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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한국전쟁 때 미군 포로들은 왜 변절자로 돌아섰나

조회수 2018. 12. 9.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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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비즈] 한국전쟁 중, 많은 미군 병사들이 중공군의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었다. 군사 정보를 캐내기 위하여 무자비하게 그들을 고문했던 북한군과는 달리, 중공군이 미군 포로를 대하는 방법은 매우 특이했다. 그들은 ‘유화정책(lenient policy)’이라는 이름 아래 포로들을 다루었는데, 그것은 고도로 정교화된 심리적 공격이었다.

출처: 출처 Büschel at Bundesarchiv
(중공군은 어떤 방법으로 미군 포로들을 세뇌했을까? (해당 사진은 본 내용과 무관))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귀환 포로들의 심리적 상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는데, 그 이유는 중공군의 포로 심문 프로그램이 유래 없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중공군은 미군 포로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도록 만들었다. 이 고발 제도는 효과적이어서 미군들의 수용소 탈출 계획은 빈번히 미리 탄로 났고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적진에서 동료를 사지로 몰아넣는 미군들의 이러한 행동은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중공군의 세뇌 프로그램을 연구했던 수석 연구자 겸 심리학자 에드가 쉐인(Edgar Schein, 1956)은 “어떤 사람이 설령 탈출에 성공했다 해도 중공군은 그를 고발하는 사람에게 쌀 한 봉지의 현상금을 내걸음으로써 손쉽게 그를 다시 체포할 수 있었다.”고 보고했다. 실제로 중공군의 포로로 있었던 미군 병사들 중 대부분이 이런저런 형태로 중공군에 협조했다.

포로수용소의 프로그램을 자세하게 연구한 결과는 중공군이 개입과 일관성의 심리전을 사용하여 포로의 협조를 얻어 내는 데 성공했다고 밝히고 있다. 당연히 초기 단계에서 중공군이 미군 포로로부터 어떠한 협조를 얻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군 병사들은 그들의 이름, 계급, 그리고 군번만을 알려줄 뿐, 다른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도록 잘 훈련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신체적 고문이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중공군은 어떻게 하여 이들에게서 군사 정보를 빼내었으며 서로 간에 고발은 물론 자신의 조국을 비난하도록 만들었을까?  


중공군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크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 예로 포로들은 매우 하찮은 것으로 보이는 반미국적이거나 친공산주의적인 ‘미국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혹은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실업이 전혀 사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등의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도록 요청받았다.  


미군 포로들로부터 가벼운 승낙을 받아내면, 다음 단계는 조금 더 심각해진다. 미군 포로는 어떤 측면에서 미국이 완벽한 나라가 아닌가에 대하여 조목조목 나열하기를 요청받는다. 나중에는 포로들 간의 토론 시간에 자신의 이름이 서명된 미국의 문제점에 대한 자기의 작문을 정식으로 직접 공개하게 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포로는 미국이 완벽한 나라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생각해 내게 되고, 공개 토론에도 더욱 활발히 참여하게 된다. 그때쯤 되어서 중공군은 이 미군 포로의 이름과 반미국적인 작문 내용을 다른 미군 포로수용소나 미군 부대를 향해 라디오 방송으로 내보낸다. 갑자기 이 포로가 적에게 협력하는 변절자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자신의 작문이 어떠한 외부적 강압에 의해 억지로 강요되어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 포로는 자신의 생각이 자발적으로 반미국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변해버린 자신의 새로운 이미지에 충실하기 위하여 나중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적에게 협조하게 된다. 

출처: 에드가 쉐인 페이스북
(미국-스위스 심리학자 에드가 쉐인)

쉐인은 연구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적에게 협조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협조자들은 이런저런 매우 하찮은 일로 적과 협조하였는데, 중공군은 이를 교묘히 이용하여 궁극적으로 포로들로 하여금 자신을 비판하게 하고 군사 정보를 누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방법의 잠재적인 영향력은 자선 단체나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 자선단체와의 인터뷰나 설문에 응하는 정도의 간단한 일이라도, 일단 승낙하게 되면, 나중에는 점차 그 개입의 정도가 강해져서 결국에는 정기적으로(혹은 그 자리에서) 기부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홈쇼핑에서 ‘지하철만 타면 코트 구겨질까봐 앉아야 할지 망설이시죠?’라며 당신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 후 제품을 소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그 코트가 구김이 덜한지는 상관없다. 이미 끄덕이는 순간 당신은 개입된 상태다.

(‘개입’하게 된 순간 이미 당신은 ‘일관성의 법칙’ 안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데 만만찮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관성의 법칙’의 힘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사회심리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대답은 위에서 언급한 ‘개입(commitment)’이다. 내가 만약 당신을 어떤 일에 대하여 개입하게 만들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일관성의 포로로 만들어서 그 이후의 행동들을 자동적으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당신이 어떤 입장을 취하기만하면 그때부터 당신은 결정된 입장에 따라 일관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개입과 일치의 연관성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사회심리학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이 전략은 거의 모든 마케터 혹은 세일즈맨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한결같이 고객으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취하거나 발언을 하게 만들고서는 일관성의 법칙에 따라 해당 고객이 나중에 그들의 요구에 응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중고차 매매상이었던 잭 스탠코(Jack Stanko)의 접근 방법을 생각해 보자. 샌프란시스코의 자동차 판매자 협의회에서 그는 ‘중고차 마케팅’ 전략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종이에 적도록 하세요. 서면상으로 고객의 승낙을 받으세요. 고객을 장악하세요. 그 거래를 장악하세요. 지금 이 가격이 적당하면 차를 살 거냐고 그들에게 물어보세요. 확실하게 고객들을 묶어놓아야 합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였던 스탠코는 고객의 승낙을 얻어내는 길이 그들의 개입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 분명하다.


