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Q는 어쩌다 '아이스 치킨'이라는 끔찍한 신상을 냈나

조회수 2018. 11. 23. 18: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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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느님은 항상 옳다? BBQ, 황당한 메뉴 '아이스 치킨' 성공할 거라 착각한 이유

[DBR] "태어나 처음 들어본 멋진 아이디어야!"를 외치며 개발한 상품이 말 그대로 '폭망'한 경험 있으신가요? 창의적 아이디어, 독창적 디자인, 독특한 기능... 전에 없던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압박하는 세상인데, 기껏 역발상을 통해 독특한 제품을 출시해도 대부분은 시장에서 사양되고 맙니다. 상식을 뒤집은 새로운 상품임에 틀림없는데... 어떤 것은 괴상한 돌연변이 취급을 받고 어떤 것은 혁신 제품으로 칭송받는 이유, DBR에 실린 내용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BBQ는 그동안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로는 최초로 미국, 중국, 스페인 등 세계 43개 국의 프랜차이즈 사업에 진출했고 매장 또한 일반 배달형, 테이크아웃형, 호프형, 멀티콘셉트 카페형 등으로 세분화해 운영하는 등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꾸준히 도입해 온 성공기업이다. 매년 새로운 맛의 치킨 메뉴를 개발하며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BBQ가 지난 2012년 야심 차게 출시한 메뉴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아이스 치킨’이다. 지금 들어도 도저히 성공을 가늠해보기 어려운 이 난해한 메뉴를 왜 출시했던 것일까? 지금이야 "당연히 망하지 않았을까", "아이스 치킨을 누가 먹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메뉴 출시 전 BBQ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실제로 메뉴 개발을 주도한 BBQ 세계식문화연구소 담당자는 출시에 앞서 “치킨의 맛과 온도에 대한 상식을 파괴한 신제품으로 기존 치킨 전문점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이색 메뉴여서 고객들의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아이스 치킨은 출시된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만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BBQ의 아이스 치킨 판촉물)
A 블로거: "재고처리용 메뉴인가? 해동할 비용도 아깝다는 건지... 고추 말린 건 줄 알았다."
B 블로거: "내가 씹고 있는 게 살인지 뼈인지 구분이 안 간다. 무슨 남은 목뼈 모아서 냉동실 넣었다가 꺼내 먹는 맛! 돈 아까워서 꾸역꾸역 뜯다가 결국 포기했다”  
C 블로거: "먹다 남은 교X양념치킨 날개 부위를 냉장고에 일주일간 방치했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데워먹으려고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우적우적 씹어먹을 때의 맛입니다(...) 맛이 궁금하시면 남은 치킨으로 제조해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인생의 경험치 증진, 혹은 포스팅거리를 위해서라면 말리지는 않습니다."

매출 부진이라는 측면에서의 정량적 기준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블로그에 올라온 소비자의 악평만으로 아이스 치킨이 얼마나 참패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광고 및 구전효과도 미비했고 심지어 당시 본사 콜센터 또한 어느 매장에서 이 메뉴를 판매하고 있는지 모르기도 했다. 출시 3개월 만에 ‘팔기를 포기했다’는 해석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아이스 치킨은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치킨 시장에서 쓸쓸히 퇴장했다. 

황당 메뉴 '아이스 치킨' 왜 기획했나

'냉동실에 얼려 둔 치킨도 안 꺼내 먹는데 웬 아이스 치킨?'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황당하게 들리는 이 메뉴는 사실 일본 후쿠오카의 명물 중 하나이다.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14개 점포를 운영 중인 ‘유메유메도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치킨 전문 브랜드이자 특색 있는 제품으로 명성이 높다. 이 회사는 ‘히야시 치킨’이라는 차가운 치킨 브랜드를 개발했다. 이 메뉴는 섭씨 180도에서 25분간 튀겨낸 치킨에 특제 소스를 버무려 영하 25도에서 30분간 얼려 완성된다.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즐기는 차가운 치킨으로 ‘치킨은 바삭하게 튀겨 따뜻하게 먹어야 한다’는 기존의 통념을 한순간에 깨버리는 신제품이었다.

출처: 유메유메도리 공식 홈페이지
(유메유메도리 히야시 치킨 이미지)

히야시 치킨의 등장 배경은 이렇다. 2011년 초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 및 후쿠시마 원전 폭발에 따라 원자력 발전소 가동 중단이 이어지면서 일본 전역은 심각한 전력 부족에 시달리게 됐다. 아이러니하게 이러한 전력 부족 사태는 일본 요식업계에까지 영향을 끼쳤는데 그 대표적인 트렌드가 더운 여름철에 잘 팔릴 수 있는 신개념 냉(冷) 메뉴의 개발이었다. 냉규동, 냉도넛 등 업체별로 다양한 냉메뉴가 쏟아지는 가운데 프라이드치킨 업체도 이러한 ‘역발상’에 동참한 것이다.


