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2살, 상사는 31살.. 호텔 CEO였던 내가 스타트업의 '멘턴'이 됐다

조회수 2019. 6. 7.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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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 콘리(Chip Conley)'는 미국 부티크 호텔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24년 동안 '주아 드 비브르 호스피탈리티'의 CEO로 재직하며 50개가 넘는 부티크 호텔의 설립과 관리를 총괄했다. 그 결과 주아 드 비브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부티크 호텔 브랜드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그가 52세에 돌연 에어비앤비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당시 에어비앤비는 작은 IT 스타트업으로 여겨지고 있었고, 칩 콘리 본인도 에어비앤비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몰랐다. 그런데도 칩 콘리가 에어비앤비에 입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에어비앤비에 나이 많고 아무것도 모르는 직원이 입사했다

출처: flickr 편집 https://www.flickr.com/photos/worldtravelandtourismcouncil/16980490430
칩 콘리

에어비앤비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와 칩 콘리의 인연은 브라이언이 칩 콘리에게 호스피탈리티 혁신을 주제로 강연을 부탁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에 브라이언은 칩 콘리에게 아예 에어비앤비에서 일해볼 것을 제안한다. 그런데 칩 콘리는 에어비앤비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몰랐다. 그는 우버나 리프트를 써본 적도 없었고, 공유경제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에어비앤비에서 다루는 다양한 기술에 대한 지식도 전무했다. 또 25년간 CEO로 일했는데 이제 와서 20살 이상 어린 상사들에게 보고를 하고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젊고 호기심 많고 반항적인 CEO와 같은 분위기를 공유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브라이언의 제안을 승낙한다. 그렇게 칩 콘리는 브라이언의 사내 멘토이면서 다른 경영진을 위한 고문 역할로 매주 15시간씩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된다. 멘토 역할로 입사하기는 했지만 칩 콘리는 자신이 인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 초기에 젊은 직원들이 쓰는 기술 용어와 개념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에어비앤비의 비즈니스 모델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한 직원은 칩 콘리에게 “어떻게 그렇게 현명하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모를 수가 있느냐"라고 물을 정도였다. 칩 콘리는 한마디로 '멘턴(멘토+인턴)'이었다.

칩 콘리는 주 15시간의 근로 계약이 무색하게 하루 15시간씩 일하며 열정을 쏟아냈다. 그는 곧 상근직으로 계약을 다시 체결하고 에어비앤비 글로벌 호스피탈리티 및 전략 책임자로서 5년 동안 일했다(현재는 상근직을 그만두고 에어비앤비의 전략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에어비앤비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호스피탈리티 브랜드로 도약했다.

갑작스럽게 성장한 젊은 기업, 젊은 리더를 위해 칩 콘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최근 젊은 디지털 리더들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의 유니콘 기업은 인력과 프로세스를 확충하지 못한 상태에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회사가 성장하는 경우가 있다. 젊은 창업자와 리더들은 비즈니스 경험이나 인생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커져버린 기업이나 부서를 경영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이때 젊은 리더들에게는 시니어의 지혜와 노련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칩 콘리가 20살 이상 어린 비상한 인재들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었던 일들은 무엇이 있었을까?

1. 에어비앤비의 호스피탈리티 강화

출처: 에어비앤비 유튜브 채널

칩 콘리가 2013년에 에어비앤비에 입사할 당시 에어비앤비의 누적 숙박 횟수는 400만 건 정도였다(현재는 3억 건 이상이다).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많은 이용객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에어비앤비는 단순 기술 기업으로 여겨졌다. 에어비앤비 창업자들은 에어비앤비가 IT 스타트업을 넘어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환대)' 문화를 파는 기업이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IT업계의 전문가들은 호스피탈리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반면에 칩 콘리는 호스피탈리티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사업 초창기만 해도 에어비앤비 창업자들은 '호스피탈리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로 여겼다. 호스피탈리티가 마치 손님을 '사장님' 혹은 '사모님' 등으로 부르는 것처럼 가식적인 친절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에어비앤비의 젊은 혁신가들은 호스피탈리티를 일반인 호스트와 게스트 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이 아니라 호텔업계에서나 하는 상업적인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칩 콘리는 에어비앤비가 호텔과는 다른 방식으로 손님을 환대할 수 있음을 알려줬다. 그는 호스피탈리티 프로젝트 팀을 만들고 수십만 명의 호스트들에게 접객 노하우를 가르쳤다. 칩 콘리가 그동안 몸담고 있던 전통적인 호텔 업계에서의 호스피탈리티와 일반인 호스트들이 제공하는 호스피탈리티는 형식과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스피탈리티의 근본적인 의미와 목적은 변함없이 중요하므로 칩 콘리의 경험과 지식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의 노하우는 에어비앤비가 호텔처럼 세련되고 친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바탕이 됐다.

