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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미군의 '악몽' 日제로센 궤멸된 이유?

조회수 2019. 1. 5.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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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기체로 '죽을 때까지 출격'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주력 전투기인 ‘제로센(零戰, 기명 A6M)’은 미군 조종사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제로센은 당시 그 어떤 미군 전투기보다도 빠르고 항속거리도 길었다. 무엇보다 선회반경이 압도적이었다. 90도로 회전 시 회전반경이 200m밖에 되지 않았다. 미군 전투기는 그 두 배인 400m였다. 선회반경이 10m만 차이가 나도 공중전에서는 치명적이라고 하는데, 둘의 차이는 200m에 달했던 것이다. 아예 맞상대가 절대 불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A6M 제로센 초기 모델)

제로센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본군의 다른 전투기들 역시 미군 주력 전투기인 F4F-3, 일명 ‘와일드캣(Wild Cat)’과 P40보다는 훨씬 뛰어났다. 미군 전투기 성능은 일본군 전투기와 비교하면 정말 형편없었다. 특히 군함을 공격해야 하는 뇌격기와 급강하 폭격기는 ‘날아다니는 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능이 떨어졌다.

출처: 위키피디아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 주력 전투기였던 F4F 와일드캣)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미군, 제로센 분석할 기적같은 기회 얻다

1942년 일본은 태평양을 거의 석권하고 뉴기니에까지 진출했다. 호주마저 점령당할 위기에 처한 미군은 필사적인 반격 작전을 전개했다. 반격 지점은 솔로몬제도의 과달카날 섬이었다. 과달카날 전투는 미군으로서는 대단한 모험이었다. 태평양 섬에서 벌이는 전투인데 제해권과 제공권이 모두 열세로 평가받았다. 특히 제공권의 열세는 치명적이었다. 바다에서 전함끼리 맞붙어 포격으로 승부를 가르는 방식은 이미 구식이었다. 사실상 공중전이 곧 함대의 운명까지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중전 패배는 곧 해전의 패배로 이어졌고, 바다를 내어주면 과달카날의 지상군도 고립돼 궤멸될 것이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과달키날 근처 해상에서 일본군 '배티' 폭격기들이 연합군 함대를 폭격하고 있는 모습)

전투기의 성능을 놓고 봤을 때 미군은 일본군에 비해 절대적 열세에 놓여 있었다. 신형 전투기 개발에 전력을 쏟고 있었지만, 실전에 사용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전투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1942년 8월, 미국은 일단 과달카날에 상륙해 비행장을 확보하고 섬에 주둔시킬 전투 비행단을 편성해 파견했다. 나중에 선인장 항공대(Cactus Air Force)라고 불린 이 비행단에는 총 42대의 전투기와 12대의 급강하 폭격기가 배치됐다. 이들의 임무는 과달카날 상공을 방어하고 주변 바다의 일본군 수송선을 공격하며 해상전투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과달카날에 파견된 미군 조종사들은 대부분이 신참이었다. 반면 일본군 항공대는 100여대 가까이 격추시킨 전설적인 에이스 사카이 사부로를 앞세운 최정예 조종사로 구성돼 있었다. 과달카날의 미군은 전투기 성능과 조종사 등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셈이다. 과달카날 사수는 쉽지 않아보였다. 그러던 미군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한 달 전인 1942년 7월 11일, 일본군 항공모함 류조의 해군 전투기 하사관 다다요시 코가는 제로센을 몰고 공습에 참가했다. 그러나 귀환 중에 연료계통에 이상이 발생했다. 기체에 두 발이 피탄됐던 것. 젊은 신참 조종사였던 그는 낙하산으로 탈출하는 대신 무인도 착륙을 시도했다. 평지를 확인한 뒤 바퀴를 내리고 지면에 접촉하는 순간, 땅에 바퀴가 박히면서 제로센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곳은 평지가 아니라 늪이었다. 잡초가 덮여 하늘에서는 땅처럼 보였던 것이다. 전투기가 물에 처박히면서 그 반동으로 코가는 조종석에서 튕겨나왔고 목이 부러져 즉사했다.


