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돌아가기' 버튼 없는 이유

조회수 2019. 3. 17. 21: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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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07년 프랑스의 유명 가전 리테일 업체인 다띠(Darty)에서 한 신혼부부가 세탁기를 사려고 제품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매장 내에서 LG 다이렉트 드라이브(Direct Drive) 기술 시범 전시를 본 그들은 LG 세탁기의 성능에 반해 구매를 고려하며 오래 서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구매결정권자인 부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버튼이 왜 이렇게 많아?”


그리고는 다른 회사 세탁기를 보러 자리를 떠났다. 이 코멘트에 흥미가 생긴 필자는 그 상품 앞에 약 두 시간 정도 서서 프랑스 소비자들의 태도를 관찰했다. 약 18명의 고객이 LG 세탁기 앞에 발길을 멈추고 구매 의욕을 보였지만 대부분 그냥 떠났고 그 중 8명은 “버튼이 많다”는 말을 남기고 아쉬운 표정으로 다른 회사 제품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출처: 이탈디자인(italdesign), LG전자 공식홈페이지
(인데시트 문 세탁기(왼쪽)는 버튼이 집중돼 있어 하나의 버튼으로 보이지만 LG 세탁기(오른쪽)는 여러 버튼이 나열돼 있다.)

당시 인기를 끌던 인데시트 문(Indesit Moon) 세탁기는 달랐다.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가 디자인한 이 세탁기는 2007년 파리에서 ‘혁신그랑프리(Grand Prix de l’Innovation)’를수상했다. 이후 적극적인 마케팅이 펼쳐졌고, 이 상품뿐만 아니라 새로운 디자인의 자사 상품들이 연달아 상을 수상하면서 2007년 상반기 인데시트 사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6.7% 증가한 바 있다.


인데시트 문 세탁기의 특징은 제품 가운데에 달린 Start/Stop 스위치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5개 스위치로 모든 컨트롤러를 압축했다는 점이다. 멀리서 볼 때 단 하나의 큰 원형 스위치만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단순화했다. 이것은 2000년대 UI/UX 디자인의 트렌드이기도 했다.


UI(User Interface)는 휴대폰, 컴퓨터, 내비게이션 등 디지털 기기를 작동시키는 명령어나 기법을 포함하는 사용자 환경을 뜻한다. 이용자들이 IT기기를 구동하기 위해서 접촉하는 매개체로 컴퓨터를 조작할 때 나타나는 이른바 '아이콘'이나 텍스트 형태 구동화면도 포함된다. 스마트폰의 경우 애플리케이션 아이콘 형태 및 화면 구성을 가리킬 때가 많다. UX(User Experience)는 ‘사용자 경험’으로, 사용자가 어떤 시스템, 제품, 서비스를 직·간접적으로 이용하면서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지각과 반응, 행동 등 총체적 경험을 말한다.

출처: 각 회사
(갤럭시(오른쪽)에는 우측 하단에 ‘돌아가기’ 버튼이 있지만 아이폰(왼쪽)에는 하단의 둥근 버튼 하나만 있다)

아이폰(iPhone)과 아이패드(iPad)에 스위치가 하나밖에 없는 것이나 신형 BMW의 컨트롤러를 조그셔틀(Jog&shuttle) 하나로 통일한 점과 유사하다. 하지만 필자가 30대 한국 전문직 남성/여성 20명을 인터뷰한 결과 10명 이상이 아이폰이 갤럭시에 비해 불편한 점으로 ‘돌아가기 버튼이 없다’로 꼽았다. 물론 이런 인터뷰는 캐주얼한 상황(non-controlled environment)에서 적은 샘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데이터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지표로는 볼 수 있다.

묘사언어학에서 설명하는 동서양 차이

서양 제품은 단순(simple)해 보이고 한국 제품은 복잡(complex)해 보인다. 서양 제품과 한국 제품, 나아가 서양 제품과 동양 제품 사이에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묘사언어학에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그 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편리한 UI/UX는 그 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문법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출처: DBR
(문법구조와 UX/UI)

서양인들은 인도-유럽 언어의 문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언어의 특징은 주인공 단어와 그 단어를 수식하는 많은 ‘보조’ 단어들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언어로 생각해 온 서구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의 큰 아이디어에서 출발(Start 버튼)해서 세부적인 것으로 들어가는 순서로 생각한다.

