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길을 가겠다" 돌고 도는 포장 베끼기 속 소신 지키는 식품들

조회수 2018. 9. 27. 17: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마트에서 과자를 고르다 보면 비슷비슷하게 생긴 포장 때문에 순간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든 적이 있었을 것이다. 2014년, 허니버터칩의 열풍이 불었을 때를 떠올려보자. 당시 시장에는 40개에 달하는 '허니버터' 제품이 등장했는데 대부분 유사한 디자인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리온과 롯데제과의 초코파이, 아이스크림 누가바와 누크바 디자인 소송 등은 이미 유명한 식품 업계의 '디자인 따라하기' 분쟁 사례가 되었다.

출처: 해태제과 홈페이지
출처: 롯데제과 홈페이지

그런데 포장 디자인 따라하기가 마치 전략처럼 난무하는 시장에서도 이른바 '자신의 길'을 고수하는 식음료들이 있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포장 기술을 사용해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이다. 겉보기엔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사실 우수한 포장 기술이 없었다면 더 맛있고 간편하게 음식을 즐기는 게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기업들이 개발한 포장 기술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자.

1. "항아리형 용기" 비비고 김치

출처: CJ 제일제당 공식 홈페이지

CJ 제일제당의 '비비고 김치'는 옛 선조들이 김장을 한 뒤 장독대에 김치를 넣어 보관하던 모습을 떠올려 '항아리형 용기'를 개발했다. 김치는 발효 식품의 특성상 익으면서 상태가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꼼꼼한 포장이 중요했다. 또한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소포장된 김치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소비자들을 위한 새로운 김치 용기의 필요성이 생기게 됐다.

출처: CJ 제일제당 공식 홈페이지

항아리형 용기는 10여 명의 식품 및 포장 개발 연구원들의 논의 끝에 만들어졌다. 개발진들은 과거부터 조상들이 김치를 보관해오던 방법과 현대의 첨단 기술을 접목시켰다. 예를 들어 전통 항아리의 곡선형 모양, 옹기 재질, 김치 누름돌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용기에 누름판과 멤브레인 필터, 일방형 밸브 등을 설계했다. 멤브레인 필터는 발효가스를 배출시키고 국물과 같은 누액을 방지해주는 신소재이며, 일방형 밸브는 외부의 산소 유입을 방지하고 내부에서 발생된 가스를 밖으로 배출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누름판은 김치 맛을 유지하고 가스 발생을 억제시킨다. 덕분에 항아리형 용기에 담긴 김치는 제대로 발효되어 아삭한 식감과 청량감을 동시에 준다.


비비고 김치는 2017년 국제 패키징 어워즈인 '듀폰 포장 혁신상(DuPont Packaging Innovation Award)'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기술을 인정받기도 했다. 발효식품을 컨트롤하는 기술로 수상을 한 제품으로는 비비고의 항아리형 용기가 최초다.

2. "어셉틱 공법" 페트병 음료

출처: 롯데 칠성몰 홈페이지

보는 이에 따라서는 아주 사소한 포장일 수 있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마시는 페트병에는 '어셉틱 공법'이라는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어셉틱(Aseptic)은 사전적 의미로 '무균'을 뜻한다. 공병을 과산화수소로 멸균한 뒤 120℃의 뜨거운 압력공기로 건조하고, 68℃의 무균수로 세척하는 과정을 거치면 된다. 내용물은 88℃의 고온에서 주입되는 기존 내열 페트와 달리 20℃의 상온에서 주입한다. 


즉, 이 기술을 사용하면 음료가 쉽게 변질되지 않고 오염도 최소화 할 수 있다. 또한 유통 과정에서 냉장보관하지 않아도 음료의 맛과 향이 오랜 시간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 곡물차나 밀크커피 등 단백질 성분으로 인해 쉽게 상할 가능성이 있는 음료의 경우, 어셉틱 공법이 적용된 페트병에 담으면 안전하게 유통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 생산 라인을 갖춘 곳이 롯데 칠성음료(안성공장)와 삼양 패키징 두 곳 뿐이다. 황금보리와 같은 차 음료, 게토레이 등에 기술이 적용되어 있고 하니, 음료를 마실 기회가 생긴다면 유심히 포장을 살펴보길(?) 바란다.

