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계의 다이아몬드, 컬리넌

조회수 2018. 7. 2. 09: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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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넌은 롤스로이스가 선보이는 첫 번째 SUV이자 네 바퀴 굴림 모델이다.
Writer 신동헌: 칼럼니스트이자 방송인. 자동차 전문 블로거 '까남'으로 잘 알려져 있다.

포르쉐 카이엔은 럭셔리 SUV 시장이 레인지로버에게만 허락된 게 아님을 증명하는 좋은 예가 됐다. 람보르기니는 우루스로 슈퍼스포츠 SUV라는 장르를 새로 만들었고, 벤틀리는 벤테이가를 통해 럭셔리 SUV의 궁극을 선보였다.


그리고 롤스로이스는 ‘울트라 럭셔리 SUV’라는 장르를 새롭게 만들었다. 컬리넌은 롤스로이스가 선보이는 첫 번째 SUV이자 첫 번째 네 바퀴 굴림 모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는 상당히 전통적인 롤스로이스이기도 한데,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팬텀이 이미 일반적인 SUV와 맞먹는 사이즈였기 때문이다. ‘Size does matter’라는 문장 그대로, 거대한 차체의 장점인 물리적 안정성을 십분 이용하는 것이 롤스로이스 승차감의 비결이었다.

거대한 차체가 거대한 질량으로 노면을 누르고, 거대한 바퀴에 끼운 거대한 타이어가 노면 요철을 제압하며 달리는 팬텀의 달리기는 이미 여느 SUV 이상으로 보는 이를 압도했다. 차체의 높이나 폭, 실내 공간까지 어떤 면에서 봐도 승용차보다는 대형 SUV에 더 가까웠다. 영화 <007 스펙터>에는 아프리카 사막 지대를 달리는 1948년형 실버 레이스가 등장하는데, 그처럼 예전의 롤스로이스는 상당수가 비포장 상태인 오너들의 영지를 달리는 데 사용됐다. 용도조차 SUV의 영역이었던 셈이다.

스포츠카 브랜드가 SUV를 만들 때는 ‘작고 빠른’ 스포츠카의 본질에서 벗어난다는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이런저런 핑계가 필요하지만, 롤스로이스에는 태생적으로 SUV의 DNA가 흐르기 때문에 그런 핑계도 필요 없다. 게다가 ‘럭셔리’라는 단어는 원래 SUV를 통해 발전한 장르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럭셔리 SUV이자,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컬리넌 등장 이전까지 ‘사막의 롤스로이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레인지로버도 원래 농가의 작업용 차로 태어났다. 랜드로버 엔지니어들은 이 차를 새로운 시대의 짐차로 만들기 위해 비닐로 만든 시트를 씌우고, 대시보드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짐을 싣고 시골길을 달리다 더러워지면 호스로 물을 뿌려 실내를 세차할 수 있도록.

그러나 그런 ‘유틸리티’로서의 매력이 아웃도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부유층의 관심을 끌었고, 사냥이나 캠핑, 낚시 활동 등에 사용되면서 ‘럭셔리 라이프’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레인지로버를 짐차에서 럭셔리 SUV로 만든 사람들은 평소에는 롤스로이스나 벤틀리를 타고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 회사들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에 진입한 것이라기보다는 고객층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읽고 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컬리넌’이라는 이름은 1905년 1월 26일 남아프리카에서 채굴된 사상 가장 큰 다이아몬드 원석에서 따왔다. 3106캐럿에 달했던 이 원석은 1907년 당시 영국 왕이었던 에드워드 7세의 66번째 생일에 선물로 증정됐다. 이후 아홉 조각으로 나뉘어 각각 연마됐고, 530캐럿짜리 가장 큰 조각인 ‘컬리넌 1’은 영국 왕권의 상징인 홀(왕이 공식 행사에서 손에 들고 있는 봉처럼 생긴 물건)에, 두 번째로 큰 317캐럿짜리 ‘컬리넌 2’는 영국 왕관 가운데에 장식되었다. 나머지 다이아몬드 일곱 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개인 소유물로 반지나 브로치 등에 장식되었다. 각각의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 하면 흔히 연상되는 브릴리언트 컷이 아니라 고유의 크기와 투명도, 반짝임을 잘 나타낼 수 있는 형태로 커팅되었으며, 각각 이름도 부여되었다. 문자 그대로 가장 귀한 ‘보물’로 대접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중한 보석도 영국 왕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한 물건이듯이, 롤스로이스 컬리넌은 거대하고 새로운 차종이지만 롤스로이스의 왕인 팬텀 아래에 위치한다. 8세대 팬텀에서 처음 선보였던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을 공유하는데, 이 프레임의 명칭은 멋지게도 ‘아키텍처 오브 럭셔리(Architecture of Luxury)’다.


승차감을 위해 더블 위시본 프런트 서스펜션과 5링크 리어 서스펜션은 모두 에어 스프링을 장착하며, 전자 제어되는 액티브 안티롤 바가 차체의 자세 변화를 제어한다. 윈드스크린에 장착된 카메라는 미리 노면 상황을 읽으면서 차체가 요동치지 않도록 서스펜션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팬텀과 마찬가지로 네 바퀴가 모두 움직여 속도에 따라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534cm에 달하는 길이지만 일반 도로에서도 무리 없이 움직일 수 있다. 6.75리터짜리 V형 12기통을 싣는 이 차는 지금 막 주문을 받고 양산을 시작한 단계다.


고객에게 인도되는 첫 번째 컬리넌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자동차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보석이 될 이 차를 실제로 본다면 가격이나 유지비나 실내 장식에 희생된 소의 마릿수를 생각하기 전에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자. 다이아몬드를 보고 “저거 탄소 화합물에 불과한데 왜 돈을 쓰는 거야” 하는 꼰대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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