출처: DBR
(한국인의 문법 구조와 UX/UI)

그에 비해 한국어는 단어 뒤에 조사를 붙이고 단어별로 색채를 입혀서 완성된 스펙트럼을 통해 문장을 이해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토대로 생각을 해보면 한국의 소비자들이 서양식 언어구조인 ‘독립적인 주 아이디어에서 세부적인 서브 아이디어’로 발전하는 방식이나 UI에 대해 왜 그렇게 많은 혼란을 느끼는지 쉽게 이해될 것이다.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의 ‘구조주의’는 문법구조가 사람들이 사회 구조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유럽 사회는 왕 밑에 영주, 영주 밑에 기사, 기사 밑에 농민이 피라미드형으로 배치되고 주 구조 혹은 상부구조(Superstructure)와 주변구조(Substructure)들이 지역별로 세분화돼 있다. 그에 비해 한국 왕실은 왕 한 명이 각각 다른 역할과 색깔(당파)을 지닌 신하들을 배합해 ‘조정’을 이룬다.

출처: 픽사베이
(서양과 동양의 음식에서도 비슷한 차이가 나타난다.)

또 이것은 미학, 즉 선호하는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에 비해 서양 미술은 원과 근의 관계를 중심으로 주제와 장식,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눈다. 동양화는 평면을 여백과 색채로 나누고 색의 농과 담, 나무, 새, 과일, 사람 등을 평면에 퍼뜨려 스펙트럼과 조화를 만든다. 요리도 서양 요리는 고기, 생선 등 주제가 되는 요리를 향료가 받쳐주는 방식이고, 한국 요리는 마늘, 양파, 파, 장, 그리고 주재료를 한꺼번에 배합해 다양한 스펙트럼을 느끼는 방식으로 돼 있다.

언어의 차이가 시장의 차이를 만든다

언어는 사람의 관계를 연결하기도 하지만 끊기도 한다. 유럽에서 발발한 1차와 2차 대전의 끔찍함을 기억하는 유럽인들은 다시는 그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럽 대륙의 모든 국가이자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었다. 이렇게 결성된 EU의 27개국 정상들은 23개의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한다. EU에서는 번역비로만 수조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렇게 언어는 글로벌로 진출하려는 조직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언어의 장벽은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시장 진입의 장벽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첨단기술이 주 업종인 기업에도 이러한 언어장벽은 유리하게도, 때론 불리하게도 작용한다. 일단 국내적으로는 유리한 점이 많았다. 앞서 설명한 언어와 문법구조의 차이, 그리고 그 차이에서 온 UX/UI의 차이는 구글로부터 국내 업체인 네이버와 다음이 검색 시장을 지켜내도록 했고, 유튜브가 세계 스트리밍 동영상시장을 장악했음에도 한국 토종 아프리카TV가 한국 시장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됐다.

 

한국어의 언어 구조는 매우 독특하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는 최신가요 100선을 한 플레이 리스트로 묶어주는 멜론이 장르, 예술가로 음악을 자동 분류하는 아이튠스(iTunes)보다 쓰기 편하고, 한 단어를 중심으로 검색을 유기적으로 이어가는 구글보다 내가 찾고 싶은 정보의 항목을 고를 수 있는 네이버가 더 편할 것이다. 자동차 K9에는 조그셔틀과 함께 다른 여러 버튼이 같이 달려 있어야 마음이 놓일 것이다. 

출처: DBR
(해외시장진출까지 고려한다면 언어구조에 기인한 문화차이를 반영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기업이 해외로 나갈 때는 이러한 언어 장벽과 다른 언어가 만들어 낸 사고 구조의 차이가 문제가 된다. 상품의 본래 가치보다 저평가받게 할 수 있는 주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원하는 기업이라면 ‘언어 장벽’, 그리고 언어장벽을 구성하는 ‘사고의 구조 방정식’부터 풀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해외 진출에 성공하고 글로벌 시장의 승자가 되려면 광고 문구나 서류를 번역하는 것 이상의 고민을 해야 한다. 해외 지사의 기업 구조, 상품의 미학과 UI의 편의, 윤리성과 행동도 모두 제대로 ‘변환’해서 진출하는 전략을 짜지 않으면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가 상실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상품이나 서비스의 강점, 자신의 기업이 쏟아부은 노력과 소비자에 대한 진심이 그들의 시장에서 통할 것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매거진 DBR 178호 
필자 조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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