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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품절에 판매중지까지..日위스키, 세계 휩쓴 비결

조회수 2018. 7. 7.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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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인기여도 골치다. 일본의 대표적인 주류업체 산토리가 자사 일부 유명 위스키 제품들이 너무 잘 팔린다는 이유로 판매를 중지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산토리는 자사 위스키 ‘히비키 17년’과 ‘하쿠슈 12년’을 판매중지할 예정이다.


잘 팔리는 제품인데 왜 판매를 중지할까? 해당 브랜드의 판매량이 최근 10년간 2배나 늘어나면서 원액이 말라갈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제품의 품질을 유지하고 원액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린 과감한 결단이다. 재고상황을 보고 판매를 순차적으로 중단하는데 6~8월 중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판매 시기는 미정이다. 잘 나갈수록 품질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는 일본 주류 기업의 장인정신이 반영된 결정이다.

출처: 산토리주류
일본 블랜디드 위스키의 대표주자인 히비키 17년산.

전세계 위스키 시장은 그야말로 일본 전성시대다. 한때 아류로 여겨지던 일본 위스키는 지금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 위스키는 국제품평회를 휩쓸고 경매에도 낙찰가를 경신중이다. 올해 산토리의 위스키 ‘야마자키 50년’은 홍콩에서 1병에 3250만 엔(약 3억2000만 원)에 경매 낙찰됐다. 산토리의 라이벌인 일본 니카 위스키 '다케쓰루 17년산 퓨어몰트'도 2010년대 들어 국제 위스키 품평회에서 최고상을 연달아 따면서 화제가 됐다. 쟁쟁한 스코틀랜드산 스카치 위스키들을 밀어내고 얻은 성과다.


일본이 위스키 산업을 키워온 역사를 살펴보면 제품과 품질에 집착하는 특유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일본 주류산업이 높디 높은 위스키 제조 진입장벽을 넘어 원조격인 스코틀랜드산 스카치 위스키와 경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일본 위스키의 양대 축...전통 스코틀랜드식 니카, 일본의 풍미 산토리

위스키는 원재료인 보리의 품질은 물론이고 발아와 당분 용해 과정, 발효에서 증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전세계적으로 이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 자체가 손에 꼽힌다. 기초 시설 설비를 갖추고 브랜드 가치에도 영향이 큰 만큼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일본은 서구권과 달리 위스키와의 교류 접점도 크지 않았다. 실제로 일본에서 본격적인 위스키 생산이 시작된 시기는 1920년대로,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정통 스카치 위스키와 비교하기엔 역사가 짧다. 일본 위스키를 오늘날의 위상으로 끌어올린 건 장인 수준의 집요함으로 위스키 생산에 도전한 기업인들 덕택이었다.   

출처: 니카위스키, 산토리주류
일본 위스키의 양대 대부인 니카위스키의 다케쓰루(왼쪽)와 산토리주류의 토리이 신지로

그 기업인이 바로 산토리 창업자인 토리이 신지로(1879~1962)와 니카위스키를 세운 다케쓰루 마사타카(1894~1979)다.


산토리 창업자 토리이 신지로는 환전상의 아들로 14살 때부터 상인 수업을 받았다. 7년간 견습도제를 거쳐 처음 시작한 사업은 수입 잡화점. 당시 서양술을 취급했는데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포도주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그가 주류 사업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건 뛰어난 후각을 가지고 술의 풍미를 워낙 잘 감별한 덕분이었다. 오죽했음 별명이 오사카의 코. 직접 제작한 '붉은 구슬(적옥 赤玉 아카다마)'라는 이름의 와인은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성공이 오늘날의 산토리의 주춧돌을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토리(Suntory)'라는 기업명도 붉은 구슬의 이미지를 가진 태양(Sun)에 자신의 성을 합친 것이다. 

출처: 산토리
산토리 주류 로고. 한국에선 프리미엄몰츠를 비롯한 맥주 제품을 통해 더 유명하다.

