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 줘도 안가져"라며 마블 거부했다

조회수 2019. 5. 12. 11: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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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 같은 B급 캐릭터는 줘도 안 가져”

때는 1998년. 영화사 소니(Sony Pictures)는 스파이더맨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마블(Marvel)이 소유한 캐릭터. 소니는 스파이더맨 영화화 판권을 사와야 했다. 소니는 당시 만화책 회사에 지나지 않았던 마블에게 스파이더맨을 사겠다는 의사를 타진했다. 이때 마블은 소니에게 ‘엄청난’ 역제안을 한다. 2500만 달러(약 270억 원)만 내면 스파이더맨뿐 아니라 ‘떨이’로 마블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 대부분을 영화로 만들어도 된다는 제안이었다. 여기에는 아이언맨, 토르, 앤트맨, 블랙 팬서 등등이 전부 포함돼 있었다.  

출처: 마블
(마블의 캐릭터들)

만화책 시장의 침체로 인해 1990년대 중반 도산 위기에서 벗어난 마블은 당시 현금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캐릭터를 5000개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캐릭터 영화 판권을 팔아서(licensing) 돈을 쉽게 벌 수 있었다. 이미 엑스맨과 판타스틱4는 20세기 폭스에 팔아넘겼다. 영화 특수 효과 기술의 발전으로 슈퍼 히어로를 스크린 상에서 표현하기가 쉬워짐에 따라 만화책에서 영화로 넘어가는 ‘플랫폼 다변화 전략’이었고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했다.

마블의 제안에 소니는 코웃음 쳤다.

“그런 B급 마블 캐릭터에 누가 신경이나 쓰나. 스파이더맨이나 줘.” 
출처: 마블

결국 소니는 2500만 달러가 아닌 1000만 달러만 내고 스파이더맨 판권을 샀다. 나머지는 휴지통에 버린 것이 마찬가지다. 이렇게 해서 소니가 2002년과 2004년에 만든 2개의 스파이더맨 영화는 극장 수입만 모두 16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소니의 승리. 하지만 인생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소니의 성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마블 CEO 이삭 ‘아이크’ 펄무터는 배가 아팠다. 마블로서는 영화를 직접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으로 보였지만 펄무터는 영화를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원래 장난감 회사를 운영하다가 도산 위기에 빠진 마블을 인수한 그는 비용 절감을 위해 직원들에게 포스트잇 뒷면에도 메모를 하라고 종용하는 짠돌이였다. 리스크가 큰 영화 제작을 할만한 배짱이 없었다.



마블 내부에서는 영화 제작 경험이 있는 기업과 조인트 벤처 형식으로 마블 캐릭터를 영화화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펄무터는 애써 무시했다. 그러다가 2005년 투자 은행 메릴린치로부터 5억2500만 달러의 투자를 받고서야 영화 제작을 하기로 한다. 하지만 사람의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 펄무터는 영화보다는 캐릭터 장난감으로 돈을 벌 생각에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실시했다. 질문은 “어느 캐릭터 장난감이 제일 좋으니?” 답은 아이언맨이었다. 

출처: 마블

이렇게 해서 마블의 첫 영화 ‘아이언맨’(2008년)이 탄생했다. 콜린 파렐과 패트릭 뎀프시가 토니 스타크 역 물망에 올랐지만, 역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돌아갔다. 당시 약물 중독에서 회복한 후 복귀 중이었던 다우니 주니어가 비용면에서 쌌기 때문이었다. 감독 역시 제작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을, 당시는 유명한 감독이 아니었던 존 파브르가 맡았다.