3. "더 맛있게 데워주는" 간편 식품

출처: CJ 더키친 공식 블로그

가정간편식품(HMR)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전자렌지에 돌리기만 하면 되는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진공포장으로 밀봉한 뒤 살균처리하여 판매되는 냉장식품들은 냉동식품에 비해 맛이 좋아 많은 소비자들이 찾는다. 그런데 이러한 간편식은 적정 수준의 온도와 수분을 잘 유지하는 게 관건이 된다. 일부분이 덜 익어 차갑거나 조리와 함께 수분이 날아가버려 딱딱해진 음식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CJ 제일제당, 롯데푸드 등의 기업에서는 이러한 간편식품 포장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CJ 제일제당의 경우 만두 찜기의 원리를 이용해 전자렌지 조리시 용기에서 증기를 발생시켜 음식을 데우는 방식을 개발했다. 상품은 '고메' HMR 라인으로, '고메 함박 스테이크 정식'. '고메 크리스피 핫도그' 등이 있다. 롯데 푸드도 '스팀팩 포장 기술'을 식품에 도입했다. 봉지째 전자렌지에서 넣고 조리하면 포장지가 부풀어 오르면서 증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원리다. '쉐푸드 육교자'등의 상품에 적용된 이 기술은 육즙을 보존하고 촉촉한 만두피를 만들어 낸다. 일반 비닐포장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간편식 용기에는 이렇듯 제품의 맛을 유지해주는 핵심 비결이 숨어 있다. 

4. "특수 이중용기" 회간장

출처: 샘표 홈페이지

샘표가 선보인 회간장 용기는 국내 최초로 특수 이중용기를 적용하여 만들어졌다. '간장'하면 떠오르는 대표 브랜드답게 샘표 회간장은 프리미엄 제품으로 분류되어 시장에 출시됐다. "간장도 담는 통에 따라 맛과 향이 변할 수 있다"는 민감한 생각이 새로운 용기를 탄생시켰다. 


내부, 외부로 분리된 두 개의 용기는 공기를 완벽하게 차단해 더욱 신선하게 간장을 보관할 수 있다. 특수 캡으로 된 용기 입구는 한번에 많은 양의 간장이 나오는 걸 조절해 준다. 사용량이 많지 않은 회간장의 특성상 조금씩 짜서 먹기 좋게 포장한 것이다. 용기를 들고 이동해도 이중으로 밀폐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물이 새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회를 좋아하고 즐겨 먹는 소비자라면 깔끔하게 찍어 먹을 수 있는 회간장의 출시가 반갑게 들릴 수 있겠다.


소비자들은 식음료 제품을 따질 때 재료나 맛은 꼼꼼히 따지는 반면, 제품 자체를 감싸고 있는 용기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맛과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사실 포장 기술에 있지만 눈에 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 포장에 주목하지는 않는다. 소비자들의 상대적인 무관심 이외에도 식음료 업계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바로 비용의 문제다. 특히 간편식에서 주로 사용하는 비닐(필름)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일반 진공포장에 비해 원가가 40% 가량 비싸다. 이런 사정 때문에 현재 해당 포장 기술은 주로 단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고기류에만 적용되어 있다.


그럼에도, 국내 포장시장은 꾸준히 성장세에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패키징기술센터에 따르면 2010년도에 약 16조 원이었던 국내 포장시장은 2015년도에 약 24조 원으로 성장했다. 2020년에는 시장 규모가 약 56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제품 포장이 이미 단순한 제품 외관 보호 기능을 넘어 고도화된 기술로 변화된 결과로 해석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제품 포장 기술은 앞으로도 그 중요성이 더 커질 전망이다. 국내 포장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레스토랑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을 집에서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식품의 포장 기술은 오늘도 조금씩 진화 중이다.  

인터비즈 박근하 
inter-biz@naver.com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