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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병 들어 사라진 “O O”이 바나나우유에 들어간 이유?

인터비즈 작성일자2019.02.03. | 18,586  view

영국은 차를 마시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영국인들도 커피를 주로 마시던 시절이 있었다. 커피는 영국이 1797년 네덜란드로부터 빼앗은 식민지인 실론(지금의 스리랑카)에서 들여왔다. 영국의 실론 커피 농장에 대한 투자는 거의 무제한적으로 이뤄졌다. 중앙 고지대의 16만 헥타르에서 커피가 재배됐다. 제주도 크기에 버금가는 재배면적이다. 이 드넓은 곳에 오직 한 가지 품종의 커피만 심었다. 생산성을 극대화하기에는 단일 품종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전부 다 죽을 수 있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영국은 인지하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커피 녹병이라는 병충해가 돌았다. 모든 커피 나무가 순식간에 죽어나갔다. 전부 똑 같은 품종이었기 때문에 커피 농장은 예외 없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커피 녹병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휩쓸었다. 전세계 커피 생산의 3분의 1을 책임졌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커피 생산량은 5%로 줄었다. 이후 아시아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맛 좋은 아라비카 종이 아니라 병충해에는 강하지만 향이 약하고 맛은 쓴 로부스타 종이다.


커피 나무가 다 죽어버리자 실론의 농부들은 커피 대신 차(茶) 나무를 심었다. 영국인들은 커피는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카페인이 든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영국의 차 문화가 시작됐다. 그래서 우리에게 실론은 커피가 아닌 차로 알려지게 됐다.

실론 섬의 커피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사라진 작물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바나나의 한 종류인 ‘그로미셸’ 바나나다. 1950년대만 해도 세계에서 소비되는 대부분의 바나나는 그로미셸 바나나였다. 모두 그로미셸 바나나만 심었다. 다른 어떤 바나나보다도 생산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나마병이라는 병충해가 돌자 그로미셸 바나나 역시 순식간에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씨 없이 꺾꽂이로 복제되어온 그로미셸은 사라졌다. 적어도 더 이상 상업적인 대규모 재배는 하지 않는다. 195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그로미셸 바나나 맛을 보지 못했다고 보면 된다. 바나나 기업들은 그로미셸 대신 캐번디시라는 품종을 심기 시작했다. 둘은 생긴 건 비슷하지만 캐번디시는 냄새가 약간 이상하고 당도가 낮다. 맛과 향이 그로미셸만 못하다는 얘기다. 다만 파나마병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을 뿐이었다.

source : 빙그레 유튜브 캡처

그로미셸 바나나의 맛과 향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인공 바나나 감미료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강한 맛과 향 때문에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데 사실은 그것이 그로미셸 바나나의 맛과 향이다. 감미료는 그로미셸을 기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바나나 맛 우유가 바나나보다 맛있는 이유는 단순히 설탕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만은 아닌 셈이다.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캐번디시 바나나만 심다 보니 예상치 못한 병충해가 생기면 캐번디시 또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파나마병에 걸린 바나나와 줄기 단면)

source : ABC뉴스

커피와 바나나뿐이 아니다.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 또한 다른 작물은 하나도 심지 않고 감자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일어난 참사다. 생산량도 많고 우유와 함께 먹으면 완전식품이 되는 감자는 아일랜드에겐 최고의 작물이었다. 감자가 전래된 이후 아일랜드의 유아 사망률은 줄고 기대 수명은 늘었으며 인구도 늘었다. 아일랜드인들은 더 많은 감자를 심었다. 하지만 1845년부터 시작된 감자마름병으로 인해 감자가 다 죽었다. 감자 외에 다른 작물은 없었다. 결국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


농부들은 맛 있는 품종보다는 쉽게 잘 자라는 품종을 선호한다.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소출이 나오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단일 품종을 재배한다. 쉽게 말해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이러한 단일 품종 재배는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한 번 잘못 되면 재앙이 찾아온다.


우리네 삶도 다를 바가 없다. 모두가 효율성을 추구한다. 단순하고 효율적인 비즈니스모델이 가장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생산성이 높은 게 최고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모든 걸 단순화 한다. 반면 다양성을 추구하는 건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다. 일을 진행할 때 다른 의견이 나오면 일의 진척이 더디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일하는 게 편하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로고)

하지만 다양성은 불편할지언정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외국인 선수와 구단주에 대한 규제가 제일 적은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가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이고, 애플 아이폰이 아무리 잘 나가더라도 보다 다양한 생태계를 가진 안드로이드의 이용자가 더 많은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다양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source : GE 인스타그램

미국 최고의 제조기업이었던 GE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도 경영자 순혈주의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GE는 원래 최고의 경영자를 길러 내는 기업으로 유명했다. GE 최고의 제품은 경영자이며 뉴욕 주 크로톤빌에 있는 GE의 연수원은 경영자들이 성지순례를 하듯이 가는 곳이었다. 그 동안 GE의 모든 CEO는 내부적으로 경쟁을 통해 뽑아왔다. 20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불리지만 GE의 금융 의존도를 높여 쇠락의 씨를 뿌린 잭 웰치, 엄청난 경쟁을 뚫고 CEO에 올랐지만 GE를 말아먹은 경영자로 불리는 제프리 이멜트, 어려움에 빠진 GE를 구할 구원투수로 등판했지만 1년여 만에 쫓겨난 존 플래너리는 모두 내부 승진으로 CEO에 오른 ‘GE맨’이었다. 하지만 이런 쟁쟁한 GE 최고의 ‘제품’들도 GE의 추락을 막지는 못했다. 최근 발행된 DBR 263호에 실린 GE 케이스 스터디(‘전략 짜는 것만큼 잘 바꾸는 것도 중요 순혈주의 경영진 위기 징후에 둔감해져’)에 따르면 GE는 지나친 낙관주의에 빠져 내부에서 긍정적인 정보만 공유하기에 바빴다. GE는 어쩔 수 없이 지난 9월 126년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 출신 CEO를 영입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정체성도 다르고 많은 것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 가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다양성에 대한 인정은 강건한 사회와 활력 넘치는 기업의 첫걸음일 수 있다. 다양성이 없는 사회는 그로미셸 바나나나 아일랜드의 감자처럼 한 번의 위기에 끝없이 추락할 수 있으니까. 나와 다른 의견을 인지하는 것조차 너무 바쁘고 귀찮다면 효율성이 가져올 수 있는 재앙과 다양성이 줄 수 있는 충만함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때마침 연말이다.


※ 커피와, 바나나, 감자와 관련된 이야기는 생타학자 롭 던의 책 ‘바나나 제국의 몰락(원제: Never Out of Season)’을 참고했습니다.


※ 미표기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필자 김선우

약력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문지리학과 졸업 

- 워싱턴대(시애틀) 경영학 석사 

-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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