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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안의 평화

불안한 사람들이 명상 앱을 다운로드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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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정준화 : 디지털 기획자. 틈나는 대로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쓴다.


화제의 드라마 <스타트업>을 굳이 챙겨서 시청하지는 않았다. 잡지 기자로 일할 당시 잡지 업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 <스타일>이라는 드라마를 건너뛰었던 것과 비슷한 이유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이미 겪고 있는 일과를 주말 동안 TV에서까지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극화된 버전은 나의 현실보다 훨씬 낭만적일 거다. 두어 달의 방송 기간 만에 결국 대박을 터뜨릴 주인공들을 지켜보는 일은 생각만큼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회사의 문제는 뭘까? 창업팀의 미모 평균이 남주혁이나 수지가 아니라는 것?


서비스 론칭을 앞둔 작은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마음이 어수선해질 때가 많다. 삼산텍의 성공을 보며 대리 만족을 얻는 것 말고 불안과 잡념을 다스릴 다른 방법은 없는지 궁금해졌다. 명상 앱은 요즘 들어 특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처방이다. 유료 회원 중 스타트업 종사자의 비율은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폭발적인 성장세를 견인한 건 창업 붐보다는 오랜 경제 침체와 전 지구적인 팬데믹 현상인 듯하다. 코로나 19로 인한 우울감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의 전파 속도는 바이러스 못지않은 수준이다. 기존의 생활 방식이 흔들리고 사회와 거리를 두게 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심리 상태를 다잡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명상

2016년에 론칭한 마보는 국내 최초의 ‘마음 챙김 명상 앱’을 표방한다. 대기업과 콘텐츠 협업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비즈니스 확장을 모색한 끝에 올해 9월 누적 사용자 18만 명을 돌파했다. 명상 심리 앱 코끼리의 빠른 약진도 놀랍다. 개발에 참여한 혜민 스님과 관련된 논란으로 최근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론칭 1년 동안 기록한 누적 가입자 수는 이미 33만 명에 이른다. 작년 11월에 출시된 루시드 아일랜드는 오프라인 다운로드, 위젯 등의 기능을 지원해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명상 서비스들은 실용적인 목적에 맞춰 큐레이션한 팟캐스트에 가깝다. 단계별, 상황별로 감정을 차분하게 다독이며 호흡의 리듬을 조절하는 오디오 메시지나 사운드를 제공한다.


평화도 쇼핑이 되나요?코로나 상황으로 성장 속도가 빨라진 건 사실이지만 그 전부터 명상 앱 시장의 규모는 이미 상당한 수준이었다. 한발 앞서 트렌드를 주도했던 해외의 사례들은 국내 창업자들에게도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이었을 것이다. 글로벌 다운로드 수치가 8천만에 달하는 캄(Calm)은 업계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대표 주자다. 일찌감치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의 입지를 획득한 이 서비스의 현재 가치는 22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종교적 색채를 배제하고 다양한 기획으로 대중의 선입견을 극복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자연의 소리를 활용한 ASMR부터 농구 선수 르브론 제임스, 가수 샘 스미스 등 유명인들이 참여한 내레이션 및 음악 클립까지, 폭넓은 구성을 확인하다 보면 그 자체로 콘텐츠 포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헤드스페이스(Headspace)는 어쩌면 코끼리에게 직접적인 영감을 준 서비스일지도 모른다. 마케터와 티베트 불교 승려가 함께 기획했으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명상의 효용을 전도하고자 한다. 창업자들은 사업 초기 영국 언론사인 <더 가디언>을 위해 독점 콘텐츠를 개발했던 게 성장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올해 초까지 6천2백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달성했으며 스타벅스를 비롯한 굵직한 글로벌 브랜드들을 기업 고객으로 두고 있다. 산뜻한 그래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UI는 단연 돋보이는 요소다. 콘텐츠 중에서는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영화 음악가 한스 짐머의 플레이리스트에 특히 관심이 간다.





평화도 쇼핑이 되나요?

문득 앱스토어에 들러 대표적인 명상 앱 몇 개를 다운로드했다. 1년 단위로 구독료를 지불하는 유료 서비스들이지만 약 일주일의 무료 체험 기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을 내릴 시간은 충분하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어떤 걸 선택하더라도 별반 차이는 없을 듯하다. 각각의 디테일은 다르지만 큼직한 얼개에 있어서는 대체로 유사한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마보(‘마음 보기 연습’의 줄임말이다) 앱을 켜면 케이스 별로 정리된 여러 콘텐츠가 나타난다. ‘우울할 때’ ‘외로울 때’ ‘불안할 때’ 등 이용자의 심리 상태부터 ‘차에서’ ‘아이와 함께’ 등 현재 상황까지, 분류 기준도 다양하다. 파일을 재생시키면 단정한 목소리가 자세와 호흡을 고쳐준다. 그리고 여유로운 리듬으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결론부터 털어놓자면 2~3회의 명상 끝에 속성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명상 앱은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스테로이드 주사보다는 인내심을 갖고 복기해야 하는 트레이닝 교본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이드에 적극적으로 따르고자 하는 열린 자세도 중요하다. 10분짜리 오디오 클립을 못 견뎌서 빨리감기 버튼을 눌러대는 나 같은 인간은 아무래도 자격 미달이다.


명상을 위한 콘텐츠는 어떤 면에서는 귀로 듣는 자기계발서 같다. 작정하고 삐딱하게 말하자면 이미 알고 있는 당연한 이야기를 정성스럽고 장황하게 들려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경청하는 태도에 따라 그 효과가 천차만별로 갈린다는 것 역시 공통점이다. 지금의 고민은 시간과 함께 흘러갈 것이고 힘든 상황도 조만간 괜찮아질 거라는 자기 최면은 내용의 알맹이만 추려봤을 때는 전혀 신선하지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 모든 진리는 당연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당연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되새기는 과정에서 종종 우리에게 새삼스러운 위로를 얻는다. 이미 알고 있는 말이라도 다른 사람의 음성을 통해 듣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결국 명상이란 외부가 아닌 자신의 마음 안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불안의 시장

솔직히 내게는 명상 자체보다 명상이라는 필터를 통해 가늠할 수 있는 불안의 비즈니스가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미국인들에게 2020년의 이슈는 코로나 19와 대선이었다. 트럼프 정권하에서 첨예하게 분열된 여론은 투표소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캄은 사람들의 긴장감이 극에 달할 선거 기간을 마케팅의 호기로 보고 CNN 개표 방송의 스폰서로 참여했다. 주요 선거 지구에서 바이든과 트럼프가 박빙의 승부를 벌일 때 TV 화면에 캄의 아이콘을 띄웠으며, 평화로운 빗소리로 채워진 30초 길이의 광고 영상을 사이사이에 내보내기도 했다.


적시를 노린 아이디어는 기대 이상의 바이럴 효과를 거뒀다. 선거 당일에만 SNS에 캄에 관한 멘션이 9천7백건가량 업로드됐을 정도다. 평소 멘션이 하루 5백건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돈 값을 한 마케팅이었던 셈이다. 이 일화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코로나 19를 제외하더라도 스트레스의 원인은 산적해 있다. 사람들은 늘 불안을 다스릴 방법을 궁금해할 것이다. 1년 치의 평화를 정기구독할 수 있다면 몇만 원의 연회비는 그리 큰 지출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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