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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비즈

"이렇게까지 아껴야 속이 시원했냐!"... 말도 안되는 구두쇠 기업인들

이거는 검소하다는 단어로 표현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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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부호나 기업 경영자 중에는 의외로 소탈한 사람들이 많다. 경우에 따라선 검소함을 넘어 구두쇠로 보이는 대부호도 적지 않았다. 구두쇠 정신이 기업을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됐을 터이나, 지독한 짠돌이라고 주변에서 쑥덕거리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대부호라는 명성 만큼이나 짠내나는 걸로 유명한 사람들을 모아봤다.

폴 게티 (1892~1976), 미국 석유재벌 

출처위키미디어 공용

세계 최고의 갑부 손자 납치 사건...그러나 상대는 더 무서운 사람

유괴범보다 더한 공포의 구두쇠. 바로 폴 게티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한 미국의 석유 재벌로 유전을 사들이고 게티 오일사를 설립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부족장들과 채굴권 계약을 다수 체결했는데, 여기서 석유가 터지면서 제대로 돈방석에 앉았다. 개인 재산 10억 달러를 처음으로 돌파한 인물로 1966년 세계 최고 부자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


1973년 존 폴 게티 3세 유괴 사건에 휘말렸을 때 보여준 모습이 지금도 회자된다. 유괴범들은 당시 그의 몸값으로 1700만 달러를 요구했는데, 16세 소년 존 폴 게티 3세의 할아버지가 바로 이 폴 게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납치범들의 협상 상대방인 폴 게티는 최고의 부자이자 역사상 최고의 짠돌이라는 사실. 호텔에서도 가장 싼 방에서 자고 10달러 룸서비스를 아끼려고 직접 빨래를 하던 인물이었다. 누구와 밥을 먹든 각자 계산. 집에서 손님이 전화를 쓰는 게 아까워 공중전화를 가져다 놓은 사람이기도 했다. 

(역사에 길이 남은 짠돌이 폴 게티 손자 유괴 사건은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올더머니 속 한 장면. 유괴범에게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아니나 다를까. 그는 유괴범들에게 한 푼도 내놓을 수 없다며 몸값 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손자가 돈을 뜯어내려고 자작극으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납치범들은 손자 게티 주니어의 한쪽 귀를 잘라 우편으로 보내면서 몸값으로 320만 달러를 다시 요구하기에 이른다. 열흘 안에 돈을 보내지 않는다면 다른 신체 부위를 잘라 보내겠다고 협박하는 지경에 이르자 그는 협상을 시작했다.

(폴 게티 손자 납치사건을 다룬 영화 올더머니 포스터)

그는 납치범에게 100만 달러까지 제시했다가 납치범이 "짐승같은 놈"이라고 힐난할 정도였다. 납치범들이 요구한 320만 달러 대신 게티가 실제 내민 돈은 220만 달러. 당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돈 상한선이 220만 달러였기 때문이다. 결국 폴 게티의 아들이 나머지 돈은 대출을 받아 아들을 구해야만 했다.

(비정한 할아버지 때문에 귀를 잃은 폴 게티 3세. 후유증으로 약물 중독이 되어 20대에 반신불수가 됐고 54세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잉그바르 캄프라드 (1926~2018년), 이케아 창업자

출처이케아

마트는 할인해주는 마감시간에 이용해야 제맛

젊은 시절 스웨덴의 한 잡화상 주인은 직원이 좁은 차 트렁크에 탁자를 집어넣으려고 낑낑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도무지 해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직원은 급기야 해당 탁자 다리를 자르고 있었다. '가구가 싸고 편리한 조립식이면 좋았을 텐데' 그때 잡화상 주인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찰나의 아이디어를 발전 시킨 이 잡화상 주인은 한때 세계 4대 거부가 됐다. 바로 이케아 창업자인 잉그바르 캄프라드다.


막대한 부를 쌓고도 그는 한 푼 지출에 아까워 하던 인물이었다. 아흔이 넘었을 때에도 경로우대증을 사용할 수 있는 버스만을 이용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입고 다니는 옷은 전부 벼룩시장에서 샀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회용 접시도 씻어서 재활용하는 게 철칙이라고 밝히기도. 마트도 마감시감이 되면 이용했는데, 과일 가격을 그때 깎아주기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가구 제국을 일군 대부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출처이케아

해외 출장이 잦았으나 비행기도 반드시 이코노미석만을 고집했다. 출장 때에도 절약 정신을 발휘했다. 개발도상국에 갔을 때를 기다렸다가 머리를 잘랐던 것. 2008년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네덜란드에서 22유로를 내고 머리를 깎았다가 비싸서 후회했다”고 밝힌 적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짠돌이라고 쑥덕대기도. 그러자 그는 "오늘날의 이케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절약정신"이라고 일축했다.


이와 같은 절약정신은 이케아 경영에도 녹아들었다. 직원들은 이면지만을 쓰도록 내부 규정을 정하고 재사용을 장려하는 기업문화를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제프 베조스 (1964~), 아마존 창업자

출처본인 트위터

자판기에서 전구를 빼면 전기비가 절약됩니다

1990년대 중반 아마존 직원들은 온라인으로 주문받은 책을 창고서 직접 포장해 배송했다. 바닥에 앉아서 포장을 했는데 주문량이 늘어나자 직원들은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알아주는 짠돌이 제프 베조스는 처음엔 무릎 깔개를 사주려고 했다고. 책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직접 이를 만들었다. 버려진 문짝에 책상다리를 달아 이를 쓰게끔 한 것. 이 문짝 책상은 아마존의 어려웠던 시절을 상징하는 물건이 됐다. 그가 얼마나 비용절감을 중시하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그는 사내에서 전기료를 절약하기 위한 방법 또한 고민하고 있다. 보통 자판기에는 상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진열대 부분에 전구가 들어가는데, 2009년 직원들에게 주문이행센터를 전부 돌아다니며 이를 제거토록 한 일화도 유명하다.  

인터비즈 임현석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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