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DA CUB

조회수 2018. 11. 22. 09: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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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브는 오늘도 달린다
Writer 신동헌: 칼럼니스트이자 방송인, 자동차 전문 블로거 '까남'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노동자를 위한 물건이 시대의 아이콘이 되거나 계층의 벽을 부숴버리는 것은 이 시대에도 흔한 일은 아니다. 철도 노동자들의 옷이었으나 지금은 노숙자부터 영국 왕자까지 그야말로 ‘누구나’ 입고 다니는 20세기의 아이콘 ‘데님’ 정도가 드문 예일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의미가 바뀌면서 흔한 것이 귀해지거나, 귀하던 것이 흔해지는 경우는 있어도 여전히 흔한데 귀한 대접을 받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걸 작은 오토바이가 해냈다. 1958년 발표된 혼다 커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우리에게는 시티100, 혹은 중국집 오토바이로 익숙한 이 바이크는 혼다의 창업주인 혼다 소이치로가 “국숫집 아이가 한 손에 배달통을 들고 탈 수 있는 오토바이를 만들라”고 지시하면서 개발됐다. 당시 모터사이클은 꽤 비싼 물건이었고, 당연히 부유층이 이용하는 이동 수단이었다. 자동차 대중화는 아직 꿈도 못 꾸던 시기였고, 서민은 기차나 전차 등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야 했다. 


엔진 부품을 만들던 작은 회사였던 혼다는 자전거에 엔진을 달아 팔기 시작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1949년에는 첫 번째 모터사이클을 만들었다. 그리고 10년 만에 누구나 쉽게 탈 수 있고, 저렴하지만 성능이 뛰어난 모터사이클 커브를 선보였다.

커브는 왼손으로 클러치를 조작해야 하는 기존 바이크와 달리 클러치 조작이 필요 없어 왼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혼다 소이치로의 지시대로 국숫집 배달부를 배려한 설계다. 그러나 스쿠터처럼 무단변속기가 아니기 때문에 왼발로 기어를 변경해야 하는데, 출력을 원하는 대로 뽑아낼 수 있어 작은 배기량에도 불구하고 답답하지 않다. 등장하자마자 일본 전국의 국숫집과 배달 스시집에 불티 나게 팔려나갔고 해외 시장에서도 각광을 받았다. 


커브는 특이하게도 소배기량 오토바이의 불모지인 미국에서도 사랑을 받았는데, 바퀴가 스쿠터보다 커서 승차감이 좋고 장거리 이동에도 편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국수를, 우리나라에서는 짜장면을, 미국에서는 피자를, 베트남에서는 쌀국수를 나르며 커브는 엄청나게 많이 팔려나갔다.

세계 각국에서 라이선스 생산되는 것과 무단 복제되는 것을 굳이 포함하지 않아도 엔진 달린 탈것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이다(우리나라에서도 라이선스 종료 후 무단으로 생산했다). 판매량은 지난해 1억 대를 돌파했고, 올해는 60주년을 맞아 신모델이 출시되면서 또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이 바이크가 배달부들에게만 사랑받으며 1억 대나 팔려나간 건 아니다. 오토바이로 할 수 있는 가장 폼나지 않는 일을 위해 태어났고, 지금도 그 일을 열심히 행하면서도, 이 바이크는 그와 관련이 없는 수많은 라이더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커브에 서프보드를 싣고 달리는 힙스터도 있고, 오프로드풍으로 개조해서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사람도 있으며,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거나 아이들을 등교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패션 소품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가장 각광받는 커스텀 바이크 소재인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인생이 있듯이, 커브는 그 수만큼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싣고 달린다. 커브는 번쩍번쩍하지 않아도, 완벽하게 꾸미지 않아도 멋지다. 기계에 기대어 폼을 잡아보려는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탈것이겠지만, 자신의 나아갈 길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에게 커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어른스러운 탈것이다. 역시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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