증샷들이 많이 올라오고 많은 사람들이 해당 브랜드를 경험하면 그 인기가 빠르게 사그라드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증'을 통해 '인정'받고자 하는 심리, 그리고 '인싸놀이'

'희소성'과 함께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역시 줄 서기를 부추기는 요소다. 요즘 세대를 불문하고 ‘인싸’라는 용어가 유행이다. 과거에 흔히 사람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지내는 학생을 지칭할 때 쓰던 ‘아웃사이더’의 반대말인 ‘인사이더’를 줄여 부른 신조어인 ‘인싸’는 아주 인기 있는 사람이나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사람 등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유행하는 맛집을 잘 알고 많이 가 봤거나, 유행하는 아이템을 갖고 있으면 '인싸' 취급을 받는다. 같은 맥락에서 인앤아웃버거, 블루보틀 등의 인기는 '인싸되기'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증을 통한 '인싸놀이'에 집착하는 것은 이를 통해 타인의 인정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쉽게 갈 수 없는 장소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서비스를 남들보다 먼저 경험해 보고 이를 SNS에 공유하는 행위를 통해 내가 남들보다 앞서 있는 이른바 '인싸'임을 보여줘 인정을 받고 싶은 심리가 줄서기 현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박정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런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단순히 인앤아웃의 햄버거나 블루보틀 커피를 좋아한다면 그냥 먹고 즐기면 된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들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을 넘어서 꼭 이를 SNS에 공유한다. 이건 '내가 이만큼 쿨한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허세다.

하지만 기존의 고급 사치품을 소비하는 허세와는 차이가 있다. 밀레니얼은 이런 돈 자랑은 천박한 허세로 여긴다.
대신 자신은 쿨한 감성과 이에 맞는 트렌디한 라이프 스타일을 영위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블루보틀 커피가 다른 커피보다 월등하게 맛이 뛰어나서 블루보틀에 줄을 서는 것이 아니다.
커피의 본질인 맛 자체보다 보여주기 쉬운 맛의 부가적 요소들, 패키지나 인테리어 등을 보여주면서

결국 '나는 트렌드에 발맞춰 잘 나가는 사람'이란 이미지를 은연중에 던져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실제 이런 심리는 인스타그램 태그 수를 보면 잘 드러난다. 오픈 한 달이 조금 안된 5월 27일을 기준으로 인스타그램에 블루보틀과 연관된 해시태그를 검색해보면 ‘블루보틀코리아’, ‘블루보틀성수’ 등 한국 블루보틀과 관련된 태그가 각각 5000개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유튜브의 ‘블루보틀 후기’관련 영상은 수십 개에 달한다. 또, 인앤아웃버거 팝업스토어가 열린 22일 하루 동안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 SNS에는 팝업스토어와 관련된 수천 개의 다양한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왔다. 인앤아웃버거가 단 하루 동안의 팝업스토어 운영을 위해 준비한 햄버거는 250개에 불과하지만 SNS 상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인증샷들이 올라온 것. 밀레니얼 세대들이 이들 매장에 가는 이유는 결국 '인증'을 통한 '인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한편으로는 자신만 소외되거나 고립됐다고 느끼는 공포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심리와도 연결된다. 이를 흔히 ‘포모(FOMO)’ 증후군이라고 한다. ‘FOMO’는 ‘Fear Of Missing Out’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세상의 흐름에 자신만 소외되거나 고립됐다고 느끼는 공포감을 일컫는다. 포모는 원래 한정 수량을 강조해 구매 행위로 이끄는 마케팅 전략을 이르는 단어였다. 그 후 하버드, 옥스퍼드 대학에서 이를 ‘유행에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공포심리’라는 사회 병리 현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주목받게 됐다. 전문가들은 SNS의 발달이 대중들의 포모 심리를 더욱 자극한다고 설명한다.

