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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의 맥주의 지금

조회수 2019. 4. 23. 09: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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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A 맥주를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누가 맥주를 마시기에 가장 좋은 도시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잠시의 고민도 없이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라고 대답할 것 같다. 포틀랜드는 인구가 65만 정도되는 작은 도시이다. 인구만 놓고 보면 전주 정도의 규모이다. 이런 작은 도시 인근에 브루어리가 117개가 있다. 우리나라 전체의 수제 맥주 양조장이 100개 남짓 정도라고 하니 어떻게 이런 규모의 도시에 이토록 거대한 크래프트 맥주 씬이 만들어지고 오래 유지될 수 있는지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브루어리들이 치열하게 맥주를 만들고 있다 보니 포틀랜드에서는 온갖 맥주들이 명멸한다. 마치 전 세계 맥주 트렌드가 이 작은 도시 안에 축약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편의점 1만원에 4개 맥주와 소맥, 폭탄주를 넘어서 맥주를 그 자체로 즐기는 ‘맥덕’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포틀랜드는 맥덕들에게 성지 같은 곳이지만, 맛있는 맥주를 마시겠다고 선뜻 여행을 결심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다. 하지만 포틀랜드에서, 이제는 흔해진IPA를 넘어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Great Notion Brewing


이곳에서 맥주를 마실 때마다 ‘좋은 맥주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이 질문은 마치 ‘행복이란 무엇인가?’같이 너무 거대한 질문이라서 어느 누구도 정답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맥주를 마실 때 늘 느끼는 근본적인 고민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는 다양성이고 다른 하나는 음용성이다. 지루하지 않으면서 맛있는 맥주를 최대한 많이 마시고 싶은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카스나 하이트 같은 페일 라거는 다양성을 포기하고 음용성을 극대화한 맥주이다. 앉아서 몇 병이고 마실 수 있다. 음식과 함께 술을 마시는 반주 문화에서 이런 무난한 맛은 오히려 장점이다. 하지만 맥주만 마시면 금세 지루해진다. 반면 가장 흔한 크래프트 맥주 스타일인 IPA는 홉(hop)으로 맛과 향을 다채롭게 하려는 맥주이다. 어떤 홉을 쓰는지에 따라 다양한 꽃 향과 과일향 등으로 변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홉을 많이 넣으면 쓴맛도 함께 올라간다. 우리의 감각은 이 모든 다양성을 한꺼번에 감내하지 못한다. 홉이 많이 들어간 맥주는 음식과 궁합을 맞추기 까다롭고 마시다 보면 금세 지쳐버린다.

그레잇 노션의 맥주 뉴 잉글랜드 (New England) IPA들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는 맥주이다. 이 브루어리의 대표적인 맥주 주스 주니어(Juice Jr.)는 이름 그대로 목넘김이 주스 같다. 한 입 머금으면 망고, 파파야, 파인애플 같은 온갖 종류의 열대 과일 맛이 입안에서 넘쳐난다. 홉이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IPA의 감귤 향 계열이 찌르는 듯 날카로웠다면 이 과하지 않은 열대 과일의 단맛은 맥주를 마치 구름같이 가볍고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준다. 뉴 잉글랜드 IPA의 원조급 브루어리 트릴리움(Trillium)이나 알케미스트(Alchemist) 같은 곳들이 만들어내지 못한 어떤 느긋함을 맥주로 구현했다. 정말이지 언제까지라도 마실 수 있는 맛이다.


그레잇 노션의 맥주는 국내에서 쉽게 구하기 어렵다. 더 부스(thebooth.co.kr)의 ‘헤이 주드’ 또는 어메이징 브루어리(amazingbrewing.co.kr)의 ‘첫사랑’, ‘달토끼’가 비슷한 스타일의 맥주. 큰 의미에서 뉴 잉글랜드(New England) IPA 에 속하지만 홉이 강조된 맥주들 보다는 과일향을 강조한 쥬시(Juicy) IPA 스타일 쪽이 음용성이 더 좋다.


+ 위치 : 101, 5885, 2204 NE Alberta St, Portland, OR 97211, U.S.A.

+ 홈페이지 : greatnotionpdx.com


Cascade Brewing Barrel House

캐스케이드는 그레잇 노션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음용성과 다양성의 해법을 찾아낸다. 이 브루어리는 과거로 돌아간다. 옛 벨기에 맥주에 영향을 받아 만든 사우어 (sour) 맥주를 버번이나 와인 오크통에 장기 숙성해서 복잡한 맛을 덧입힌다. 맥주에서 산미는 좀 낯설 수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결국 알코올은 발효의 과정이고 신맛은 발효의 최종 도착지이다. 술에서 신맛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코르크를 열어둔 채 방치한 와인의 파국과 막걸리로 만드는 식초를 생각해보자.) 그래서 맥주에서 신맛을 내는 것은 맥주의 죽음을 다루는 기술이다. 


한편 신맛은 입맛을 돋운다. 그래서 신맛은 애피타이저에 빠지지 않는다. 젖산균을 통해 만들어지는 케이케이드 사우어 맥주의 신맛은 김치의 신맛과 화학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맛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는 언제나 사우어 맥주를 맥주계의 평양냉면이라고 말하곤 했다. 처음 마실 때는 ‘이게 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번 익숙해지면 계속 찾게 된다. 사우어 비어는 굳이 균형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과감하게 신맛으로 시작해서 장기 숙성을 통해 얻어진 다양한 맛을 모두 펼쳐내 보여준다. 쉽게 목으로 넘어가면서 동시에 다채롭고 화려하다. 다 마시고 나면 어느새 한잔 더 마시고 싶어 진다. 케스케이드에서 ‘좋은 맥주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에 대한 답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사우어 맥주는 오래된 미래이다.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sse) , 고제(Gose), 람빅(Lambic) 같은 스타일의 맥주들이 전통적인 사우어 에일로 분류되는 스타일이다. 우리나라의 크래프트 브루어리들도 조금씩 사우어 맥주를 시도하고 있는데, 와일드 웨이브(wildwavebrew.com)의 ‘설레임’이 대표적이다. 서울 이태원에 오직 사우어 맥주만을 취급하는 곳이 있는데, 사우어 퐁당(facebook.com/sourpongdang)이라는 곳에서 케스케이드 맥주를 종종 만날 수 있다. 


+ 위치 : 939 SE Belmont St, Portland, OR 97214, U.S.A.

+ 홈페이지 : cascadebrewingbarrelhouse.com







WRITER 신현호: 여행, 음식, 그릇에 관심이 많은 뉴욕 거주 푸드 칼럼니스트. 부업은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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