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개와 산다는 것_ <노견일기>의 정우열 작가 인터뷰

조회수 2019. 8. 12. 14: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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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정준화 : 디지털 기획자. 틈나는 대로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쓴다

개를 키운다는 건 나의 일상에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개는 짧은 일생 동안 최선을 다해 애정을 베풀고 대부분 너무 일찍 떠나간다. 그래서 순식간에 닥친 반려견의 노년을 곁에서 돌보는 건 애틋하면서도 소중한 경험일 수밖에 없다.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정우열은 제주도에서 열 여섯 살의 폭스테리어인 풋코와 함께 생활하며 둘의 하루하루를 카툰으로 기록 중이다(어미인 소리와는 이미 5년 전에 이별을 했다). 네이버 동물공감 포스트에서 연재되고 있는 <노견일기>는 작게 늙어가면서 점점 더 큰 존재가 된 털 많은 파트너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개를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배우고 공생의 의미를 고민하게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행본 <노견일기> 출간에 맞춰 작가에게 몇 가지 질문을 건넸다.


Q. <노견일기>는 연재 중인 동명의 웹툰 일부를 묶어 만든 책이다. 이 작업을 하면서 지향하거나 지양하겠다고 생각한 방향이 있나?

신파를 경계하고, 담담하게, 낭만화하지 않고 그리려고 한다. 더불어 개의 입장이나 생각을 개 자신이 화자가 되어 말하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건 나의 추측인데 직접 개가 말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게 좀 월권처럼 느껴진다.


Q. <노견일기>의 새로운 연재분이 업로드되면 많은 독자들이 자신이 키우는 개에 관한 댓글을 올리곤 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면?

사랑스럽거나 뭉클한 사연이 많아서 어느 하나를 꼽기 어려운 것 같다. 늙어가는 개를 바라보는 일, 개를 떠나보낸 경험 같은 건 심적 영향은 큰 데 비해 어디 가서 말할 데가 마땅찮은데, <노견일기> 댓글난이 그렇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되었다는 게 기쁘다.


Q. 5년 전 소리를 떠나 보내고 지금은 열 여섯 살짜리 폭스테리어인 풋코와 함께 살고 있다. 개도 사람처럼 각각의 개성이 있을 텐데, 둘은 어떻게 다른 것 같나?

소리는 나에게 오기 전 유년 시절 1년 간 전 주인이 키웠고, 나와 함께 11년을 살다가 떠나갔다. 유년 시절의 경험은 개에게도 소중한 것이어서, 소리는 평생 온전히 내 개가 아니었던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 마음 한 켠에 옛 주인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함께 산 지 5년 쯤 지난 후론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 것 같아서 고맙게 여기고 있다. 돌이켜보면 소리에겐 풋코 없이 조용히 있을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는데, 그걸 충분히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에 비해 풋코는 어려서부터 내가 키운 개라 100% 나를 따른다. 자기밖에 모르고, 요구사항이 많고, 주장이 강하다. 그렇게 해도 내가 받아주리라고 여기는 것 같다. 순 응석받이다. 소리는 그러지 못했다.


Q. 현재 제주도에 거주 중이다. 개가 지내기에 좀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싶었던 것도 이주를 결정하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라고 알고 있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나?

명쾌하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주 전에 예상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개와 함께 대자연을 뛰어다니리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살아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개가 갈 수 없는 곳이 많았다. 숲과 산에는 진드기가 치명적으로 많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국립공원 같은 곳은 다짜고짜 반려동물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반려동물이나 동물권에 대한 인식 수준도 매우 낮은 편이다. 유기동물 문제가 전국에서 가장 심각한 곳이 제주도다. 개가 늙어가면서 병원에 가야 할 일이 많은데, 전문적인 의료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주도에 살고 있고 서울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우리는 이곳에서 대도시에서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배웠고, 그것을 알기 전으로 삶을 되돌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삶에서는 밀집되지 않고 적당히 듬성듬성한 타인과의 거리가 필요하고, 산책하다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는 바다가 필요하다. 그것이 없는 도시의 삶으로 돌아가면 갑갑해서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까 여기 와서 우리는 변했고, 대도시에서는 행복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Q. 많은 견주들이 개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어하지만, 그러려면 현실적인 여러 가지 제약을 극복해야 하고 사전 조사도 꼼꼼하게 해야 한다. 제주도를 여행하는 견주와 개에게 추천하고 싶은 스폿이 있을까?

