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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비즈

"대규모 대졸 공채"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일까?

이 독특한 제도를 유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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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빵집이 있다. 인력이 부족해 조리사와 매대 응대 직원, 청소부를 함께 뽑는다고 가정해보자. 제빵사를 뽑는다면 관련 조리자격증을 따지는 것이 타당하다. 매대 직원이라면 싹싹하게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적격이다. 청소부는 체력과 성실성 여부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채용은 그 자리에 필요한 역량을 기준으로, 즉 직무역량을 바탕으로 뽑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이 빵집은 지원자를 한날 한시에 불러 모은 뒤 IQ 테스트 비슷한 시험을 치르게 하고, 합격자의 역할도 성적에 따라 결정한다. 시험 결과에 따라 손님 응대를 꿈꿨던 사람이 졸지에 제빵사로 채용될 수도 있다. 당연히 이런 인력이 채용 직후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순 없다. 회사가 이들에게 제빵사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가르친다.

(왜 그렇게 뽑나요?)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제빵사를 이처럼 뽑는다는 게 비효율적으로 느껴지지만 이와 같은 채용 방식은 특정 시기엔 효율적이다. 사업을 다각화하고, 회사도 빠르게 성장하는 고도성장기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채용방식을 통해 선발된 제빵사는 치열한 경쟁 끝에 승자가 된 것이기에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높고 반드시 제빵사(특정 직무)만을 고집하지도 않아서 훗날 관리자로 활용하기도 좋다. 갑자기 어느날 아이스크림을 만들라고 하면 군말없이 그리할 가능성이 높다.

터무니없는 제도라는 생각이 드는가? 사실 이와 같은 채용 제도는 한국에 세계 최대의 반도체 회사와, 북미와 유럽시장서 선전하는 굴지의 자동차 회사를 만든 근간이다.

대규모 대졸 공채는 한국적인 제도..해외는 어떻게?

이쯤하면 눈치 챘겠지만 한국서 50년 넘게 이어져오면서 가장 유력한 채용과정으로 일컬어지는 그룹사 중심의 대규모 대졸 공채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다. 블라인드 채용, 무스펙 전형 등 서류전형 과정에서 일부 변화가 있었지만 근간이 되는 공채라는 시스템 자체는 바뀐 적이 없다. 이와 같은 채용방식은 다른 나라의 채용방식과 비교할 경우 그 특이성이 두드러진다.

(2017년 CJ그룹 정기 공채 시험날)

출처동아일보DB

대한상공회의소가 펴낸 '한미일독 기업의 채용시스템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으로 보더라도 대규모 공채를 통해서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일본 채용제도와도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한국과 일본 대기업 간 공통점이라면 대기업이 대규모 신입 인력을 시험 등 공개 채용을 통해 확보한다는 점이다. 기업별로 특정한 채용시기를 정해두고 있어 이 시기에 취업활동이 이뤄진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른바 정기 공채다.

(대기업간 시험이 겹치는 날에는 이렇게 '퀵서비스'를 이용하는 수험생도 볼 수 있다)

출처동아일보DB

일본 공채와 한국 공채의 차이점도 있다. 일본 기업은 한국과 달리 대학 졸업 전에 신입 채용을 확정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두고 '내정'이라고 부른다. 대졸 보다는 재학생을 중심으로 신입 취업 시장이 형성돼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일본은 신입과 경력 채용 구분이 나눠져 있다.

반면 한국에선 대학 졸업자 중심으로 공채 시장이 형성돼 있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선 대기업 신입직원도 중견기업을 3년 정도 다니다가 도전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다. 한국에선 최근 들어 초기 경력시장과 신입 채용 시장의 구분은 점차 흐릿해지고 있다.

출처tvN

채용 시기 외에도 차이점은 있다. 경희대 김홍유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 공채는 채용일정과 정원을 그룹사 중심으로 결정하는 점이 특징"이라며 "일본은 이미 계열사 별로 채용하는 것이 일반화돼있고, 대체로 신입 모집시기도 그룹별이 아니라 각 업계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계열사의 현업부서서 필요한 인력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한 뒤, 인력 채용 계획을 세운다는 뜻이다.

한국 대기업은 다른가? 그렇다. 기본적으로 그룹 인사팀에서 한해 그룹사 전체 채용인원 규모를 확정한 뒤, 이를 각 계열사별로 TO를 배정하는 형태다. 한국에선 계열사 채용을 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이렇다. 채용을 주도하는 부서가 한국은 그룹사 인사팀, 일본은 현업부서로 갈린다. 현업부서 쪽이 직무역량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다.게다가 일본은 완전고용에 도달하면서 공채라는 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이 강하게 제기되는 실정이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한국 대기업 또한 계열사별로 공채 시험을 치르는 곳이 늘고 있긴 하다. 삼성그룹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열사별 채용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선 체감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지금도 인적성검사를 특정일 하루에 계열사별 지원자가 동시에 치르는 등, 그룹사가 채용 스케줄을 정해주는 등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계열사 채용 일정이라고 하더라도 한 번에 같은 시험으로 치르고 인사 일정도 그룹사 인사관리에 의해 일괄적으로 운영된다. 입사 지원자는 3~4월 공채 일정에 맞춰 그룹사별로 지원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대기업들은 직무별 지원도 열어두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는 해외서 말하는 직무가 아니라 더 큰 범주인 직군 단위로 연구개발, 기술직, 경영지원, 일반직 등으로 모집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지나치게 많은 업무를 포괄하는 범주다. 당연히 그 안에서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입사 전에는 여전히 알기 어렵다.