'작은 허세' 추구하는 젊은이들을 줄세워라! 기업 가치가 올라간다

사실 최근까지 줄서기는 짜증 나는 경험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인앤아웃버거나 블루보틀 등의 사례를 보면 줄 서는 것이 꼭 괴로운 경험만은 아님을 잘 보여준다. 또한 최근 연구들 역시 '줄 세우기'에는 순기능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마케팅 및 심리학 분야에서 최근 주목을 받는 접근 방식이 '목표 기반 분석 방식(Goal-based Analysis)'다. 이는 인간의 목표와 동기에 기반한 분석 방식으로 사람은 누구나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기적 힘(Motivational force)이 존재한다는 접근 방식이다. '줄 서기'에 이러한 목표 기반 분석 방식을 적용하면 사람들의 줄 서는 행위는 제품을 구입하거나 서비스를 받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과정이자 수단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까지 사람들은 '기다림'이라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또한 목표 기반 분석 방식에 따르면 이들 '줄 서는 고객'은 주변에 함께 줄 서는 사람들로부터 스스로 목표에 대한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유추하게 된다. 다시 말해, 나를 기준으로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목표를 향해 내가 아직 해야 할, 남아 있는 노력을 상징한다. 반대로 '뒤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는 내가 이 목표를 향해 그동안 이룬 성취(Accomplished actions)를 상징하게 된다.

따라서 줄을 선 사람들은 자신의 뒤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이 성취감은 자신의 '목표', 즉 구입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제품이나 음식, 서비스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실제 이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그중 구민정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와 아예렛 피쉬바크(Ayelet Fishbach)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한 대학 캠퍼스의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진행한 현장실험(field experiment)을 살펴보자.

스타벅스 커피 음료와 베이커리 제품 외에 다양한 런치 박스, 샐러드, 샌드위치, 음료수, 스낵, 과자 등을 판매하는 매장에서 진행된 실험이다. 이 매장에서는 대부분의 제품들이 고객들이 서는 줄 옆에 진열돼 있다. 줄을 서 있는 동안 제품을 골라 계산대에 이르렀을 때 한꺼번에 계산하게 된 구조다. 줄서기와 소비 지출의 관계를 가장 잘 테스트할 수 있는 실제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실험자가 고객들이 모르게 줄을 서는 각각의 고객들을 관찰하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보를 기록했다.

 

1) 고객이 줄을 섰을 때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의 수

2) 고객이 계산대에 도달했을 때 뒤에 서 있는 사람의 수

3) 고객의 제품 구입 총액

이 세 변수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계산대에 이르렀을 때 뒤에 서 있는 사람의 수가 많을수록 고객의 지출이 늘어나는 상관관계가 나타난 것. 고객들의 구입 총액은 고객들이 처음 줄을 섰을 때 앞에 서 있었던 다른 사람들의 수, 즉 줄의 총 길이와는 무관했다. 이를 다시 해석해보면 고객들은 뒤에 많은 사람들이 서 있을 때 자신의 목표를 향한 일종의 성취감을 느낀다. 이 결과 제품의 기대 가치가 올라가며 이는 더 많은 제품, 혹은 더 비싼 제품을 구입하는 ‘지출 증가’의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제품 구입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줄서기’가 제품의 기대 가치를 넘어 구입 총액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줄을 서는 고객이 많을수록 만족도가 커진다는 점에서 보면 인앤아웃버거나 블루보틀 매장 앞에 줄을 서는 사람들의 심리는 짜증보다는 기대나 즐거움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인앤아웃버거나 블루보틀 매장 앞에서 햄버거 한 개, 커피 한 잔을 먹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이를 짜증스러워 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은 기다림 자체를 하나의 놀이처럼 즐겼다. 고객들은 연신 매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이를 SNS에 공유하며 즐거워하고 일부는 동영상 생중계로 자신이 몇 시간씩 줄을 서고 있음을 자랑하기도 했다. 줄이 길고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자신이 다른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경험을 먼저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만족감이 커졌을 가능성이 높다.

인앤아웃버거 팝업스토어에 긴 줄이 형성됐다는 뉴스들이 나오면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한국인들의 쏠림 현상이나 지나친 유행 타기에 대한 비판도 있고 사대주의니, 허세니 하는 말들도 나온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인들 입장에서는 이들 매장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고객들이 알아서 찾아와 줄을 서고 사진을 찍어서 SNS에 홍보도 해주니 말이다. 욕을 하든 찬탄을 하든 일단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아야 줄도 생긴다. 당신은 어떻게 고객을 줄 세울 것인가.

출처: 블루보틀 편집

* 참고 문헌  
Koo, Minjung, and Ayelet Fishbach (2010), “The Silver Lining of Standing in Line: Queuing Increases Value of Products,”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 47 (4), 713-724.

인터비즈 장재웅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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