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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놀이터를 위험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

인터비즈 작성일자2018.08.16. | 41,691  view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어린이들이 노는 놀이터를 적당히 위험하게 만드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영국의 일부 놀이터에서는 플라스틱 놀이기구들을 들어내고 대신 각목과 벽돌, 널빤지, 타이어로 만든 그네, 모래사장, 나무 그루터기를 들여놨다.

source : 게티이미지뱅크

아이들은 망치와 톱으로 뭘 만들다가 지겨우면 불을 피울 수도 있다. 물론 관리감독은 엄격하게 한다. ‘조절된 위험’에 아이들을 노출하는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영국이 어린이들의 근성(grit)과 회복력(resilience)을 키우기 위해 놀이터에 위험 요소를 도입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연간 100만 명이 넘게 찾는 런던 켄싱턴 가든에 있는 ‘다이애나 공주 놀이터(Princess Diana Playground)’의 플래카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있다. “조절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은 바깥세상에서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보다는 위험에 대한 판단력을 기를 수 있도록 조절된 놀이 환경에서 의도적으로 위험 요소가 제공됩니다.”  

(켄싱턴 가든 놀이터)

source : 켄싱턴 가든

수십 년 동안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놀게 할까를 고민하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방향을 급선회한 이유는 어린이 과보호가 너무 지나치다는 걸 인식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9살 아이 중 학교에 혼자 등교하는 아이가 1971년에는 85%였으나 1990년에는 이 비율이 25%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적당한 위험이 아이들의 건강한 발달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요즘의 부모들은 놀이터라기보다는 ‘놀이 감옥’에 가까운 곳에 아이를 넣어 놓고 옆에 앉아서 노심초사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아이에게 절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함께.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완벽한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믿음은 완전무결하게 완벽한 아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과 다를 바 없는, 위험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source : 게티이미지뱅크

놀이터에 위험 요소를 도입할 수 있는 건 아이들이 어릴 때 제한적인 위험에 노출시켜주는 것이 앞으로 살아나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사회적 믿음과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위험 요소를 도입한 놀이터를 운영하는 영국 슈베리니스(Shoeburyness)에 있는 리치몬드 애비뉴 초등학교(Primary school)의 교장 선생님(Head Teacher) 데비 휴즈는 말한다.


“과거의 학교는 규칙을 잘 지키고 하라는 대로 아이들을 길러내도록 만들어졌어요. 하지만 미래에는 하라는 대로만 하고 규칙만 잘 지켜가지고는 성공하기 힘들어요. 다들 세상에 나가서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지요. 하지만 어릴 때 위험을 보여주고 감수하도록 가르치지 않으면 커서 위험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source : 게티이미지뱅크

과보호는 실패를 감당하지 못하는 아이를 길러낸다. 실패를 감당하지 못하는 개인으로 이뤄진 사회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회가 된다. 그리고 결국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형성된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실패하는 걸 견디지 못하는 사회적인 압박이 결국 아이들을 온실 속의 화초로 만든다.

(일본 도쿄 후지 유치원을 세운 건축가 테즈카 타카하루는 아이들이 모험적인 환경에 익숙해지게끔 놀이터를 설계해 주목을 받았다)

source : 테즈카 아키텍트

하지만 실패와 사고를 철저하게 기억하되 용인을 하는 분위기는 사회 전반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태만 또는 부주의, 불성실에 의한 실패까지 용서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의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와 로버트 서튼(Robert Sutton) 교수는 직원들이 잘 해보려 하다가 일어난 실패나 실수는 용서하되 그 원인과 과정은 기억해서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패는 ‘용서하되 기억해야 한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source : IBM

1930년대에 IBM의 한 임원이 모험적인 일을 벌이다가 회사에 1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혔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임원은 사표를 들고 당시 IBM 회장이었던 토머스 왓슨(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컴퓨터의 이름 왓슨은 이 회장의 이름을 딴 것이다.)을 찾아갔다.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나겠습니다.” 왓슨 회장은 임원에게 말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게. 회사는 지금 당신을 교육시키는 데 10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이네. 가긴 어딜 가나.”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깨달음을 얻는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조금 다친 아이도 깨달음을 얻는다. 아이들이 손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하려고 과보호를 하는 건 반대로 생각하면 위험에 대처하는 아이들의 기본적인 지능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젠 우리도 뿌리 깊은 과보호에서 벗어나 조절된 위험에 아이들을 내놓아야 할 때가 된 건 아닐까. 

필자 김선우

약력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문지리학과 졸업

- 워싱턴대(시애틀) 경영학 석사

-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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