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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에 담긴 칵테일

조회수 2020. 12. 3. 14: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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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믹 시대의 새로운 트렌드?


Writer 신현호 : 여행, 그릇, 음식에 관심이 많은 푸드 칼럼니스트. 부업은 회사원.



판데믹이 선포되고 세계 주요 도시에서 제일 먼저 영업 규제를 받은 곳은 사회적 거리를 두기 힘든 식음료 업장이었다. 일정 시간 함께 모여 앉아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식당이나 바(bar)는 아무래도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위기에 빠진 식당과 바를 위해 뉴욕 주정부는 일시적으로 술을 테이크 아웃하거나 배달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고, 가정용 주류 판매점은 필수 업종으로 분류되어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술을 마시게 된 덕분에 락다운(lockdown) 직후 가정용 주류 판매는 급증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주종은 의외로 미리 만들어진 칵테일을 캔이나 병에 넣어 마시는 간편 칵테일(RTD, ready-to-drink)이었다.


판데믹 이전의 시대에도 캔이나 병에 담긴 칵테일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바에서나 먹을 수 있었던 모히토, 마가리타 또는 잭다니엘에 콜라를 섞어 마시는 잭콕 같은 단순한 칵테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편의점에서도 쉽게 살 수 있었다. 장점은 분명하다. 바에서 마시는 것이 비해 훨씬 더 저렴하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마실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소비자들은 이런 간편(ready-to-drink) 칵테일 맛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그리고 이런 의심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예를 들어 많은 칵테일이 산미를 위해 레몬이나 라임 같은 감귤 향을 사용한다. 꼭 과즙을 쓰지 않더라도 껍질로 향을 더하기도 한다. 시트러스의 산뜻한 향은 술에 생기를 더하고 달콤하고 찌르는 신맛은 베이스가 되는 술에 엑센트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캔이나 병입된 칵테일은 이런 신선한 감귤 향을 갈무리할 수 없다. 오랜 유통기한에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트러스 향은 왠지 인공의 맛이 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바에서 칵테일을 마실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왠지 캔에 든 칵테일마저 괜찮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칵테일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술을 일일이 갖춰 놓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칵테일을 마시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하다. 그리고 아무리 레시피대로 만든다고 해도 자기가 직접 만든 칵테일이 캔보다 반드시 더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는 2020년 4월 기준으로 RTD(Ready-to-Drink) 카테고리가 전년 대비 80%가 성장했다. 하지만 꼭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과거에 비해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맛도 훨씬 더 나아졌다. 판데믹 덕분에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 뿐이다.


과거에 비해 전통적인 칵테일로 정면 승부하는 제품도 등장했다. 팁탑(Tip Top)에서는 미국 남부의 손에 꼽히는 바 중에 하나인 킴볼 하우스(Kimball House)와 손잡고 가장 클래식한 칵테일 올드 패션드(old-fashioned)를 캔으로 발매했다. 오렌지 과즙 대신 비터(bitter)를 사용해서 캔 속에서도 풍미를 유지하며 위스키 중심의 맛에 과일향을 살짝 더했다. 라이브와이어(Livewire)는 LA의 바텐더 애론 폴스키(Aaron Polsky) 와 조이 베르나르도(Joey Bernardo)와 협업해서 창작 칵테일을 캔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크래프트 맥주를 만드는 포틀랜드의 브루어리 로그(Rogue)에서도 맥주에서 RTD 분야로 확장에 캔에 넣은 간편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만약 기술이 더 발전해서 바텐더가 만들어주는 칵테일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바에 가는 대신 캔에 든 칵테일을 마시게 될까? 가정 간편식 HMR(Home Meal Replacement)이 외식을 대체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이제 집에서 칵테일을 즐기게 될까? 아마도 바(bar)라는 공간이 정해진 레시피에 따라 햄버거를 만들 듯이 칵테일을 기계적으로 만드는 곳이었다면 캔으로 된 RTD 칵테일은 앞으로도 훌륭한 대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칵테일을 캔에 담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바(bar)를 옮겨올 수는 없다.




일본이나 한국의 어센틱 바는 종종 도서관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종종 술병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백바(Back Bar)는 책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꺼운 위스키 리스트에서 대출 신청을 하거나 원하는 맛을 설명하면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서 같은 바텐더가 술을 내주는 것이다. 이런 곳의 바텐더는 스마트하게 칵테일을 만드는 능력은 물론이고 술에 대한 지식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손님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접객에도 능하다. 종종 바텐더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마음이 후련해져 바를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바텐더라는 카운슬러를 통해 술이라는 약물로 마음을 치유받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미국의 바는 대체로 훨씬 더 시끄럽고 요란한 놀이터 같다. TV를 몇 대씩 틀어놓고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농구, 야구를 다 틀어준다. 조용히 앉아서 먹기보다는 적당히 서서 잔을 들고 시끄럽게 대화를 하며 술을 마신다. 술집을 가득 채운 온갖 종류의 사람들은 모두가 목소리를 높여 대화하다 보니 저녁 10시쯤 되면 모든 사람이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게 된다. 전형적인 금요일 저녁 뉴욕의 바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이상적인 바를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희귀한 컬렉션을 즐기기 위해서든, 뛰어난 바텐더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시도가 담긴 칵테일을 경험하기 위해서든, 친구와 회사 상사를 욕하며 무슨 술이 되었든 취할 때까지 마시기 위해서든 바에서는 사람들과의 교감이 있었다. 캔에 담긴 칵테일을 마시며 칵테일만큼이나 '바'라는 공간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뉴욕의 금요일 밤 사람들로 가득 찬 아비규환 같은 바를 잠시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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