한국식 공채의 특이성을 정확히 알기 위해선 해외와 비교해야 한다. 한국식 공채는 일본과 비교하면 그래도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으로 더 나아가면 아주 특이한 사례가 된다. 그룹 차원에서 주도하는 정기 신입 대졸 공채를 찾아보기 어렵다.

서구권은 직무기술서에 의한 수시채용이 일반화

서구권의 경우, 철저히 인력이 필요한 해당 부서(Line of business)에서 필요 인력에 대한 상세한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를 기준으로 수시 채용을 진행한다. 사람을 구하는 시기도 기존 인력이 빠져나갔을 경우다. 한국 공채 시스템 하에서 직무는 마케팅/홍보처럼 범주 정도로 다뤄지거나, 그에 대한 설명 조차도 일반적인 경우가 많은 것과 대조적이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국내서도 외국계 회사의 채용 프로세스를 떠올리면 된다. 채용 비용이 낮고 전문가를 확보하기 유리한 형태지만 한편으론 대규모 인력을 운용하거나 조직에 대한 충성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경력직 이직을 통해서 몸값을 높이고 대기업도 필요 인력을 채우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잡스가 18세이던 1973년 작성한 자필 이력서. 해외에서는 이력서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업무 범위만 적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출처RR옥션

외국계 금융사인 J.P.모간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김나이 커리어 액셀러레이터는 "서구권에선 말 그대로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직무 역량을 갖춘 풀을 구성하고 인재를 선별하는 데 집중한다"고 한국과의 취업 프로세스 차이를 설명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채용 과정에서 2차례에 걸쳐 실무, 임원 면접을 진행하고, 일정 기간동안의 신입사원 교육(주로 조직의 가치관을 '함께' 하기 위한 합숙)을 진행하고 직원들을 부서마다 흩뿌려 길러낸다. 반면 서구권 기업은 상세한 직무 기술서에 따라 처음부터 성과를 낼 수 있는 인재를 선별하는 데 집중한다. 인턴이나 이전 회사 등 경력을 중시하는 문화다. 필기 시험이 없는 대신 인터뷰가3~5차례씩 이뤄지는 점이 특징이다.

대한상공회소에 따르면 한국과 서구권은 노동시장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다양성이 높은 사회일수록 구성원들을 하나의 조직과 공통된 목적을 주입하기 위해선 객관적이고 일관된 기준이 요구된다. 서구권에서 직무를 중심으로 채용이 이뤄지는 배경이다.

한국에서 공채 제도가 발전한 이유

전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공채 시스템은 독특한 형태로 남아 있다. 애초에 공채라는 시스템 자체가 일본에서 처음 시작한 것이다.


당초엔 극심한 대졸자 취업난 때문에 정기 공채가 시행됐다. 1920년대 재학생부터 졸업생까지 지나치게 많은 이들이 수시로 채용문의를 넣다보니 채용에 대한 규칙을 세우자는 논의에서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채용공고를 내지 않고 채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공고문을 내지 않으니 구속력이 없었다. 경영상황에 따라 일방적으로 합격자의 채용을 취소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이와 같은 혼란 때문에 1928년 일본의 대기업 은행을 중심으로 대졸자는 공고를 통해 시기를 두고 채용한다는 합의가 탄생한다. 이른바 취직협정이다. 이후 일본이 고도성장기를 맞이하면서 공채는 대학 졸업생들을 졸업 전에 선점하기 위한 제도로 바뀐다. 최대한 많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로 운영된 것이다.

한국 공채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채를 시행한 곳은 1957년 삼성물산공사였다. 27명 모집하는데 모인 지원자만 1200명에 달했다. 처음엔 인력을 공정하게 채용한다는 취지였다. 한국서도 이내 기업 규모가 커지고 계열사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직무와 새로운 업종에 투입할 만한 인재를 다수 확보하는 게 중요해졌다. 필기시험과 면접을 통해서 다수 확보하는 지금과 같은 공채 제도가 확립된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제성장 초기엔 품질보다 개발도상국 특유의 낮은 제품 가격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택했다. 저임금 인력의 투입을 늘리는 것만으로도 경제 성장이 가능했던 만큼 기업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성실한 인재를 다수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 워낙 새로운 사업 수요가 늘고 계열사가 빨리 늘어나다 보니 심층적인 관찰과 평가를 통한 직무 배정 보다는 빠르게 인력을 부서로 옮길 수 있는, 유연한 인력관리가 더 중요했다.

