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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경계 허무는 性 중립 비즈니스

조회수 2018. 7. 13.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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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뉴욕에 ‘세계 최초’ 타이틀을 단 가게가 문을 열었다. '플루이드 프로젝트(Phluid project)'는 세계 첫 성 중립(gender-free) 편집숍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메이시(Macy's)와 빅토리아 시크릿에서 부사장을 지내는 등 패션업계에서 25년 이상 근무한 롭 스미스(Rob Smith)가 설립한 곳이다. 이곳에선 옷을 여성용, 남성용으로 구분하지 않고 스타일에 따라서만 배치하고 있다. 롭 스미스는 "이것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혁명적 리테일 무브먼트(retail movement)”라고 자평한다.

출처: The Phluid Project


한국에선 지난달 성 중립(gender neutral) 메이크업 브랜드 라카(LAKA)가 론칭됐다. 12가지 색깔의 립스틱을 선보였는데, 남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한 제품을 남녀 모델 모두 바르고 있는 사진을 병치해 홍보함으로 ‘젠더 뉴트럴 메이크업 브랜드’임을 강조하고 있다. 전체 매출의 20~30%는 남성 구매자가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라카 홈페이지

모두의 패션, 모두의 뷰티

최근 몇 년간 패션·뷰티 업계에서 ‘성 중립’ 또는 ‘젠더리스(genderless)’가 키워드로 떠올랐다. 젠더리스는 간단히 말해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 ‘남자(또는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식의 태도를 버리는 것이 핵심이다.


밀라노 패션위크 2019 봄·여름 컬렉션에선 닥스(DAKS)가 지난 시즌에 이어 두 번째로 남녀 통합 컬렉션 패션쇼를 열었다. 구찌는 지난해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에 핑크 컬러를 전면에 내세웠고,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남성복 브랜드 준지(Juun.J)는 패션쇼에 여성 모델을 세웠다. 스파(SPA) 브랜드 자라와 H&M은 각각 '언젠더 라인(Ungendered line)'과 '데님 유나이티드(Denim united)'라는 이름으로 성별 구분 없는 의류를 선보였다. 여성은 과일향과 꽃향, 남자는 '우디'로 표현되는 나무향으로 나누어 상품을 내놓던 향수 업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조말론 등에선 남녀로 구분하지 않고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향수를 내놨다.   

출처: LF
닥스 남녀 통합 컬렉션 패션쇼

지금까지 패션/뷰티 업계에선 남녀의 구분이 엄격했다. 브랜드들은 대부분 남성 전용의 옴므 라인을 따로 운영하고, 백화점은 아예 남성복 매장과 여성복 매장을 층을 달리해 배치하고 있다. LGBT(성적소수자·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인구 증가 추세와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페미니즘 대두로 ‘여자(혹은 남자)다움’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이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민텔(Mintel)은 2018년도 뷰티 글로벌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각 브랜드가 나이, 성별, 체형에 기반한 소비자 타깃팅을 멈추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No more boys or girls

남녀 경계를 허무는 시도는 완구업계에서도 포착돼왔다. 남자아이에겐 파란색 그리고 자동차와 로봇을, 여자아이에겐 분홍색과 인형을 주는 게 당연시되어 온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조금씩 변화가 일고 있다. 아마존은 남아 완구와 여아 완구 대신 아동완구로 장난감 카테고리를 통합했고, 미국 유통업체 타깃(Target)도 완구 코너에 남아용 또는 여아용 표시를 하지 않는다. 여자아이들 중에도 레고와 로봇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고 남자아이들 중 겨울 왕국 엘사 등 공주 인형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는데 장난감에 '여아' '남아' 표시가 돼있어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문제 등이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고착화된 성 역할을 보여주는 장난감에도 일침이 가해졌다. 2014년 당시 7살인 샬롯은 레고 본사에 편지를 보냈다. 남자 레고는 많지만 여자는 없고, 남자는 모험을 즐기며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지만 여자는 쇼핑하고 집에서 쉬는 레고만 있다는 것. 여자 레고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녀의 지적에 놀란 레고사는 그해 여름 '여성 과학자' 시리즈를 선보였다. 스페인의 완구기업 토이 플래닛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함께 전동공구를 가지고 놀고, 아기 인형을 한 명씩 안고 있는 사진으로 광고를 내 SNS에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출처: 토이 플래닛
아이들이 함께 공구를 가지고 노는 모습으로 만든 토이 플래닛의 광고

BBC는 남아와 여아에 대해 갖고 있는 어른들의 선입견을 실험을 통해 보여줬다. 실험에선 남자아이에게 원피스와 형광 주황색 카디건을 입히고, 여자아이에게는 파란색 체크무늬 셔츠와 바지를 입힌 뒤 피실험자들이 어떻게 놓아주는지를 살펴보았다. 피실험자들은 첫 번째 아이에게는 인형을 가지고 놀아주었고, 두 번째 아이에겐 자동차와 블록을 건넸다. 후에 실제 아이의 성별과 이름을 알고 난 어른들은 자신들이 성별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충격에 빠졌다. 

사회 분위기 역시 젠더리스(또는 젠더 중립)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에서 일부 부모들은 아이 이름을 지을 때 여성성과 남성성을 드러내지 않는 이름을 선택하고 있다. 캐나다에선 여권 성별 표시란에 남성(M)과 여성(F) 외에 제3의 성을 뜻하는 'X' 칸이 하나 더 생겼다. 일본에선 젠더리스 교복이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지바현 가시와시의 시립 가시와노하 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바지와 치마, 넥타이와 리본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해 입도록 했다. 남학생은 바지와 넥타이, 여학생은 치마와 리본이라는 공식을 깬 것. 성소수자 학생들을 배려한 조치이나 추운 겨울 치마만 입어야 했던 여학생들도 바지를 입을 수 있어 불편함을 덜게 됐다. 

출처: 학교 홈페이지
일본 치바현 가시와노하 중학교가 도입한 젠더리스 교복

일각에선 여전히 젠더리스에 대해 불편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LGBT를 권장한다는 극단적인 의견도 존재한다. 젠더리스 또는 젠더 중립 흐름이 앞으로 이어져 큰 흐름에 변화를 가져올지, 반짝 유행에 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터비즈 박은애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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