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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고 손님 맞던 일본이 변했다?

조회수 2019. 1. 14.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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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진한 대접 오히려 부담스럽다

일본 이시카와현 나나오시에 위치한 와쿠라 온천의 '카가야(加賀屋)여관'. 1906년 설립돼 올해로 112년을 맞은 역사 깊은 이 곳은 극진한 서비스로 잘 알려져 있다. 카가야 여관은 일단 손님이 도착하면 직원이 무릎을 꿇고 정좌 자세로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관광 안내 책자와 각종 다과 등을 한 번에 하나씩 대접하는데, 이렇게 손님을 환대하는 데만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직원들에게 "가능한 한 객실을 직접 찾아가라"고 하는 것이 카가야 여관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접대 방식이기 때문이다.

출처: 카가야 여관 홈페이지

그런데 지난 2017년부터 직원들은 객실로 찾아가는 횟수를 절반 이하로 줄였다. 설문조사 결과, 실제로는 고객들이 이를 귀찮게 여기고 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카가야 여관의 극진한 대접이 오히려 소비자들의 불만과 불편을 사고 있었던 셈이다.

극진한 대접 받는 오모테나시, 이젠 불편하다

출처: Architectural Lighting Group 홈페이지

일본 고유의 접대 문화인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는 일본의 서비스 정신을 대표하는 단어로 쓰인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과도한 접객 문화에 부담을 느끼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닛케이비즈니스가 올해 초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물건을 산 뒤 점원이 문 앞까지 배웅을 나오는 서비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른 물건도 더 보고싶은데 점원이 따라 나오면 부담스럽다"는 의견이었다. 또한 쇼핑할 때 직원이 말을 거는 것조차 "좋다"(129명)고 대답한 사람보다 "좋아하지 않는다"(399명)고 답변한 사람이 많았다. 식당에서 "두 분은 친구 사이신가요?"와 같은 음식과 관계없는 말을 거는 데 대해서도 "좋아하지 않는다"(531명)가 "좋다"(39명)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처럼 빠르고 간단한 응대를 선호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다소 번거롭고 부담스러운 오모테나시 서비스 방식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고객 취향 변화에 맞춰 기업들의 서비스 형태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신 불특정 다수에게 과잉 서비스를 제공하기 보다는, 특정 팬층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팬의, 팬에 의한, 팬을 위한 전략 ①: 고객을 기업의 ‘전도사’로 만들기

출처: 야호 브루잉 홈페이지
(요나요나 에일의 광란 파티 현장)

크래프트 맥주 전문기업 '야호 브루잉(Yoho Brewing)'은 지난 10월 '요나요나 에일의 광란 파티'라고 하는 팬 이벤트를 개최했다. 야호 브루잉의 주력 상품인 크래프트 맥주, 요나요나 에일 등 다양한 한정 맥주를 맛볼 수 있도록 한 행사였다. 야호 브루잉은 이밖에 크래프트 맥주향을 구별하는 방법이나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과 관련한 이론을 배울 수 있는 강좌를 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이 행사가 이목을 끌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총 5000여 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간 봉사자들이 모두 야호의 열성적인 '팬'들이었다는 점이다. 파란 티셔츠를 맞춰 입은 140명의 야호 팬들은 부스 설치부터 운영, 접수, 고객 응대까지 도맡으며 성공적인 행사 진행을 도왔다. 


야호가 처음부터 이렇게 열성적인 팬들을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창업한 이 회사는 한때 8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몇 번이나 도산의 위기를 넘겼다. 2004년에는 반짝 흥했던 크래프트 맥주 붐이 시들해지면서 슈퍼나 주류 판매점에서조차 이 회사 상품을 취급해주지 않았다. 그때 회사가 눈을 돌린 곳이 인터넷 통신판매였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인터넷 판매를 시작하면서 판매점이 없어 야호 맥주를 구할 수 없었던 팬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출처: 야호 브루잉 인스타그램

