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1호점이 압구정에 있었던 이유?

조회수 2018. 8. 24. 09: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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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 우유 진열대 길이를 측정하는 맥도날드 직원.

동네를 다니며 세탁소에 걸린 의복 종류를 분석하는 스타벅스 직원. 두 사람 사이의 공통점은?

연관성 없어 보이는 두 행동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출점’ 준비다. 맥도날드는 우유 진열대 길이를 통해 해당 지역 어린이 수를 파악하고, 스타벅스는 세탁물 가운데 셔츠류 비율을 보며 출퇴근 사무직 종사자가 얼마나 거주하는지를 판별해 매장 개점 여부를 결정하는 데 활용한다.

제품 품질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소비자가 매장에 가야만 소비가 이뤄지는 외식 프랜차이즈의 경우 매장 입지가 성패에 큰 영향을 끼친다. 입지 선정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나 1호점이라면 향후 사업 확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지금은 발에 차이게 많아진 글로벌 외식 프랜차이즈들은 한국에 상륙해 어디에 첫발을 내디뎠을까.  

80년대, 햄버거를 먹으려면 종로에 가야한다

1980년대 햄버거는 청소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84년 7월 9일자 동아일보엔 청소년들 입맛 변화에 놀란 기성세대 이야기가 나온다. 강남구 K중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묻자 대부분이 ‘햄버거’를 선택한 것. 그는 자신이 중학생일 때는 ‘자장면’이 가장 인기였는데, 자장면을 택한 학생이 고작 2명 뿐이었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출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캡처
(극 중 덕선과 친구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1988년 한국에 처음 생긴 압구정 맥도날드로 향했다)

변화의 시작은 79년이었다. 그 해 대규모 기업형 프랜차이즈의 시초로 볼 수 있는 롯데리아가 서울 소공동에 1호점을 냈다.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개점에 맞물려 일본 롯데리아와 합작한 롯데리아를 선보인 것이다. 72년부터 미국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업체들과 경쟁하며 쌓은 일본 롯데리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롯데리아는 점차 지점을 확장해나갔다.  


이후 버거킹 등 다양한 미국 버거 프랜차이즈들이 물밀 듯 밀려 들어왔다. 버거킹과 KFC는 84년 각각 종로 3가와 종로2가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가장 주요 상권이었던 종로에 1호점을 낸 것이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웬디스와 하디스도 각각 84년 을지로 2가, 90년 종로 1가에 1호점을 열었다. 

출처: 동아일보DB
출처: 맥도날드 홈페이지
(88년 압구정점 첫 개장 풍경)

88년 느지막이 들어온 업계 1위 맥도날드는 강북을 선택했던 다른 프랜차이즈들과 달리 가장 트렌디한 장소로 떠오른 압구정동(지번 주소 상으론 신사동 661번지)에 1호점을 열었다. 젊은이들의 취향을 공략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젊은이들의 해방구’ 또는 ‘강남의 명동’이라 불렸던 압구정은 도전해볼 만한 장소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태원 역시 1호점들의 단골 동네였다. 다양한 문화에 익숙한 곳이기에 새로운 음식에 대한 수용도가 높으리라 파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발을 들인 것은 피자헛(85년)이었다. 이 외에 던킨도너츠(94년) 스테프핫도그(2002년) 타코벨(2010년) 등이 이태원에 둥지를 틀었다. 재미있는 건 한국에서 철수한 뒤 재진입하며 이태원을 택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던킨도너츠는 10여 년 전인 83년 퇴계로2가에 이미 지점을 냈었다. 91년 강남 1호점을 냈던 멕시코 음식점 타코벨 역시 한국시장에서 물러났다 2010년 재진출하며 이태원에 자리를 잡았다. 2008년 이태원에 1호점을 낸 하드록카페 또한 96년 싱가포르 자본이 한국에 들여와 청담동에 지점을 낸 바 있다.  

새로운 버거 프랜차이즈의 화려한 등장

젊은층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승승장구하던 버거·피자 프랜차이즈는 내리막길을 걷고있다. 외식 프랜차이즈가 다양해지고 ‘패스트푸드=정크푸드’ 인식이 강해지면서 실적이 악화됐다. 한국 시장을 떠나진 않았지만 버거 프랜차이즈들은 영업권을 매각하고 지점을 감축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한국피자헛 지분을 소유한 미국 염(Yum!) 브랜드는 2017년 지분 100%를 (주)오차드원에 넘겼고, KFC는 실적 급감에 2014년 CVC캐피탈파트너로 매각됐다 2017년 초 KG그룹에 또다시 팔렸다.  


맥도날드 1호점인 압구정점은 2007년 임대료 등의 문제로 결국 문을 닫았다. 그 외에도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신촌역점을 비롯 사당점, 당산점 등 20여개 매장이 올해 폐점했다. 2년 전 매각을 시도한 이래 한국맥도날드는 끊임 없이 매각설에 시달리고 있다. 

출처: 쉐이크쉑 인스타그램

하지만 버거 시대가 끝난 건 아니었다. 저물어가는 듯 보였던 버거 시장에 신흥강자가 등장했다. 프리미엄 수제버거를 표방한 쉐이크쉑 일명 ‘쉑쉑버거’가 2016년 7월 강남에 1호점을 연 것이다. 뉴욕 여행 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히며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곳이라 이미 개점 소식이 들릴 때부터 반응이 뜨거웠다. 개점 날엔 버거를 맛보려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장사진을 이루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폭염 속에서도 평균 2시간 대기 시간을 기꺼이 견뎠다.  