이 즈음 펄무터의 파트너였던 아비 아라드의 가방을 들던 케빈 파이기(현 마블 스튜디오 회장)가 마블 영화 제작의 전면에 등장한다. 아이언맨1의 마지막 장면(스타크가 “내가 아이언맨이다”라고 말해서 기자회견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장면 말고), 그러니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스타크가 쉴드의 디렉터 닉 퓨리(사뮤엘 L. 잭슨)를 만나는 ‘역사적인’ 장면을 집어넣은 사람이 바로 파이기 회장이다. 닉 퓨리는 이때 스타크에게 처음으로 슈퍼 히어로들의 모임인 ‘어벤저스’에 대한 얘기를 한다.

출처: 본인 페이스북
(케빈 파이기)

이 장면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이 한 장면으로 마블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의 초석을 놓았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마블 캐릭터들이 모여 사는 가상의 세계이자 미디어 프랜차이즈. 이전의 영화에서 슈퍼 히어로들은 각자 혼자만의 세계에 살았다. 하지만 이 장면으로 인해 마블의 수많은 캐릭터들을 한 세계에 모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앤트맨, 닥터 스트레인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어벤저스까지 마블이 만드는 모든 영화의 스토리가 연결돼 있는 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개념 덕분이다. 팬들이 마블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도 영화 속에 의미 있는 완결된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마블 영화의 엔딩 크레딧 뒤엔 또 어떤 장면(‘크레딧 쿠키’라고 함)이 나올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도 마블 영화를 보는 재미에 한몫을 더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출처: 마블

아이언맨 이후 헐크와 토르, 캡틴 아메리카 영화에 이어 ‘어벤저스’(2012년)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마블은 승승장구를 한다. 영화를 만들어본 적도 없는, A급 배우를 캐스팅하는 건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CEO로 있는 회사가 속편인지 스핀오프인지 명확하지 않은, 서로 연결된 슈퍼 히어로 영화를 연달아 내놓으면서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을 새로 써나갔다. 마블은 이와 함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연결된 TV드라마도 만들고 만화책도 계속 내놓았다.


(이렇게 하나의 공통된 세계관을 만들고 그 세계 안에 캐릭터들을 넣어 이야기가 연결되도록 한 뒤 영화와 TV, 책,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에 활용하는 걸 ‘트랜스미디어(Tansmedia) 전략’이라고 한다. MIT의 헨리 젠킨스 교수가 저서 ‘컨버전스 컬처’에서 언급한 전략으로 콘텐츠 확대 재생산을 하기가 쉽다.)

출처: 마블

다시 스파이더맨으로 돌아가서, 소니는 2012년과 2014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편과 2편을 내놓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마블의 슈퍼 히어로들이 한데 뭉쳐 있는데 스파이더맨이 혼자서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파이더맨을 데려올 기회를 포착한 파이기 마블 회장은 소니의 대표 에이미 파스칼과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 다음 스파이더맨 영화를 마블이 제작하고 싶다고 말한다. 파스칼 대표는 먹던 샌드위치를 집어던지면서 파이기 회장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꺼지라고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소니는 이번에는 마블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마블이 너무 커버렸기 때문이다. 극장 수입은 소니가 갖고 장난감 수입은 마블이 갖는다는 계약 조건으로 마블과 소니가 공동 제작한 스파이더맨 영화가 2017년에 개봉했다. 아이언맨의 찬조 출연에 힘입어 이 영화는 2004년 이후 소니가 만든 영화 중 최고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스파이더맨: 홈커밍’. 20년 만에 집(마블)으로 돌아온 스파이더맨을 환영하기 위함이었다. 마블의 센스에 감탄할 수밖에

소니가 만약 20년 전에 ’푼돈’ 2500만 달러를 주고 마블의 캐릭터들을 다 샀다면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소니가 B급 캐릭터라고 무시했던 아이언맨, 토르, 앤트맨은 물론 지금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블랙 팬서를 극장에서 볼 수 있었을까. 반대로 마블이 끝까지 캐릭터 라이선싱만 고집했다면 슈퍼 히어로 영화를 보는 재미가 지금만 했을까. 정말이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소니의 마블 제안 거부는 할리우드 영화 역사상 가장 큰 실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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