출시 이후 이 제품은 입소문을 타고 나름 성공적인 판매고를 올리면서 도쿄, 후쿠오카 지역의 유명 백화점에까지 입점할 정도로 다양한 판로를 확보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면, 지금도 후쿠오카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꼭 맛보러 간다는 음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신개념 트렌드는 국내 최대의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BBQ를 통해 한국 시장에도 소개됐다. BBQ가 출시한 '아이스 치킨'은 일본에서 유행한 제품 콘셉트를 차용하긴 했으나 '역발상'콘셉트의 독특함과 일본에서 이미 검증된 사례라는 점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것이다. 하림도 2013년 'Cool 치킨'을 출시했었다. 독특한 성공사례에 귀가 솔깃했던 건 BBQ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하림에서 출시한 'cool 치킨')

똑같이 '역발상'콘셉트로 출시되었는데 왜 일본의 '히야시 치킨'은 명물이고 한국의 '아이스 치킨'은 비웃음거리가 된 것일까? '히야시 치킨'과의 비교를 통해 실패 원인을 자세히 살펴보고, 성공하는 혁신제품의 조건을 알아보겠다.

일본 '히야시 치킨'은 성공, 한국 '아이스 치킨'은 참패... 이유는 '마켓 센싱의 결여'

BBQ의 아이스 치킨 출시 단계에서 첫 번째 문제점은 소비자의 욕구와 시장 흐름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는 ‘마켓 센싱(market Sensing)’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즉, 한국 소비자 니즈에 맞는 제품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부족했다. 콘셉트의 독특함과 일본에서의 성공 스토리만 중시해 다른 요인들은 보지 못한 것이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혁신적 아이디어에만 집착했던 게 실패 이유였다. 소비자는 잊고 지나치게 회사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얘기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소비자 니즈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준비 없이 혁신 상품들의 성공 스토리에 혹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모니터그룹의 조사 결과, 국내 소비자들의 치킨 전문점 메뉴 선택 시 고려 요인을 살펴보면 음식의 맛(47.8%)이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조리 시 위생(17.7%), 신속성 (7.0%), 재료 선택(6.6%), 메뉴의 다양성(6.3%)순으로 나타났다. 즉, 치킨을 주문하는 국내 소비자들은 치킨의 맛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아이스 치킨을 실제 구매하고 먹어본 소비자들의 맛이나 질감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일본 유메유메도리의 히야시 치킨은 원전 발전 중단 등에 따른 국가적 전력 부족 상황에서 더운 여름철 다양한 냉메뉴를 통해 더위를 잊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와 이를 반영한 일본 요식업계 전반의 트렌드에 기반한 것으로 한국의 아이스 치킨 출시 상황과는 달랐다. 즉, 철저히 마켓 센싱에 기반한 역발상 신제품 출시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출처: 다이슨 공식 홈페이지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

LG생활건강의 샤프란 아로마시트는 소비자 행동관찰 조사를 벌여 섬유유연제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제품 개발에 반영한 사례다. 조사 결과, 그동안 섬유유연제의 부드러운 감촉이나 향기, 정전기 방지 등 성능을 중시한다는 소비자 설문 조사와는 달리 소비자들은 섬유유연제의 용기 무게 때문에 사용할 때마다 힘들어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적정량을 사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간파했다. 이에 따라 LG생활건강은 액상제품 대비 부피와 무게를 10분의 1로 줄인 시트형 섬유유연제를 개발했다. 제품 사용 시 무거운 용기를 들다가 유연제를 바닥에 쏟는 번거로움을 원천적으로 없앤 것이다. 게다가 티슈박스 형태로 만들어 보관과 사용 용이성도 높였다. 세탁물의 양에 따라 한 장씩 뽑아서 쓰는 형태로 만들어 정량 사용도 가능해졌다.

(LG생활건강의 뽑아 쓰는 섬유유연제 샤프란 아로마시트)

독특하면 다 성공? 기본에 충실한 마케팅이 정답

우리는 언제나 독특하고 혁신적인 제품이나 사업모델이 나오면 탄성을 지르고 이에 환호한다. 스티브 잡스가 주도한 애플의 iPod, iPhone, iPad가 그랬다. 그 혁신의 정도가 기존의 통념을 깨는 수준의 ‘역발상’적 제품이라면 더 큰 관심을 보여왔다.  


하지만 우리는 앞서 살펴본 사례에서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바로 독특하다고 다 성공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고객의 숨겨진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적절한 마케팅 믹스 전략을 통해 실행해야만 실제 현실에서 성공할 수 있다. ‘역발상’의 아이디어는 언제나 독려돼야 하지만 이를 사업화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물론 필자의 해석이 지나치게 교과서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 언제 교과서가 틀린 적이 있던가? 핵심은 그 내용을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기억해 활용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118호 
필자 장승세

비즈니스인사이트 김유정 정리

businessinsigh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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