(2017년 삼성 직무적성검사를 마치고 고사장을 빠져나오는 취업 준비생들)

출처동아일보DB

그렇다. 한국의 대기업 그룹사 정기 공채는 기본적으로 지원자의 잠재력을 판단하고 각 직무별로 육성시키고자 설계된 제도다. 앞에서도 설명했다시피 특정 직무에 적합한 역량과 적성 요소가 아니라 어디서든 두루 쓰일 수 있는 보편 역량을 기준으로 선발한다. 한국 대기업의 인적성검사는 흔히 논리력과 추리력, 수학연산 능력 등을 따진다. 직무적성검사에 지원자들이 매달리는 이유다. 잠재력을 중요시하는 제도로, 머리가 좋거나 성실한 인재를 뽑으려다 보니 학벌이 중요하다는 논리로 흐른다. 공채 제도는 필연적으로 스펙을 부추기는 제도다.

(청년들은 '취업용 스펙'을 쌓기 위해 밤잠을 설친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잠재력을 중심으로 채용했지만 잠재력을 터트리지 못하는 경우엔 어떨까?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 인간은 어떻게 우리 회사에 들어왔지?" 


대기업조차 이와 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회사가 저 직무에 적합한 능력을 가진 인재인지를 보고 채용한 것이 아니라, 영어와 흔히 직무적성검사로 불리는 보편 역량을 보고 선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입직원이 머리가 좋은데 일은 못하는 경우는 이래서다. 개인도 불행하고, 경쟁력이 약화된 회사도 불행하다.

공채 제도의 부작용...그래도 유지되는 이유

대규모 대졸 그룹사 정기 공채 제도는 당연히 한국인에게 승자독식의 직업관을 심어줬을 뿐더러, 적성 보다는 기업 우위의 채용문화를 형성했다. 작은 기업에서 시작해 큰 기업으로 직무에 따라 옮겨가는 서구식 모델은 불가능할까? 유능한 인턴을 뽑아먹지만 말고 바로바로 채용하는 시스템(대부분의 대기업은 우수한 인턴을 바로 채용하는 것보다 공채에서 가점을 주는 형태를 선호한다)은 왜 안 될까?


(인턴 채용 과정에서 느끼는 비애와 직장인들의 애환을 다룬 TVN 드라마 미생 속 한 장면)

출처tvN

한국식 공채가 유지되는 가장 큰 원인은 '저신뢰사회'다. 쉽게 말해 청탁이 끊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거의 대부분의 회사가 정기 공채를 통해서 신입 기자를 수혈하는 중앙 언론사들이 대표적이다. 현재 한국의 주요 중앙 언론사(공중파+중앙 일간지)는 모두 상식과 작문 등 필기 시험을 포함한 공채를 통해서 신입기자를 채용한다.

(2013년 동아일보 언론사 입사 공채 시험)

출처동아일보DB

1950년대까지만 주요 언론사들은 글 잘 쓰는 이들을 찾아 특채하는 방식으로 기자를 뽑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다 보니 유력인으로부터 지인 채용 외압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결국 서울신문(1963년)에 이어 한국일보(1964년)가 수습공채를 시작했고 이내 같은 고민을 안고 있던 전 언론사로 확산된다.

먼 과거의 일만도 아니다. 최근 줄이어 파헤쳐 지고 있는 은행권 채용비리 백태는 어떤가. 이와 같은 공정성 시비가 한국사회가 과연 계열사별 직무별, 현장 중심의 인턴 전환 채용을 가로막는다. 많은 이들이 대입 과정에서 학생부 중심의 수시가 한 번 시험에 의해 당락이 좌우되는 정시에 비해 더 합리적인 제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서 적용을 확대했더니 부작용이 속출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사시 존치 논란에서 보듯 시험이 가장 공정한 제도라는 인식이 강하다.


여기에 일자리 창출에 신경쓸 수밖에 없는 정부의 입김도 공채를 유지시키는 요인이다. 정부가 일자리 확대를 요구할 때 기업 입장에선 채용 규모를 어느 정도로 유지하겠다고 밝히며 화답한다. 공채를 통한 채용 규모 유지는 그룹사 인사팀 차원의 배정과 관리 없이는 불가능하다. 잠재력을 보고 뽑는 공채는 현장 필요 인력 이상으로 채용할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대기업의 경우 공채라는 선물 보따리를 늘 쥐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공채라는 시스템이 바뀌기 쉽지 않은 이유다.

출처동아일보DB

대규모 채용을 전제로 한 공채 제도 자체를 그대로 둔 채 채용 문화의 변화도 요원하다. 공채의 근간은 스펙이다. 블라인드 채용과 탈스펙 채용은 적성과 직무 역할을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대규모 채용을 전제하는 공채와는 결이 맞지 않다. 그럼에도 각종 비리 백태 때문에 채용 시스템의 변화를 과감하게 주문할 수도 없다. 한국의 채용 제도는 딜레마에 갇혔지만 정부도 기업도, 지원자도 누구도 공채 제도를 손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선진국과 중진국을 가르는 문턱은 그 사회의 신뢰 수준이라는 지적이 뼈아프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채용 비리 문제가 이렇게 또 한국의 발목을 또 잡은 것이다.

인터비즈 임현석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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