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루이비통' 사고 '북엇국' 먹은 당신, 인내심 王

조회수 2018. 10. 31. 17: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루이비통 매장 앞. 입장을 기다리는 고객들이 주말 극장 앞처럼 늘어선 진풍경이 종종 펼쳐진다. 세일이라도 하는 날엔 ‘특별한 고객들을 모신다’는 럭셔리 브랜드 매장 앞이 시골 장날처럼 북적인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입장객 수를 통제한다 하더라도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고객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불편과 비용을 감내하면서까지 기다리는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있으니 줄 세우는 이를 무작정 탓할 수만은 없다.

출처: 루이비통 코리아 홈페이지, 게티이미지뱅크
(루이비통 매장을 찾은 고객이든 국밥집을 찾아온 손님이든 기다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고객을 잡기 위해 대기시간 관리가 필요하다)

럭셔리 브랜드 매장이든 국밥을 파는 시골 장터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기업과 상인에게 피크타임(Peak time)대기시간(Waiting time) 관리는 골칫거리다. 서비스는 상품과 달리 저장할 수 없다. 발생하는 순간 사라진다. 재고라는 개념도 없다. 따라서 수요가 폭증하는 피크 타임에는 일시적으로 공급이 달릴 수밖에 없다.

대기시간, 지루하지 않고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라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이 대기시간이 고객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심지어 기다리는 시간이 실제 서비스 시간보다 고객 만족도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문도 모르고 기다리거나, 기다리는 동안 새치기로 공정하지 못한 대우를 받았다거나, 불편한 상황에서 기다려야 하거나, 혼자서 기다려야 할 때 사람들의 불만은 더 커진다. 피크타임 관리를 위해 무작정 인력과 설비를 늘릴 수도 없다. 게다가 서비스 공급이 늘어난다고 해서 이에 비례해서 대기 시간이 줄지도 않는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고객이 미소 짓게 하는 기다림은 어떻게 제공해야 할까)

아웃소싱이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공급을 일시적으로 확대하거나 고객이 몰리는 특정 시간대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할인 혜택과 각종 쿠폰을 제공해 수요를 분산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


럭셔리 브랜드처럼 높은 충성도를 가진 고객과 매우 한정된 공급자가 존재하는 판매자 시장(Seller’s market)에서는 줄 세우기를 통해 고객에게 이 비용을 전가한다. 서비스 가치가 클수록 사람들은 더 오래 기다린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제는 중저가 수입 패스트패션 브랜드들까지 브랜드 파워를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고객 줄 세우기에 나선다. 


진정한 고수들은 고객의 심리적 경험(psychological experience)을 조절하는 방법을 활용한다. 실제 기다리는 시간과 고객이 인지하는 시간의 길이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예측가능하다면 더 오래 기다릴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엘리베이터 앞에 거울을 설치하는 이치다.

출처: (cc) Rian Castillo at flickr.com
(고객의 대기시간을 관리하는 일에 대한 고민은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패스트푸드 업체 버거킹은 주문 대기 줄 옆에 버거 조리 과정을 볼 수 있는 투명 창을 설치했다.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는 기다리는 고객들에게 다큐멘터리 영화를 틀어준다. 고객이 느끼는 심리적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줄 서기를 바꿔 고객 만족과 추가 수익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기업도 있다. 미국 디즈니랜드는 줄을 서지 않고도 지정된 시각에 놀이기구에 입장할 수 있는 ‘패스트패스(FASTPASS)’ 티켓을 판매했다. 줄에 발이 묶인 고객은 매출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패스트패스 티켓으로 줄에서 해방된 고객들은 기다리는 시간에 다른 서비스를 추가로 이용했다. 고객 만족도는 물론 놀이공원의 수익도 늘었다.

평범한 북엇국집의 반전

출처: MBC ‘맛잇는 TV’, 인터비즈
(11시 30분부터 1시 사이 무교동의 한 북엇국집. 가게 안까지 사람들이 10분의 만족을 맛보기 위해 줄 서 있다)

고객의 심리적 경험을 조절하고 활용하는 방법은 선진 기업만의 노하우가 아니다. 서울 무교동에는 40년도 더 된 북엇국집이 있다. 인근 직장인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점심 식사 시간에는 30m 넘게 긴 줄을 선다. 이 식당에는 점심 메뉴가 하나다.  


줄이 길 것을 알면서도 직장인들의 발길이 40년 째 이어지는 비결은 기다림을 잊게 만드는 안팎의 반전과 예측가능한 대기시간이다. 사람들은 이미 대기시간이 있을 거라 예상했기에 빡빡했던 오전 일과 하소연, 어제 벌어진 잊지 못할 사건의 전말, 어리둥절 줄 서있는 신입사원의 취미생활 얘기 등을 하며 여유 있게 기다린다.  

출처: 동아일보

하지만 식당 안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여유는 사라진다. 가게 문 턱을 밟은 손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안이 다 보이는 주방과 북엇국이 담긴 큰 솥이다. 주방에서는 북엇국을 쉬지 않고 푼다. 그리고 그것을 6명 정도의 종업원 아주머니들이 분주히 나르는 모습이 보인다. 주방과 테이블 사이 거리는 2m가 채 안된다. 테이블 간 거리는 1m도 안될 정도로 빽빽하다. 좁은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며 무제한 국물과 데친 북어를 제공하는 아주머니도 보인다. 여유는 온데간데없고 빠른 속도만이 느껴진다.

출처: 인터비즈
(대접에 담겨 나오는 북엇국. 기다림 뒤에는 무제한 북엇국이 기다린다)

앉자마자 밥 딸린 북엇국이 나온다. 식당 안에서 느껴지는 속도감 때문인지 웬만한 성인 남자라면 10분도 안 돼 식사를 뚝딱 끝낸다. 줄은 길어도 자리 회전은 빠른 이유다. 밖에서의 기다림을 안에 들어오니 보상받은 느낌이다. 식당 주인이 얘기해주지 않아도 한두 번만 와보면 늘어선 줄만 보고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짐작할 수 있다. 금쪽같은 점심시간, 깐깐한 직장인들은 오늘도 군말 없이 줄을 선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스놉 효과(속물 효과, 많은 사람이 구입하면 하찮다고 생각해 수요가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만을 우려한 명품 매장의 ‘묻지마 줄 세우기’는 영원할 수 없다. 시장의 판도가 바뀌면 언제든지 고객의 반란에 직면할 수 있다. 즉, 오늘의 파워브랜드가 내일은 ‘줄 서서 기다릴 정도는 아닌’ 브랜드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이익까지 희생해가며 긴 줄을 언제까지고 참아주는 순진한 고객은 없다. 기다림에 대한 보상체계를 확립하거나 대기시간을 예측가능하도록 관리를 하는 등 소비자의 심리를 공략해야 한다. 무교동 북엇국집의 이유 있는 줄 서기가 세련되지 않아도 빛이 나는 이유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매거진 DBR 78호
필자 박용

비즈니스인사이트 박성준 정리

businessinsight@naver.com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