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독일의 '이 기업' 사장님이 잉크를 들이킨 이유?

인터비즈 작성일자2019.05.18. | 7,838  view

포노 사피엔스(스마트폰을 든 인류)의 시대. 모두들 첨단 IT기기를 한 두 개 이상 들고 다니는 세상에서 아날로그 필기구는 사양 산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독일의 250년 전통 필기구 전문기업 파버카스텔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세계 최초로 연필을 만든 회사로 유명한 파버카스텔의 연매출(2017년 기준)은 6억6700만 유로. 우리 돈으로 8532억 원에 달하며 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만 전세계 8000명에 이른다. 스마트폰의 시대에 얼마나 연필을 만들까 싶지만, 한해 생산량은 연간 20억 자루 수준이다.

source : 파버카스텔 공식 페이스북

그야말로 아날로그 저력이다. 파버카스텔은 대표적인 히든챔피언(대기업보다 규모는 작지만 세계 1~2위의 기술력을 가진 회사)으로 꼽힌다. 그동안 많은 문구 회사들이 탄생하고 사라지는 동안, 이 회사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모두들 사양산업이라고 말하는 업종에서 말이다.

이는 다름 아닌 혁신이었다. 연필은 다 비슷한 상품 아닌가 싶지만, 그렇게 보일수록 사소한 디테일이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사회적 실천을 통해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면서, 지속가능성의 기반을 마련한 점도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파버카스텔의 성공 비결..끊임없는 관찰과 혁신

source : 파버카스텔 코리아 공식 페이스북

“이 연필은 딱 알맞은 굵기에 목공용 연필보다 부드럽고 질이 좋아. 검은색이 아름답고 특히 큰 그림을 그릴 때 아주 좋더라고. 이 연필은 부드러운 삼나무를 사용하고 겉은 짙은 녹색으로 칠했는데 하나에 20센트야.”1883년 빈센트 반 고흐가 친구이자 스승인 네덜란드 화가 안톤 반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에선 파버카스텔의 연필을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반고흐 뿐만이 아니다. 파버카스텔의 제품들은 시인 괴테,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노벨상 수상 작가인 귄터 그라스 등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유명인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파버카스텔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계 최초로 연필을 만든 회사다. 1761년 캐비닛 제조업자였던 카스파르 파버(Kaspar Faber)가 넓적하고 얇은 나무 막대 두 개 사이에 흑연심을 끼워넣은 것이 최초의 연필이다. 4번째 회장인 로타르 폰 파버(Lothar von Faber)는 우리가 가장 쉽게 떠올리는 연필의 형태를 확립하는 데 큰 공헌을 했으며 뉴욕과 파리를 중심으로 파버카스텔의 세계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파버 가문의 딸과 독일의 다른 귀족가문 출신인 알렉산더 카스텔 뤼덴하우젠 (Alexander Castell-Rüdenhausen)의 결혼으로 각 가문의 성을 합쳐 회사의 명칭이 ‘파버카스텔’로 바뀌었다.

파버카스텔이 오랫동안 사랑받은 비결은 한마디로 '차별화'로 요약된다. 파버카스텔은 불편을 개선하고, 이 과정에서 실용적이면서도 의미있는 디자인적인 차별화 요소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보편적으로 쓰이는 디테일이지만, 이를 가장 먼저 착안한 회사로서 오리지널리티를 널리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육각 형태와 굵기, 농도 표준화다.

학창시절 시험시간에 연필의 각 면에 번호를 적고 연필을 굴려 나오는 번호를 찍은 적이 한 번 쯤 있을 것이다. 만약 연필이 둥글었다면 어땠을까? 연필을 굴리기는 커녕 책상에 올려두기만 해도 데굴데굴 굴러가다 뚝 떨어져 안쪽 심까지 모두 부러져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것이 육각형의 몸체다. 또한 여섯 개의 단면을 가진 이 형태는 연필을 손에서 쉽게 돌려가며 쓸 수 있게 해 연필심의 한 부분만 무뎌지는 것을 방지하고, 손의 피로감을 덜 수 있다는 것이 파버카스텔의 설명이다.

('카스텔 9000' 연필은 1905년에 알렉산더 폰 파버카스텔이 처음 생산한 이후, 10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고 있는 상품이다)

source : 파버카스텔 공식 홈페이지

연필의 표준 규격을 결정하는 것 또한 파버카스텔의 영향이 컸다. 미술시간에 사용하는 4B연필, 필기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HB연필. 여기서 사용되는 4B, HB, H 등의 구분은 연필의 경도(굳기)와 농도(진하기)를 기준으로 파버카스텔이 고안한 분류법이다. 이전에는 연필심의 굳기와 진하기 모두 제각각이어서 소비자가 자신의 선호에 맞는 연필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소비자의 불편을 인지한 파버카스텔은 단단함을 나타내는 H(Hard)와 짙음(Black)을 나타내는 B를 조합해 총 18단계로 연필심의 종류를 나눴다. 높은 숫자의 H심은 더 단단하지만 흐리게 쓰이고, 높은 숫자의 B심은 더 무르나 진하게 쓰인다는 기준이 만들어짐에 따라 소비자들은 기호나 상황에 맞게 연필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파버카스텔의 8대 회장이었던 안톤 볼프강 폰 파버카스텔 백작이 수성잉크의 무해성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잉크를 마시고 있는 모습)

source : 유튜브 Faber-Castell 공식 채널 캡처

이외에도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연필의 앞부분에 오돌토돌한 돌기를 넣는 시도를 하기도 했으며 어린이용 제품에 친환경 수성페인트를 사용하고 방부제를 첨가하지 않은 나무를 사용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거듭했다. 심지어 어린이용 제품에 사용된 수성페인트의 무해성을 보여주기 위해 파버카스텔의 8대 회장이었던 안톤 볼프강 폰 파버카스텔 백작은 직접 수성잉크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소비자와 시대의 요구를 관찰을 통해서 정확히 읽어내고 이를 제품안에 실현해내면서 장수기업으로서 지속 성장의 기반을 닦았다.

파버카스텔의 지속 가능한 경영, 숲을 탄생시키다

"저는 사업가로서 절대로 미래 세대의 비용을 사용하여 이익을 창출하지 않습니다."

안톤 볼프강 폰 파버카스텔 백작이 남긴 말이다. 파버카스텔은 20억 자루 가량의 연필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약 15만 톤의 목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목재의 조달로 인해 황폐해지는 땅에 책임을 느낀 파버카스텔은 브라질 사바나 황무지에 여의도의 30배가 넘는 1만 헥타르 크기의 소나무 숲을 조성했다. 이 숲은 환경을 복원한다는 점과 더불어 파버카스텔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목재 또한 안정적으로 수급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파버카스텔의 자랑이 됐다. 이러한 노력은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시키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받아 UNFCC(유엔기후변화협약)의 인증서를 받기도 했다.

삼림을 복원하고 생물의 종 다양성을 보존하는 등의 친환경적인 노력과 더불어 파버카스텔은 인간 중심의 경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 로타르 폰 파버의 영향을 받아 1884년 독일 최초의 기업 부설 유치원을 만들었고 2000년도에는 인종 차별, 아동 노동을 금지하고 노동력 착취에서 직원을 보호하자는 내용이 담긴 사회헌장을 체결하기도 했다.

인터비즈 신유진, 임현석
inter-biz@naver.com

해시태그

Recommended Tags

#박나래

    Top Views 3

      You May Lik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