항생제와 호르몬제를 쓰지 않은 고기 패티를 사용한다는 점과 맛 그리고 SNS에서 화제가 됐던 비주얼로 쉑쉑버거는 단숨에 대중의 시각과 입맛을 동시에 사로잡았다. 

커피전문점 태동지는 대학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커피 한 잔 들고 걷는 사람들 모습이 어느새 거리의 풍경이 됐다)

80년대 햄버거가 프랜차이즈 시장을 뒤흔들었다면, 2000년대 이후엔 커피가 판도를 주도해나가고 있다.


시작은 1999년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낸 스타벅스였다. 신세계가 들여온 스타벅스 성공 조짐을 보이자 롯데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 최대 커피 전문업체 자바와 손을 잡고 롯데백화점 강남점에 ‘자바’ 1호점을 선보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커피빈이 청담점에 자리 잡은 것도 이 즈음인 2001년이다. SPC그룹은 2002년 이탈리아 브랜드 파스쿠찌를 들여와 홍대 앞에 1호점을 냈다.   


‘커피전쟁’은 햄버거 때와 달리 글로벌 프랜차이즈보단 한국에서 자생한 토종 브랜드들의 격전 양상을 보였다. 98년 강남역에 생긴 할리스는 국내 1호 브랜드 커피 전문점으로 꼽힌다. 신세계 근무 당시 스타벅스 한국 론칭팀에서 일하며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고 강훈 대표가 프로젝트가 무기한 연기되자 퇴사해 카페를 낸 것이다. 이후 1999년 탐앤탐스(압구정), 2001년 이디야(중앙대), 2002년 CJ푸드빌의 투썸플레이스(신촌) 등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롯데는 2006년 자바 커피를 엔젤리너스로 바꾸며 이듬해부터 가맹점 모집에 들어갔다. 할리스를 매각한 고 강훈 대표는 다시 창업에 나서 2008년 카페베네(천호동)를 세웠다.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커피 1호점은 유독 대학가에 많이 자리하고 있다. 새로운 커피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젊은층이 적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전문점들이 들어서기 전까지 커피는 자리에 앉아 마시는 것이었다. 지금은 당연해진 테이크 아웃(take out)이 이 시기부터 활성화 됐다. 이후 일회용 컵에 커피를 담아 들고 다니며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커피전문점이 거리 풍경까지 바꿔놓았다. 카페의 의미도 변했다. 음료가 아닌 공간을 사기 위해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카페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호점은 금융회사를 따라 간다?

당장 가게를 낸다고 생각해보자. 어디에 열지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사람이 많은 곳’일 것이다. 앞서 살펴본 1호점들 역시 대부분 유동인구가 많은 종로와 강남 등지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이 숨어있다.  


외식산업 프랜차이즈 1호점 입지를 분석한 논문(2009년 발표)을 보면, 1호점 위치와 상관관계가 가장 큰 변수는 ‘금융기관 수’인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 지역 외식 프랜차이즈 가운데 선호도에 따라 90개를 선정해 상관분석과 다중회귀분석을 거친 결과다. 실제 1호점은 금융기관이 많이 있는 강남구와 중구에 많이 위치하고 있다. 


1호점들은 비슷한 지역에 모여 있는데, 그중에서도 강남구, 서대문구, 종로구, 중구 등 4개구에 집중돼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25개구 가운에 11개구에 1호점이 있고, 그 중 79%인 71개가 앞서 언급한 4개구에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강남구엔 주로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한식 및 퓨전 음식점 1호점이, 종로구 종로 2가엔 패스트푸드 1호점,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과 신촌 일대에는 커피전문점과 아이스크림 전문점 1호점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에 있는 스타벅스 입지를 살펴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서울 내 255개 스타벅스 위치(2013년 5월 기준. 2018년 현재 467개)는 서울 내 약 2600개 은행점포 위치와 유사성을 보인다는 것.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133호에 기고한 글에서 송규봉 GIS United 대표는 이는 “시중은행이 목표한 고객과 스타벅스가 목표한 표적 고객이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출처: DBR 133호
(서울지역 스타벅스와 은행 지점 분포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 글은 시중은행이 점포를 개설할 때 금융거래가 활발한 기업, 상가의 위치와 유동인구 등을 면밀히 살펴 투자 대비 효과가 얼마나 될 것인가를 철저히 심사한다고 기술한다. 은행이 돈 흐르는 곳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다. 상장기업과 그 계열사가 모여있는 지역은 당연히 은행 지점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회사 주변에 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점과 상가가 활성화되고, 출퇴근과 외부 미팅 등으로 유동객 흐름 또한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객이 필요한 건 스타벅스도 마찬가지다. 북미지역 스타벅스는 '20~45세 고소득 도시 전문직 근로자'를 표적시장으로 삼고 있다. 


매장 입지 선정 요인이 하나일 수만은 없다. 때로는 외딴 곳에 위치한 가게가 인기를 얻으면서 거리 전체를 유명하게 만들기도 한다. 독특한 콘셉트로 승부해 유동인구를 창출해내는 것 역시 하나의 방법이다. 정해진 답은 없지만 분명한 건 입지 선정 시 나름의 기준에 따른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스타벅스 확장 계획 설계자로 스타벅스 성장에 기여한 아서 루빈펠드는 이렇게 말했다. "첫 데이트를 하듯 입지를 조사해야 한다.” 

*참고

이영희, 2009, 서울지역 외식산업 프랜차이즈1 호점의 공간입지분석


송규봉, 2013, 스타벅스 서울매장 지도, 상장사 본사 지도와 똑같은 이유(DBR 133호) 

인터비즈 박은애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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