2. 업계에서 쌓아온 인맥을 활용해 협업을 위한 교량을 건설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칩 콘리도 한때는 호스피탈리티 업계의 혁신가였다. 그는 혁신가라고 해서 기존 산업에 반항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몇 년 안에 아주 많은 사람들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칩 콘리는 간디의 말을 인용해 에어비앤비 직원들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당신을 무시할 것이고, 그다음에는 조롱하고 공격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당신이 이긴다.” 기존의 호텔 경영자들은 '모르는 사람 집에 묵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며 에어비앤비를 평가절하했다. 또 에어비앤비의 비즈니스 모델은 정부 정책이나 부동산 업계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칩 콘리는 에어비앤비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늘 협력하는 친절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칩 콘리는 자신의 인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내로라하는 호텔 기업의 CEO와 고위 경영진, 부동산 개발업자, 정치인 등을 만났다. 그들에게 에어비앤비를 제대로 소개하고 밀레니얼 세대가 왜 에어비앤비에 매력을 느끼는지를 알렸다. 에어비앤비가 지역사회의 가치를 높인다는 사실을 알려야만 그들과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칩 콘리는 에어비앤비의 다양한 팀/부서에도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다. 예를 들어 채용팀에게는 고객 서비스 임원 채용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했고, 정책팀에는 규제 기관이나 여행 업계 내부 인사들을 소개해줬다. 비즈니스 여행팀에게는 전에 함께 일했던 기업 출장 책임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칩 콘리는 자신이 에어비앤비의 다른 동료들처럼 젊었다면 이런 인맥이나 지식의 90%는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3.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한 1:1 직원 멘토링

출처: filckr https://www.flickr.com/photos/techcrunch/15007192627
브라이언 체스키

칩 콘리가 에어비앤비에서 종횡무진 활약하자 젊은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칩 콘리를 찾아왔다. 직원들은 각자의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었고 칩 콘리에게 조언을 얻길 원했다. 칩 콘리는 직원 멘토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젊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혜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권위 있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듣지만 젊은 사람들의 말에는 잘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에게 좋은 조언을 주기 위해서는 그들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칩 콘리는 직원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문제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누구인지 등을 살폈다. 그리고 그들이 각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개별적으로 조언했다. 칩 콘리도 CEO 시절에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거창한 연설을 자주 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는 주로 일대일로 커뮤니케이션했다. 부하 직원들은 칩 콘리와의 대화를 ‘칩의 비밀 신병훈련소’라고 불렀다고 한다. 직원들은 칩 콘리와의 일대일 대화 후에 ‘감정적으로 의지할 수 있다’, ‘꼬인 이야기를 잘 풀어나갈 수 있었다’ 등의 평가를 남겼다.

젊은 직원들과의 대화는 칩 콘리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다. 대화를 통해 여러 팀/부서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자세히 알게 되었고, 이는 거꾸로 창립자들에게 조언을 줄 때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닐 게이먼은 “구글은 당신에게 10만 개의 답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사서는 당신이 원하는 정답을 찾아줄 수 있다."라고 썼다. 아무리 좋은 검색엔진이라도 우리 마음의 미묘한 뉘앙스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연륜 있는 전문가는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줄 수 있다. 에어비앤비에서는 칩 콘리가 그랬다.


에어비앤비에 입사하기 이전에 칩 콘리는 자신이 세운 회사를 평생 운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경기 침체로 그는 25년간 운영하던 부티크 호텔 회사를 매각하며 인생의 변화를 겪게 된다. 그는 자신을 구식 호텔 경영자라고 여겼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데 두려움을 느꼈다. 에어비앤비에 입사한 이후에도 그는 자신의 조언이 이 젊은 혁신가들에게 과연 적합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호텔 경영인에서 파트 타이머로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면서 큰 혼돈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칩 콘리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서 여전히 시니어로서 자신의 능력이 필요함을 입증했다. 그리고 에어비앤비를 현재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젊은 리더들의 멘토가 되기 위해서 꼭 직급이 높거나 ‘간판을 내걸’ 만한 직함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또한 시니어들이 수십 년간 쌓은 업무 경험과 거기에서 우러나는 훌륭한 판단력, 전문지식, 방대한 인맥이 젊고 유능하고 야심 있는 밀레니얼 세대와 맞물리면 오래도록 살아남는 비즈니스를 구축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 이 글은 <일터의 현자> (칩 콘리 저, 쌤앤파커스 출판)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인터비즈 임혜민, 박은애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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