며칠 후 미군 정찰기가 이 전투기를 발견했다. 늪에 처박힌 덕분에 기체의 등뼈에 해당하는 용골이 부러졌을 뿐 다른 곳은 멀쩡했다. 제로센의 성능과 정보에 목말라하던 미군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과 같았다. 미군은 즉시 공병대를 보내 도로까지 개통해 가면서 고가의 전투기를 그대로 수거했다. 이후 기체를 수리해 하늘에 띄우고 모의 공중전까지 시행했다. 이로써 미군은 제로센의 성능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당시 현장에서 찍은 사진. 기체가 거의 온전히 보존된 채로 늪지에서 발견됐다 )

제로센의 치명적 단점... 스피드를 얻은 대신 방어를 완전히 포기한 '기형 기체'

미군의 연구 결과, 제로센의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났다. 바로 기체가 약하다는 점이었다. 속도와 기동성, 항속거리를 늘리려면 기체를 가볍게 해야 했고, 경량화를 위해 제로센은 전투기의 구조적 강도를 약화시킬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나무로 만든 골조에 구멍까지 뚫었다. 새의 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고 하는데, 전투기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빠른 속도로 하강하면 최고 속도에 이르기도 전에 기체가 분해될 정도로 기체가 약했다. 그 환상적인 선회나 속도 역시 실용고도에서만 가능했다. 직선 주행을 해도 최고 속도가 되면 기체가 떨리고 방향타가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였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얇은 장갑능력이었다. 미군 와일드캣은 느리고 둔한 대신에 기체는 대단히 튼튼했다. 특히 연료통에 고무판을 대서 총알이 연료통을 관통해도 고무판이 구멍을 메우도록 했다. 조종석 의자 뒤와 아래도 철판을 덧댔고 조종석의 유리는 기관총탄도 막아내는 방탄유리였다. 그러나 제로센은 연료 차단장치가 없었다. 기체 외피는 너무 얇아 총알 몇 발을 맞으면 부서졌고 연료통에 맞으면 바로 폭발했다. 조종석도 전혀 보호되지 않았다.

출처: 위키피디아
(격추된 A6M3 제로센)

대(對) 제로센 전술 '태치 위브'... 우세한 성능의 제로센을 둔탁한 전투기로 격침시키다

장갑 능력은 떨어졌지만 제로센은 속도와 기동성이 워낙 좋았다. 그러다 보니 전투기가 서로 꼬리 물기 싸움을 하면 제로센을 조준해서 맞추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일본군도 이것을 기대하고 제로센을 개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로센의 성능 분석과 몇몇 창의적인 미군 조종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군은 효과적으로 제로센에 대항하는 전략을 찾아냈다.


먼저 1대1은 무조건 피했다. 마주치면 절대 싸우지 말고 탄환을 있는 대로 쏘면서 최고 속도로 하강하면서 도망치는 것이 제로센 상대 1대1 전략이었다. 기체가 약한 제로센은 정면에서 사격이 오면 일단은 무조건 피해야 했기 때문에 도망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A6M2 제로센의 비행 모습)

싸울 때는 반드시 2대1로 대항했다. 이때 ‘태치 위브(Thach Weave)’라는 전술을 활용했다. 미 해군 비행사인 존 태치(John Thach)가 고안한 공중전 전술 태치 위브는 60m 간격으로 두 대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선회하는 방법이다. 일본기가 선회해서 미군기 1대의 꼬리를 물면 다른 미군기가 일본기의 꼬리를 뒤따라 무는 식이다. 공중전에서는 고전적인 방법인데 3대가 서로 꼬리를 물었을 때 서로 사격을 하면 장갑능력이 약한 제로센이 불리해진다. 이때 핵심은 동일 고도에서 1대1로 제로센과 맞붙어 싸우는 대신, 2대1 팀워크를 이뤄 상하 기동과 직선 주로를 적절히 활용해 대응했다는 점이다. 동일 고도에서 수평 선회 싸움을 해서는 기동력이 탁월한 제로센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급강하 능력이 뛰어난 와일드캣의 장점을 십분 살려 높은 고도에서 하강하며 제로센을 공격한 후 재빨리 아래로 빠져나오는 비행술을 구사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태치 위브'를 고안한 존 태치 장군. 그는 훗날 4성 장군 자리에 올랐다)

이 전술은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그 때까지 객관적 성능에서 절대 열세였던 선인장 항공대가 일본 항공대에 우세한 전과를 거뒀다. 8월20일 배치된 선인장 항공대는 8월 말까지 불과 열흘 동안 총 56대의 일본 항공기를 격추했다. 미군 측 피해는 11대에 그쳤다.