개입의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속한 자선단체를 위해 직접 기부금을 받으러 다니겠다고 동의하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고 싶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사회 심리학자 스티븐 셔먼(Steven J.Sherman)의 접근 방법을 연구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담당한 조사의 일환으로 인디애나 주의 블루밍턴 주민들에게 전화하여, 세 시간 정도 미국 암협회의 기부금을 모으는 데 할애해 달라고 부탁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물론 매정한 사람처럼 보이기 싫었던 많은 사람들이 자원해서 나서겠노라고 대답했다. 이 미묘한 개입의 결과는 자원봉사자 700% 증가로 나타났다. 며칠 후 미국 암협회의 대리인이 이들을 찾아가서 협조를 부탁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절하지 못하고 승낙했던 것이다.  

출처: dimita.com
(1984년부터 30여 년간 배심원 선정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온 배심원 컨설턴트 조 엘란 디미트리우스)

다른 연구자들도 이와 똑같은 전략을 이용하여, 선거일에 투표를 할 예정이냐고 시민들에게 물어보았다. 그 결과 질문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서 투표 참여자의 수가 현저하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법정에서도 미래의 일관성 있는 행동을 격려하기 위해 초기 개입이라는 이 기법을 적용한 사례가 있다. 재판 전에 배심원들을 심사할 때, 조 엘란 디미트리우스(Jo-Ellan Dimitrius, 당시 배심원 선정 분야에서 최고로 평판이 난 사람)는 한 가지 기교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만약 피의자의 결백을 믿는 유일한 사람이라면, 결정을 바꿔야 한다는 다른 배심원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때 어느 누가 저항할 자신이 없다고 대답하겠는가? 그리고 그런 약속을 하고 선정된 배심원들이 어떻게 그 공언했던 약속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으로 이를 실천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개입을 유도하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또 다른 사례로 소비자 연구가인 대니엘 호워드(Howard, 1990)가 조사한 결과를 보자. 

텍사스주(州)의 댈러스 주민들은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기아구제협회의 회원이 전화를 걸어 굶주린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해주는 방편으로 과자를 팔아야 하는데 집으로 방문해도 되겠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그러한 요청에 동의한 사람은 약 18%였다. 하지만 전화를 건 사람이 처음에 “오늘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묻고 끈기 있게 기다려서 대답을 들은 다음에 이 질문을 던졌을 때는 몇몇 눈여겨볼 만한 일들이 일어났다. 


첫째, 응답자 120명 중에서 대부분(108명)이 의례적으로 상냥한 대답(“좋아요” “괜찮아요” “아주 좋아요.” 등)을 했다. 둘째로, 오늘 기분에 대해 질문을 받았던 사람 중 32%가 자신의 집으로 과자를 팔러 오라고 허락했다. 기본 질문만 던졌을 때보다 거의 두 배나 높은 성공률이었다. 셋째, 방문을 허락했던 사람 중 거의 모두가(89%) 과자를 팔러 온 사람과 만나게 되었을 경우 과자를 구입해 주었다. 

개입 기법이 효과적인 이유에 대한 질문에는 많은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즉, 개입의 효과성은 다양한 요소들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많은 비즈니스맨들이 개입과 일관성의 법칙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나중에 큰 것을 팔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세일즈맨은 우리에게 아주 작은 것을 이윤없이 판매한다. 어떠한 것이라도 좋다. 일단 그의 판매는 우리를 개입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그렇게 되면, 그다음 단계는 자동적으로 흘러가게 된다. 우리는 일관성의 인도에 따라 보다 비싼 것을 그로부터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52년 전 <미국의 영업인(American Salesman)>이라는 잡지에서도 이 기본적인 논리를 분명하게 설명된 바 있다.


작은 주문으로 시작하여 커다란 주문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이 전략의 요체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상품을 처음으로 주문한다면, 비록 그 주문 자체를 통해서 당신이 지금 당장 어떤 이익을 얻을 수는 없을런지 몰라도 그는 이제 더이상 잠재고객이 아니다. 그는 바로 당신의 고객이 된 것이다(Green, 1965, p.14). 


미군 포로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적극적인 공산주의 찬양론자가 되어있었듯, 당신은 이미 누군가의 고객이 되어 있을 수 있다. 역으로 당신도 은근한 방법으로 고객층을 확보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 ‘개입과 일관성의 법칙’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마케팅·세일즈 전략 수립 시 요긴한 고객 설득의 법칙이다. 


참고 설득의 심리학 (로버트 치알디니 저) 


인터비즈 박성준 정리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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