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클래식카에 열광하는가?

조회수 2018. 8. 29. 14: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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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카는 이제 희귀한 '자동차'에서 벗어나 '오브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00년이 넘은 물건이라면 그 어떤 것도 가치를 인정받게 마련인데, 하물며 100년 전 자동차는 아무나 탈 수 없었기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Writer 신동헌: 칼럼니스트이자 방송인. 자동차 전문 블로거 '까남'으로 잘 알려져 있다.

‘클래식(Classic)’이라고 하면 우리는 가장 먼저 고전 음악을 떠올린다. 혹은 음악이 아니더라도 ‘오래된 무언가’를 일컫는 말이라고 여긴다. 초등학생도 자연스레 아는 단어이기 때문에 굳이 영어 사전을 찾아본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한 번 찾아보자.


‘Classic’이라는 단어의 첫 번째 의미는 ‘일류의, 최고 수준의’다. 두 번째 의미는 ‘전형적인, 대표적인’이라는 뜻이다. 세 번째가 돼서야 ‘고전적인’이라는 의미가 나오는데, 이는 ‘오래된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유행을 안 타는’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옳다. 명사 부분을 봐도 첫 번째 의미는 ‘명작, 고전’이다. ‘고전’이란 역시 ‘오래된 것’이 아니라 ‘(훌륭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전해진 것’이라는 뜻이므로 명작과 같은 의미다. 명사의 두 번째 의미는 ‘모범’이다.


사전적 의미를 강조한 이유는 우리가 ‘클래식’이라는 단어를 대하는 자세가 외국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어원이 같은 ‘클래시(Classy)’라는 단어도 ‘세련되다’ ‘고급스럽다’ ‘품격 있다’라는 뜻이다. 즉, ‘클래식’이란 우리말로 ‘클라스가 다르다’라는 뜻이지 ‘오래됐다’는 뜻이 아니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유가 바로 ‘클라스가 달라서’이고, ‘클라스가 다름’을 인정받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것 중에는 오래된 것들이 많은 거다.

그런데 우리는 오래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반만년 역사라고는 하는데 그 긴 시간 이어져 내려온 것은 많지 않고,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수도 서울에는 50년 전 건물조차 많이 남아 있지 않다. 1980년대에 생산된 자동차를 찾아보기 어려운 건 물론이고, 2000년대 초반 차만 해도 엄청 오래된 것처럼 여긴다. 아파트가 20년이 넘어가면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는 것만 봐도, 200년 넘어가는 건물들이 즐비한 유럽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그렇다 보니 서양 사람들이 ‘클래식’이라고 칭송하는 것들이 우리 눈에는 그저 ‘오래된 것’으로 보이고, 단어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조금 달라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클래식하다’라고 표현하면 ‘오래되어 보인다’ ‘고루하다’는 의미로 이해되곤 하는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을 다시 읽어보자. ‘왜 클래식 카에 열광하는가?’


서양 사람들은 사전의 1번 의미로 생각해서 “왜 최고의 차에 열광하는가?”라는 멍청한 질문으로 이해할 것이다. 최고의 자동차니까, 세련된 일류 자동차니까 열광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문장을 두고도 “왜 오래된 차를 좋아하는가?”로 이해한다는 점이 다르다.

클래식 카는 이제 단순히 오래되고 희귀한 ‘자동차’에서 벗어나 ‘오브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생산된 지 100년이 넘은 물건이라면 하찮은 것이라도 가치를 인정받게 마련인데, 하물며 100년 전 자동차는 아무나 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자동차는 왕족이나 귀족, 부유한 사업가 등 특권층을 위한 수제 작품이었기 때문에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현재의 자동차와는 만듦새가 다르다. 차체 형상이 볼륨감 넘치고 풍요로운 것도 당시에는 프레스 기계로 찍어내는 게 아니라 망치로 일일이 두드려서 사람의 손으로 빚어냈기 때문이다.

통풍 시트나 자율주행 기능의 유무 등으로 차의 가치를 따지는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예술품을 보는 눈으로 자동차를 대했기 때문에 시간이 흘렀어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 전자장비가 전혀 없어 관리만 잘해주면 세월이 더 흘러도 작동에 문제가 없다는 점도 1960년대 이후 자동차와 다른 점이다. ‘자동차’라는 이름은 같지만, 사실 1960년대 이전의 자동차와 그 이후 자동차는 완전히 다른 물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1970년대 이후 자동차들도 ‘중고’에서 벗어나 ‘클래식’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차들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아마도 그 이전의 황금기 자동차를 넘어서는 가치를 갖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연매출이 5조8000억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미술품 경매 회사인 소더비가 자동차 전문 경매 업체 RM 옥션의 지분 25%를 인수한 것이 클래식 카 붐을 설명하는 좋은 예다. 유럽에서는 클래식 카가 앞으로 부동산이나 미술 작품 못잖은 투자 대상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부동산보다 가치 상승이 분명할 뿐 아니라 귀금속이나 시계보다 현금화가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급속도로 부자가 늘어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에서 클래식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희소식이다.

1988년에 들어서야 해외 자동차의 수입이 가능해진 데다 과거의 자동차를 등록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까다로운 환경법을 시행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클래식 카 붐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의외로 우리 라이프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 카 수집가 중 한 명인 랄프 로렌은 매 시즌 클래식 카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후드에 고글 디테일이 달린 스톤 아일랜드의 밀레 밀리아 시리즈도 클래식 카 드라이버를 위한 라인업이고, 로로피아나가 매년 선보이는 방수 방풍 소재의 ‘로드스터’ 라인도 클래식 컨버터블을 탈 때 입기 좋도록 만든 옷들이다. 여자들이 열광하는 에르메스의 그릇에 그려진 8자 문양은 사실 숫자 ‘8’이 아니라 자동차 트랙을 형상화한 것이다. 보테가 베네타의 신발 밑창에는 클래식 카에 사용되는 던롭 타이어의 문양이 새겨져 있고, 롤렉스 데이토나는 이름 그대로 데이토나 자동차 경주를 기리기 위해 제작된 제품이다.

하이패션 브랜드의 취향은 그대로 여타 브랜드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을 받은 제품들을 사용하게 된다. ‘모나리자의 미소’를 거실 벽에 걸어둬야만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클래식 카를 소유하거나 잘 알고 있어야만 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니터에 띄운 사진 한 장을 보며 감동할 수도 있고, 스티브 맥퀸이 페라리를 운전하는 영화를 보면서 분위기에 젖을수도 있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니 연주회에는 가지 못하더라도 음반을 들으며 감동에 젖을 수 있는 것처럼, 오래전 좋았던 시대를 활기차게 달렸던 예술품들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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