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아는 초록색 '헌옷 수거함'의 비밀

조회수 2018. 8. 17. 19:06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초록색의 투박한 의류수거함. 주택가 도로 또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헌 옷을 수거한다는 말만 보고 막연히 '기부가 되는 거구나' 싶어 좋은 마음으로 안 입는 옷가지들을 넣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는 사람들은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는 비밀이 있다.


바로 의류수거함으로 보내지는 옷이 실제로는 불우이웃이 아닌 개인사업자들의 지갑을 두둑이 하는 데에 쓰인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의류수거함은 모은 헌 옷을 팔아 수익을 얻는 개인 사업자들이 운영하고 있다.  

출처: 플리커
(기부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개인사업자의 배를 채워주고 있는 헌옷수거함. 장애인협회같은 복지시설 명칭까지 적혀있는 수거함도 많아 당연히 좋은 곳에 쓰이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처음 의류수거함이 등장한 것은 1998년 외환위기 때이다. 헌옷을 모아 불우한 이웃을 돕자는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면서 쓰레기 더미에 둘러싸인 도심의 흉물이 되거나, 복지단체의 것인 마냥 헌 옷을 모아 파는 개인사업자의 돈벌이 용이 됐다.


2016년 3월 국민권익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의류수거함 10만 5천 개 중 약 72%는 개인이나 민간단체가 지자체 허가 없이 무단 설치하거나 운영 중이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중고 의류는 지자체 내지는 지자체로부터 위탁받은 폐기물처리업자만 수거할 수 있다. 각 기초지자체 별로 1) 기능장애인협회나 지체장애인협회 등의 복지 단체 2) 재활용의류협동조합 3) 보훈단체 등과 협약을 맺어 관리하고 있으나 이들 업체 상당수는 생활폐기물 수거 업체와는 거리가 멀다. 지자체의 눈을 피해 복지기관의 이름만 딴 불법 의류수거함이 상당수다. 아파트 단지의 경우 지자체의 관할에 속해있지 않아 부녀회나 관리사무소와 협의해 개인 업체가 의류를 수거해간다.  

출처: 송파구 제공
(지난해 도시 경관을 개선하기 위해 낡은 의류수거함에 대한 정비를 진행한 송파구)

이에 따라 지자체별로 의류수거함 관리를 강화해 나가는 추세다. 송파구의 경우 781개의 의류수거함을 2개의 개인 업체와 협약해 관리 중이며, 매년 전수조사를 거쳐 불법적으로 세워진 의류수거함을 철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초지자체별로 현황이 다른 데다가 이를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은 갖춰지지 않아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직접 헌 옷 판매하는 사람들도 늘어나...

헌옷 수거함이 본래 취지인 불우이웃 지원이 아니라 영리목적으로 쓰인다는 사실이 차츰 알려지면서 당초 취지에 맞게 헌옷을 직접 비영리단체나 복지단체에 바로 기부하거나, 정당한 가격을 받고 중간 판매업자에게 판매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직접 수거하는 서비스 사업체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최대 중고물품 거래사이트 중고나라도 모바일 중고수거 앱 '주마'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영역을 차츰 늘려가고 있다. 지난 해 8월 출시한 중고나라 주마는 의류부터 가전, 중고폰 매입, 이사 서비스까지 운영 중이며, 이 중 중고의류와 책 거래량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중고나라 주마 담당자는 "현재 헌옷의 경우 kg당 250원에 매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처: 구글플레이
(헌옷삼촌)

수거함 속 헌 옷은 멀리멀리

수거된 의류의 최종 도착지는 어디일까? 여러 경로를 통해 수거된 헌 의류는 지역에 있는 재활용 업체나 재활용 조합에 모인다. 그 후 옷 상태가 좋은 경우에는 국내 구제의류업자에게, 나머지는 수출돼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지로 판매되거나 아예 폐기된다.

출처: KOTRA 아비장 무역관
(코트디부아르 길거리에서 한국어가 적혀있는 옷을 입은 사람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헌 옷은 한국의 인기있는 수출 품목이기도 하다. 겨울 옷은 몽골, 여름옷 및 아동복은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의 나라에서 인기다. 하지만 중국에서 중고 의류가 대량으로 쏟아지면서 가격 경쟁력에 밀리기 시작했다. 몇 년 전까지 1kg당 800원 대 였던 중고 의류 수출가가 지난해 기준으로 절반 이하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중고물품을 구입하는 업체 보다는 의류수거함을 통해 사실상 거저 중고 의류를 회수하는 쪽만 이득을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편 주로 아프리카 등 신흥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중고 의류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가나에 중고의류 등을 수출해 벌어들인 돈은 1530만 달러(약 165억 원)에 이른다. 지난 3년간 1200~1500만 달러(역 130억~152억 원)였던 교역 수준보다 증가했다. 아프리카 서부 연안의 코티드부아르의 경우 빈곤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중고의류가 모든 계층이 이용하는 대중적인 시장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국내 주요 중고의류 수출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매출 물량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판매 단가가 낮아져 지난해 매출액은 재작년보다 18%정도 감소했다"며 "그럼에도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가나 등 기존 거래하던 시장 수요가 다시 성장하는 추세라 올해 매출액은 증가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관련 시장이 전체적으로 성장할수록 의류수거함의 개인 소유 이슈는 문제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불우이웃을 돕겠다는 당초 취지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제대로 된 산업을 육성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KOTRA 해외시장뉴스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인터비즈 홍예화
inter-biz@naver.com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