이후 회사는 흩어져 있는 팬들을 하나로 모으고, 그들만을 위한 팬 이벤트를 개최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인터넷 통신판매 페이지에 야호 맥주 캔을 든 '재미있는 사진전'을 개최하기도 하고, 도쿄도 내 점포에서 40여명의 소수 팬들을 위한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이렇게 40~100명 규모의 팬 이벤트를 반복해서 개최하자 맥주를 정기 구입하는 고정 고객층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소수의 팬들을 위한 작은 이벤트가 축적되면서 지금의 대규모 이벤트가 만들어졌고, 회사의 지명도도 함께 높아졌다. 충성스러운 고객들이 주변 친구들을 이벤트에 초대하면서 처음으로 참가하는 사람도 매회 30%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덕분에 회사의 팬층과 매출은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열성적인 팬들이 야호 맥주의 매력을 자발적으로 알리는 '전도사'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팬의, 팬에 의한, 팬을 위한 전략 ②: 비공식 활동도 지원, 졸업하지 않는 팬 만들기

출처: 타미야 홈페이지
그런가 하면 야호 브루잉과 같이 공식적인 대규모 이벤트는 아니지만 자사 팬들의 비공식 활동을 지원하는 곳도 있다. 일본의 모형 자동차 업체 '타미야(Tamiya)'다. 최근 일본에는 모형 자동차를 달리게 해 누가 가장 멀리 갔는지 대결하는 '미니 사구(四駆, 미니카)' 레이스가 인기다.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 사이에서다. 2012년 미니 사구 탄생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어른도 참여할 수 있게끔 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타미야는 이렇게 발견한 어른 팬들을 유지 및 확대하기 위해 비공식 소규모 레이스 이벤트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의 모형점이나 가전 양판점이 주최하는 이벤트들이다. 레이스가 자주 개최되면 개최될수록 미니 사구를 잘 아는 점원과 팬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 긴밀해지고, 팬들의 '미니 사구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출처: 타미야 홈페이지

뿐만 아니라 타미야는 개인 팬이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비공식 레이스 또한 전면 지원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전국 레이스 이벤트 정보들을 공유하고, 미니 사구 팬들이 생각해낸 코스 레이아웃을 소개하는 식이다. 이벤트용 코스는 배송료만 받고 대여해주고 있다. 덕분에 온라인 상에서는 타미야 미니 사구 초심자를 위해 '타이어 고르는 법', '타이어에 부착하는 호일 종류'등의 정보가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팬들끼리 소통하고 즐길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주는 것이 타미야가 미니 사구 붐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비결이다.

팬의, 팬에 의한, 팬을 위한 전략 ③: 고객을 ‘혁명 동지’로 부르며 브랜드 가치 전파하기

일본에는 상위 VIP 고객 20%가 매출액 절반을 차지하는 의류 브랜드가 있다. 의류업체 라이프 스타일 악센트의 어패럴 브랜드 '팩트리에(Factelier)'다. 유니클로와 같은 패스트 패션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비싼 가격이지만, 배송까지 3개월을 기다리는 상품이 있을 정도로 회사는 튼튼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출처: 팩트리에 홈페이지

일본 내 의류품 생산 비율은 2.4%에 그치는 반면 팩트리에는 100% 일본 국내 생산품만 취급한다. 이에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내리는 소비자들도 있다. 그러나 회사는 무리해서 고객 확대를 노리기 보다는 기업의 가치관에 공감해주는 팬들과 밀접한 관계를 쌓는 것을 목표로 한다. CEO 야마다 토시오(Yamada Toshio)가 '혁명 동지'라고 일컫는 충성스러운 고객층이다. 회사는 이러한 혁명 동지들을 위해 실점포에 공장 제작자를 초대해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모노즈쿠리 컬리지'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제작자들이 직접 고품질의 상품 제작 및 생산 과정을 소개하는 공장투어도 있다. 실제로 이러한 투어에 참가했던 고객들은 재방문 의사를 보이며 상품에 대한 높은 애착을 보여줬다.


일본 서비스 정신의 바탕이 되는 오모테나시는 기본적으로 고객에 대한 친밀하고 개인적인 응대다. 고객에게 허리 숙여 절하고, 극존칭의 공손한 말씨를 쓰며,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그들의 필요에 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처럼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고객을 극진하게 모시는 접대 방식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많은 기업들이 소수의 열성적인 팬들을 전도사이자 브랜드 가치를 전하는 이야기꾼으로 만드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도 좋지만, 고객을 '동료와 같은 팬'으로 만들어 상품 기획부터 이벤트 주최까지 다양하게 활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 이 글은 KOTRA 해외시장뉴스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인터비즈 임유진, 이방실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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