비록 와인으로 승승장구했으나 토리이는 술의 최고봉은 위스키라고 생각했다. 그는 돌연 1923년 들어서 위스키 산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했다. 위스키 사업 진출 의사를 밝혔을 때 주변에선 "무슨 소리냐"며 거세게 반대했다. 위스키 생산시설을 짓기 위해선 창고와 증류소 건설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할 뿐더러 생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령 투자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저 스코틀랜드산 스카치 위스키의 아류작으로 여겨질 테니 성공할 가능성도 낮아 보였다. 결정적으로 스코틀랜드 식으로 위스키를 생산해야 하는데, 현지 증류소에서 철저하게 보호하는 기술이어서 이를 전수받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출처: 산토리
일본 교토에 위치한 산토리 야마자키 증류소

그럼에도 그는 사업을 강행하고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침 공교롭게도 스코틀랜드에서 정통 위스키 제조법을 배운 인물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유일하게 스코틀랜드식 위스키 제조법을 배워온 거물 기술자 다케쓰루 마사타카가 산토리에 합류한 것이다. 

일본 위스키 역사를 바꾼 운명적인 만남

일본 히로시마에서 사케를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난 다케쓰루는 오사카대 양조과를 나와 한 주류 회사에 취직한다. 당시 이 회사는 위스키 판매기술을 배우기 위해선 연수가 필수라는 판단을 내리고 1918년 다케쓰루를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보낸다. 24살 청년 다케쓰루는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대에서 유기화학을 공부했고, 주변 양조장 견학을 통해 위스키 기술을 배웠다. 당시 스코틀랜드 양조장은 이 동양인의 견학을 불허했으나, 그가 끈질기게 찾아오자 견학을 제한적으로 허락한다. 스카치 위스키 글렛리벳을 만들던 양조장이었다.


다케쓰루는 당시 만년필 하나만 들고 증류소와 관련 장비들을 스케치하고 기술 노하우를 들을 때마다 메모했다. 훗날 영국 부총리가 "만년필 한 자루로 우리 기술을 훔쳐갔다"고 회고한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다. 

출처: 니카위스키 홈페이지
다케쓰루와 그의 아내 리타. 스코틀랜드인과 결혼해 일본에서 위스키 사업을 함께 이끈 스토리는 일본에선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케쓰루가 2년간 공부를 거쳐 일본으로 돌아왔을 땐 당초 유학을 배려했던 회사는 망해버린 상황. 산토리의 토리이는 다케쓰루를 당시 대졸자 연봉에 10배에 달하는 돈을 주고 영입했다. 조건은 10년 근속이었다. 다케쓰루에게 위스키 제조와 관련해 전권을 맡겼다. 일본에서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수완좋은 사업가와 기술 명인의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이들은 일본 교토 인근 야마자키라는 곳에서 증류소를 세우고 6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위스키 하나만을 위해 시간을 다 바쳤다. 야마자카 증류소엔 보리가 들어가지만 나오는 물건은 없어 괴물이 사는 곳이라는 괴담까지도 돌 정도였다. 이들은 긴 호흡으로 위스키 제조를 이어갔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1929년 나온 일본 최초의 위스키 '시로후다'였다. 그러나 중후하고 짙은 맛의 시로후다는 당시 일본인들에게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출처: 라쿠텐
일본 산토리가 만든 첫 위스키 시로후다의 복각판

일본에서도 위스키를 팔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시 시로후다의 판매 실적을 복기하던 다케쓰루와 토리이의 결론을 달랐다. 여기서 기술을 중시하는 다케쓰루와 마케팅을 중시하는 토리이의 성향이 갈렸다. 다케쓰루는 정통 스코틀랜드의 풍미를 재현하는 데 집중하고자 증류소를 스코틀랜드와 기후와 비슷한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에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정통 스코틀랜드식 위스키를 만들면 소비자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반면 토리이는 좀 더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춰 맛이 가벼운 위스키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는다. 전국 유통에 유리한 교토 지역 증류소를 포기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정통파와 응용파의 대립이었다.


