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묘아저씨' 패션에서 '샤넬'이 보인다

조회수 2019. 5. 8. 20: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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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하고 투박한 신발에 골덴 바지를 입고 허리에는 힙색을 두른' 사람을 상상해 보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대부분 아마 패션에 별 관심이 없는 아재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최근 패션 트렌드를 보면 그렇지가 않다. 아저씨들의 전유물로 여겨져온 아이템들이 유명 브랜드의 손길을 거쳐 '패피의 상징'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레트로 열풍으로 패션의 새로운 트렌드가 만들어지는 추세다.

최악의 소개팅룩이 트렌디한 아이템으로

가장 뜨거운 아이템은 '어글리 슈즈'다. 밑창(Sole)이 두툼해 일명 '청키 솔(Chunky Sole)' 슈즈라고 불리는 이 신발들은 현재 패션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아이템 중 하나다. 처음엔 아버지가 신는 운동화 같다고 해서 '대드(Dad) 슈즈'로 불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독특한 디자인과 실용성을 바탕으로 레트로를 찾는 젊은 층의 취향을 사로잡고 있다.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나 MCM의 '힘멜', 휠라의 '디스럽터2'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디스럽터2는 2017년 7월 출시해 전 세계적으로 1000만 켤레가 넘는 누적 판매량을 기록 중이며, 미국 신발 전문 미디어인 풋웨어 뉴스가 '2018 올해의 신발'에 선정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휠라의 디스럽터2)

촌스러운 패션의 상징과도 같던 '힙색(hip sack)'도 최근 벨트백, 패니(Fanny)백으로 불리며 작고 가벼운 액세서리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수가방'이나 '아저씨가방' 취급을 받던 힙색은 현재 샤넬, 지방시 등 명품 브랜드에 의해 트렌디한 아이템으로 재탄생 중이다. 작고 세련된 디자인에 양손이 자유로워진다는 실용성이 더해져 젊은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오픈마켓 옥션에 따르면 2018년 벨트백은 2015년 대비 5배 이상 판매량이 증가했으며, 여성 브랜드 가방 카테고리 내에서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출처: kikokostanidov, 샤넬, 지방시 공식 인스타그램
(흔한 동묘의 아저씨룩(좌), 샤넬(중)과 지방시(우)의 벨트백)

한때 온라인에서 최악의 소개팅룩 가운데 하나로 꼽히던 코듀로이 소재도 마찬가지다. 일명 '골덴'으로 불리는 코듀로이는 21세기 들어 아저씨나 어린이들이 입는 옷감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최근 2~3년 사이에 프라다, 구찌 등 유명 브랜드들이 코듀로이를 비중 있게 선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작년 겨울에는 바지를 비롯해 재킷, 치마, 정장 등 다양한 코듀로이 소재 아이템들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패션업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출처: 자라 홈페이지, 이랜드몰
(브랜드 자라의 코듀로이 자켓(좌), 후아유의 코듀로이 스커트(우))

선입견 버리자 드러나는 가치

올드하다고 여겨졌던 패션 아이템들이 최근 급부상하는 데에는 '레트로 트렌드'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트렌드는 어디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 뒤에는 아이템을 발굴하고 적절히 개선한 패션업체와 디자이너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이들은 중립적인 관점이 제품 개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저씨 같다'라고 무시하는 패션도 '저런 걸 왜?'가 아니라 '저것이 주는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 해석했다. 선입견을 배제한 그들의 시선은 촌스러움에서도 새로운 가치를 찾아냈고 이는 새로운 제품 개발의 밑천이 되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프'가 작년에 한국 동묘에서 아저씨 패션을 관찰한 뒤, 인스타그램을 통해 "세계 최고의 거리, 스포티함과 캐주얼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감한 믹스매치 정신"이라고 극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출처: kikokostadinov 공식 인스타그램

또한, 이들은 해당 아이템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기존 제품의 장·단점을 분석해 새로운 스타일로 재탄생시켰다. 벨트백의 실용성을 살리되 디자인은 작고 아기자기하게 만든다거나, 코듀로이의 보온성은 살리되 합성섬유를 섞어 신축성을 높이는 등 현대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개선했다. 지금의 트렌드를 단순히 레트로가 아니라 '뉴트로(new+retro)', '힙트로(hip+retro)'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립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기존 제품의 개선점을 찾는 것은 제품 개발의 기본이다. 그러나 실제로 패션업계뿐만 아니라 대부분 비즈니스 영역에서 이 '기본'을 제대로 실행하는 업체들은 많지 않다. 모든 비즈니스에는 트렌드가 있기 마련이고 그 안에서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자와 쫓는 자가 나뉜다. 그 중 이끌어가는 자가 되고자 한다면, 패션업계 선두주자들이 던져주는 시사점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인터비즈 이태희, 장재웅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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