이 승리의 의미는 드러난 수치보다도 더욱 컸다. 당시 미국과 일본의 항공기 생산량은 10대1이었다. 일본군이 10배를 더 격추시켜도 실제로는 5대5의 싸움이 전개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과달카날 상공에서 미군은 5배가 넘는 일본기를 격추시켰다. 같은 기간 해전에서 미군은 아슬아슬하게 패배를 모면했는데, 항공단의 활약이 없었다면 해전에서도 참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과달카날 전투를 기점으로 태평양전쟁에서 미군과 일본군의 공중전 양상은 완전히 기울어졌다. 1944년에는 드디어 제로센을 능가하는 신형 전투기가 등장했고, 일본군은 하늘에서 완전히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소수 에이스에 의존한 일본, 스스로 화를 초래하다

이 승리의 배경에는 몇 가지 중요한 요인이 더 있다. 일본은 제로센을 만들어냈지만 전체적인 산업기술이나 역량에서는 아직 후진국이었다. 제로센의 속도와 기동성도 항공기의 기본 구조를 포기해가며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특히 레이더와 항법장치가 형편없었다. 라비울에서 과달카날까지 가는 데만 4∼5시간을 비행해야 했는데 그 넓은 태평양에서 육안으로 적함을 찾고 항로를 유지해야 했다. 이것은 조종사들의 피로를 증가시키고 집중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미군의 2대1 전술에 형편없이 당한 데도 이유가 있다. 제로센은 형편없는 무전기조차도 항속거리를 늘리기 위해 떼냈다. 창공에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A6M 제로센 개발팀의 모습)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은 전투기가 아닌 조종사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의 최고 에이스였던 이와모토 데츠조, 사카이 사부로 등은 거의 100대에 가까운 격추기록을 가지고 있다. (일본군은 공식 격추 집계를 하지 않아서 격추기록이 정확하지는 않다. 일부에서는 이들의 기록이 과장이라는 견해도 있다.) 반면 미군 최고 에이스인 리처드 봉 대령의 기록은 40대, 2위인 토마스 맥과이어의 기록은 38대다. 다른 에이스들의 기록은 대개 10여대에 그친다.


기록으로 보면 일본군 조종사들의 능력이 월등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미군은 5대를 격추하면 에이스 칭호를 주는데 에이스가 되면 대개는 본국으로 송환시켰다. 격추기록이 없는 뇌격기나 폭격기 조종사도 일정 기간 근무를 하면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돌아간 그들은 대부분 항공학교의 교관으로 부임해 후배를 교육하거나 항공기와 전술개발에 참여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도 모르던 새로운 능력과 동기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쟁 후반기에 제로센을 압도하는 신형 전투기의 등장에는 이들의 경험과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일본군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에이스들의 퇴역은 곧 죽음이었다. 대부분 에이스들은 현장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산화했다. 일단 제로센의 기체가 약해 희생이 너무 컸다. 피로도와 희망의 상실도 무시할 수 없다. 태평양전쟁에서 보인 일본군의 일왕을 향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정신력은 유명하지만, 그들도 인간이다. 무자비한 전쟁에서 살아 돌아갈 희망이 없는 전투는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도 부지불식간에 피로감을 증대시키고 의욕을 저하시키기 마련이다. 신참 조종사의 양성은 거의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그 결과 전쟁 말기에 이르렀을 때, 숙련 조종사는 대부분 전사하고 없었다. 1944년 필리핀전투 때 참전한 조종사들은 대부분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신참들이었다. 미군의 신형 전투기가 등장하지 않았어도 제공권은 이미 상실한 상황이었다. 이쯤되면 일본군이 왜 가미가제 전술을 쓸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간다. 단순히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공중전을 벌일 수 있는 조종사가 거의 남아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1941년 12월 진주만 급습 당시 항공모함 쇼카쿠에서 출격 준비 중인 A6M2 제로센 비행대)

단기적 성공에만 집착하면 결국 화를 부른다... 올바른 전략 짜고 사람 중시해야

선인장 항공대의 승리는 기계적 성능이 전부일 것 같은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공중전에서조차 전술과 미래 인력에의 투자가 무척 중요함을 알려준다. 미군은 당장 눈앞의 전투를 이기기 위해 우수한 인재들을 소진시키지 않았다. 궁극적인 승리를 위해 미래에 투자했다. 에이스 파일럿 몇몇에 의존해 당장의 전투를 이기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군 전체적으로 균형을 갖추기 위해 신참 조종사 교육에 힘쓰고 전술 보강을 위해 노력했다. 반면 일본군은 미군보다 여러 측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에이스 조종사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무조건적 희생을 강요했다. 전투기의 기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나무 골조에 구멍까지 뚫었던 것처럼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기보다는 편법과 변칙을 일삼았다.


오늘날 기업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실적을 높이는 데 급급한 경우가 많다. 단기 실적 창출만 강요하며 직원들을 계속 쥐어짜기만 해서는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 조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어야 한다. 체계적인 훈련·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조직원들에게 자기 역량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할 때 창의와 혁신도 생겨날 수 있다. 현대 경영자들은 기본과 원칙을 무시한 편법과 편칙으로 승리를 구가할 수 있는 기간은 짧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86호
필자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 소장

인터비즈 권성한, 박은애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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