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재테크

조회수 2019. 6. 4. 11: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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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조성준 : ‘재테크도 예술이다’라고 주장하는 경제신문 기자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예술’은 ‘돈’이라는 세속적인 가치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영역으로 여겨진다. 앤디 워홀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워홀은 "돈 벌기는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좋은 사업은 최고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응용하면 최고의 예술가는 훌륭한 사업가이기도 한 것이다. 예술도, 사업도 결국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이기 때문일까? 워홀처럼 성공한 예술가에게서 사업가적 기질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보위, 굴드, 고흐, 비욘세 여기 네 명의 스타가 있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돈을 벌었는지, 혹은 벌고자 했는지 소개한다.


데이비드 보위 - ‘보위 채권’을 발행하다

photo by Adam-Bielawski / Wikimedia Commons

보위는 혁신가였다. 그는 한곳에 머물 줄 모르는 인간이었다. 글램록 장르를 개척하며 명성을 얻은 보위는 한순간에 자신의 장르를 떠났다. 이후 디스코, 재즈, 전자음악 등 다양한 영역에 도전하며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보위가 도전한 영역은 음악뿐만이 아니다. 보위는 연기도 했다.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바스키아’에선 본인과도 친분이 있었던 앤디 워홀 역할을 맡았다.


보위는 돈을 버는 재능도 뛰어났다. 1997년 그는 자신의 음악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한다. ‘보위 채권’으로 불렸던 이 상품은 287곡에서 발생할 저작권 수익을 기초자산으로 삼았다. 지식재산권을 담보로 한 최초의 금융상품이었다. 채권 발행으로 보위는 한번에 5500만 달러를 벌었다. ‘보위 채권’ 연 금리는 7.9%였다.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6.7%인 시대였다. 2016년 보위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가 남긴 유산은 1200억 원 이었다.


글렌 굴드 - 고독했던 피아니스트, 그는 주식투자 천재

photo by Don Hunstein / Sony Music Entertainment

글렌 굴드는 20세기가 낳은 가장 독특한 피아니스트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파격적으로 해석해 명성을 얻은 글렌 굴드. 그는 기행의 아이콘이었다. 사람과 잘 어울릴 줄 모르는 건 기본이었다. 한 여름에도 종종 코트를 입고 장갑을 꼈다. 세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전성기였던 32세에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건 고통"이라며 무대를 떠난다. 이후 단 한 번도 무대에 오르지 않고 스튜디오 녹음 작업만 했다.


무대를 떠난 후 굴드는 은둔자가 됐다. 대부분의 시간을 빛이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집에서 보냈다. 제대로 된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혼자였다. 굴드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그는 주식투자로 큰돈을 번 뛰어난 투자자였다. 그가 어떤 기준으로 주식 종목을 골랐는지는 상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투자한 기업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직접 북극까지 기업 시찰을 나설 정도로 철두철미했다. 피아노를 연주할 때 단 한음조차 원하는 대로 표현 못 하면 괴로워했던 완벽주의자의 면모로 주식 종목을 골랐을 것이 분명하다. 굴드는 주식 투자로 많은 돈을 벌고도 소비의 즐거움은 그다지 누리지 않았다. 그는 재산 대부분을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하고 떠났다.




빈센트 반 고흐 - 반전을 꿈꿨던 미술 컬렉터

고흐는 압생트를 즐겨마셨다. 그의 삶은 압생트처럼 씁쓸한 맛으로 가득하다. 생전 자신의 그림을 단 한 점밖에 못 팔았던 고흐는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생활비로 근근이 버텼다. 우울, 울분, 광기, 무력함 속에서 오직 그림에만 매달리다가 결국 미쳐버렸다. 스스로 귀를 자르고, 자신에게 쏠 권총을 들고 밀밭으로 들어가 방아쇠를 당겼다.


쓸쓸한 삶을 버티다가 외로이 퇴장한 화가. 하지만 ‘그림 그리기’ 이외에도 고흐가 열정을 쏟아부은 대상이 있었다. 고흐는 일본 문화 ‘덕후’였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 풍속화를 일컫는 우키요에의 매력에 푹 빠졌다. 물론, 당시 인상파 화가 대부분은 우키요에에 영향을 받았다. 유럽 전반에 일본풍이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흐의 애착은 남달랐다. 그는 없는 돈을 끌어모아 우키요에를 수집했다. 취미로서의 수집 수준을 넘어섰다. 400여 점의 우키요에를 확보한 고흐는 파리에서 전시회도 개최했다. 외골수인 줄로만 알았던 고흐가 미술 컬렉터 겸 전시기획자였다는 점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고흐는 (비록 실패했지만) 경제적인 성공을 추구한 예술가였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 “그림으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의 의무다”라고 적었다. 만약 고흐가 미치지 않고 오래 살았더라면 화가로서 혹은 컬렉터로서 성공의 맛을 보지 않았을까.


비욘세 - “공연료는 됐고, 지분으로 주시죠”

photo by Asterio Tecson / Wikimedia Commons

언젠가부터 ‘스웩(swag)’이란 단어는 ‘돈 자랑’과 동의어가 됐다. 비욘세, 제이지 부부의 스웩은 스케일이 다르다. 제이지는 아내 생일선물로 섬을 통째로 선물했다. 이 섬의 가치는 240억 원이었다. 비욘세의 통은 더 컸다. 제이지 생일 때 460억 원에 달하는 제트기를 선물했다. 누군가는 이런 걱정을 했을 수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는 부부라지만 이렇게 돈을 써도 괜찮을까?’ 물론 괜찮다. 비욘세가 한 번의 공연만으로 받는 돈은 수십억이니까. 게다가 비욘세는 영민한 투자가다. 2015년 우버는 자사 행사에 비욘세를 섭외했다. 우버가 비욘세에게 줘야 할 공연비는 600만 달러였다. 우버라는 기업의 가능성을 알아본 비욘세는 현금 대신 우버 지분으로 공연비를 받았다. 우버의 가치는 계속 상승했다. 최근 우버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비욘세가 보유한 우버 지분 가치는 600만 달러에서 3억 달러로 치솟았다.


쌍둥이 출산 후 잠시 휴식기를 가진 비욘세는 지난해 코첼라 무대를 통해 화려하게 복귀했다. 비욘세가 코첼라 공연비로 받은 돈은 약 400만 달러다. 물론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하지만 코첼라 헤드라이너였던 아리아나 그란데는 800만 달러를 받았다. 개런티는 두 배나 차이 나지만 결과적으로 코첼라 공연을 통해 벌어들인 돈은 비욘세가 훨씬 많았다. 비욘세는 미리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자신이 코첼라를 통해 복귀하는 과정 자체를 다큐로 찍기로 한다. 이 과정을 담은 ‘홈커밍’은 지난 4월 공개됐다. 넷플릭스가 이 다큐를 찍기 위해 비욘세에게 투자한 금액은 6000만 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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