다행히 개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애견 카페나 애견 레스토랑 같은 거 말고, 그냥 인간의 삶의 일부로 개를 받아들여주는 곳 말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제주도에서의 삶에 있어 타성에 젖어버려서, 새로운 좋은 곳은 잘 알지 못한다. ‘잇프레이러브’에서 태국 음식을 먹고, ‘픽스커피’에서 커피를 마시고, ‘맥파이’에서 맥주를 마신다. 함덕이나 중문해변 같이 넓은 곳에서 개와 함께 뛰어다닌다. 단 7, 8월 휴가철에는 알려진 해변을 피해야 한다. 사람도 너무 많고 통제가 심해서 재미가 없고, 갈등이 생길 소지도 많기 때문이다. 요즘은 제주도 표선이나 남원 쪽이 그나마 옛 모습이 남아있고 고즈넉해서 조용한 여행을 즐기는 사람(과 반려동물)이 갈 만하다. 단 시골에는 동네에 돌아다니는 큰 개들이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자연스레 사회성을 가지게 된 개들이 대부분이라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Q. 노견을 키웠거나 떠나 보낸 주변 사람들이 종종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늙은 개를 키워본 사람들 사이에는,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짐작하기 힘든 특별한 유대가 존재하는 느낌이다. 본인도 다른 견주로부터 크게 위로를 받은 경험이 있나?

영화 <컨택트>(원제 <어라이벌>)에 보면 자식이 일찍 떠날 걸 알지만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사랑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 아마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크게 공감했을 것이다. 나의 돌봄 속에서만 안온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작고 복슬복슬한 존재가, 어느새 나보다 빨리 늙고 병들어 결국 내 곁을 떠나게 되는 경험. 매우 슬프고 극복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런 줄 알면서도 반려동물을 키우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니 그런 짓을 하는 인간들에 대해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대가 생겨나는 것이겠지. 

그런데 그건 그렇고, 다른 견주로부터 크게 위로받은 경험은, 글쎄 돌이켜봐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공감하고 유대감을 느끼긴 하지만 위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즐겨 쓰이는 위로의 수사가 ‘이 다음에 저 세상에 가면 반려동물이 기다리고 있다가 날 맞이해준다’는 이야기다. 소리가 떠났을 때 사람들이 내게도 그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는데,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실은 나는 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되었던 건,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한 친구가 해준 매우 현실적이고 건조한 말이었다. ‘소리에게 많이 받았으니 견뎌야지 어쩌겠느냐’는 내용이었다.


Q. 늙은 개와 사는 게 힘들거나 슬픈 일만은 아닐 거다. 노견과 함께 하는 삶의 즐거움으로는 어떤 걸 꼽을 수 있을까?

서로 잘 알기 때문에 합이 척척 맞는달까. 풋코는 나의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산책을 갈 건지, 음식을 먹을 건지, 자길 집에 두고 혼자 외출할 건지 다 알아챈다. 나도 풋코의 귀 각도, 등과 꼬리의 구부러진 정도, 발걸음 소리 같은 걸로 개의 상태나 기분을 알 수 있다. 익숙한 일이지만 가끔 아, 경험이 축적되고 삶이 지속된다는 건 이런 거구나, 하고 기쁘게 느껴진다. 나를 잘 아는 존재와 마음이 맞는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다.




Q. ‘개와 함께 사는 일은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글로 책을 시작한다. 두 마리의 개를 키운 경험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다고 생각하나?

내가 환경문제나 동물복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순전히 개들과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인식의 확산이 매우 더디고, 과연 너무 늦기 전에 바로잡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일들이다. 그래도 나쁜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나쁜 일을 보태는 사람이 될 것인지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사람이 될 것인지 개인의 윤리적 선택은 해야 한다고 개들이 내게 가르쳐줬다.

또 세상일이 참 뜻대로 안 된다는 거, 그럴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지도 삶에 대한 개들의 태도를 보고 배운 게 많다. 그런데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은, 내가 개들에게서 배운 것을 개를 키운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의 삶에서 다른 경로로 배운 것들이 겹쳐지고 덧대어져서 결국 세상을 이루고 있는 거 아닐까 싶다.




Q. <노견일기>처럼 개를 다룬 작품에 독자나 관객, 혹은 시청자로서도 관심이 있을 것 같다. 개에 관한 또 다른 책, 영화, 혹은 TV 시리즈 중 추천하고 싶은 게 있다면?

책 중에서는 <개에 대하여>와 <철학자와 늑대>를 좋아한다. 개 기르기의 인문학이랄까. 개가 나오는 영화 중에서는 <비기너스>를 꼽겠다. 사실 개가 나오긴 하지만 개 이야기는 아니고 돈 걱정 없는 여피의 한가한 자기 연민이 주요 테마인데,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개를 대하는 방식이 재미있어서다. 개에게 특별한 연기를 시키거나 멋대로 대상화하지 않고, 개를 가만 내버려둔 다음 진지하게 대화상대로 대하는 점이 썩 마음에 든다. 생각해보니 <노견일기>가 이 영화의 태도를 배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노견일기>는 현재 네이버 해피빈 펀딩을 통해 구입할 수 있으며, 추후 온오프라인 서점을 통해서도 판매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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