결국 다케쓰루는 처음 계약할 당시 조건이었던 10년 근속 조건을 채우자마자 독립해 홋카이도 요이치라는 지역에 회사를 차렸다. 증류소를 세우기 위해 쥬스 등을 만들어 팔면서 자본을 마련했다. 이렇게 세워진 회사가 니카위스키다. 

출처: 니카위스키

지금도 니카위스키는 스코틀랜드 보다 더 전통적인 방식으로 스카치 위스키를 재현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위스키의 원조 스코틀랜드조차 포기하기 시작한 석탄 증류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풍미가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같은 품질에 대한 고집은 고집대로 인정을 받는다. 니카위스키의 ‘다케쓰루 17년’은 최고 권위의 위스키 상 중 하나인 월드위스키어워드에서 2014~2015년 연속 블렌디드 몰트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산토리는 산토리대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숯 향기가 적고 맛이 섬세하고 부드럽다는 평가로 사랑받는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없어서 못팔 지경이다. 게다가 미국 위스키업체 '빔'까지 인수하면서 세계 3위권 증류주 제조사로 도약했다.


다케쓰루가 나간 이후로도 산토리는 1937년 가쿠빈으로 불리는 일본인 취향의 위스키 모델을 선보였다. 블렌드 위스키 중 프리미엄 모델인 히비키 등을 거쳐 일본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인 야마자키를 선보이면서 위스키 제조사로 명성을 지속적으로 쌓았다. 한때 위스키는 일본의 국민주로 등극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출처: 산토리 홈페이지
1900년대 초창기 산토리가 만들어 일본 위스키를 대표하는 제품으로 산토리 '가쿠빈' 위스키

일본 위스키 산업은 한때 장기화되는 경제 위기 속에 인기가 떨어지며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산토리가 위스키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 '하이볼'을 내놓고 젊은층을 공략하면서 부활의 발판을 닦았다. 공격적인 마케팅 때문에 하이볼은 산토리의 가쿠빈 위스키로 만든다는 인식까지 생겼을 정도다. 하이볼처럼 가벼운 술을 즐기는 사람이나 위스키의 깊은 맛을 즐기는 취향의 사람들 모두 일본 위스키를 선호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장인정신, 위스키 진입장벽 넘어서 일류상품으로

사실 산토리처럼 잘 나갈 때 판매 중단을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품질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원주가 숙성하는 데엔 3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히비키 판매 재개를 넘어 생산량 회복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사실 산토리는 위스키 원주 덕분에 오늘날의 위상을 갖출 수 있었다. 2차 대전 당시 산토리 공장이 공습으로 생산시설이 폐허가 됐으나 숙성된 위스키 원주가 남아 있던 덕분에 부활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니카위스키도 지난해 위스키 원주를 유지하기 위해 싱글몰트위스키 요이치 제품 생산을 절반으로 줄이고 저가 제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일본 삿포로 시내 명물로 유명한 니카 아저씨 전광판. 니카위스키 마스코트다.

두 거물 기업인이 나름의 전망과 기술을 가지고 위스키 산업에 뛰어들고 일가를 이룬 과정은 일본의 장인정신이 어떻게 글로벌 시장을 제패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잘 나갈 때에도 품질을 엄격하게 유지하는 자세가 오늘날 일본 위스키의 명성을 낳았다.


2015년 일본 가고시마현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국제우주스테이션에 보낼 물자를 담은 무인 보급기를 발사했는데, 산토리의 위스키 표본도 담겨 있었다고 한다. 산토리 측에서 "위스키를 우주에서 숙성하면 어떻게 맛이 달라지는지 실험해보고 싶다"고 제안해 위스키의 우주행이 성사됐다. 아직도 석탄 증류 방식을 활용하는 니카와 더불어 혀를 내두르게 하는 장인정신이 아닐 수 없다. 

인터비즈 임현석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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