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알못'을 위한 입문서

조회수 2020. 4. 3. 14: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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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취향의 변천사

Writer 신현호 : 여행, 그릇, 음식에 관심이 많은 푸드 칼럼니스트. 부업은 회사원.



위스키의 세계에서 10년이란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다. 어지간한 위스키의 숙성 기간은 10년을 훌쩍 넘어가고 30년을 넘는 위스키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긴 시간 단위를 가진 위스키의 세계에서는 왠지 큰 유행 없이 오랫동안 비슷한 흐름이 계속 이어질 것 같지만 사실 애호가들은 한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법이 없다. 특히 지난 10년 남짓 되는 시간은 다양한 위스키들이 소개되고 취향의 외연이 확장된 시간이었다.



출처: twitter.com/Ardbeg

발렌타인과 조니워커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의 시대가 저물고 한동안 우리는 싱글 몰트 위스키에 빠져 있었다. 마치 대량 생산되는 커피를 마시다가 스페셜티 원두 커피를 찾게 된 것처럼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특정 지역과 증류소에서 나온 위스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특히 보모어(Bowmore)나 아드벡(Ardbeg), 라프로익(Laphroaig)과 같은 아일라(Islay) 싱글 몰트 위스키가 인기가 많았다.


몰트 위스키는 싹을 틔운 보리 맥아가 주 재료지만 스코틀랜드 서안의 이 작은 섬에서 나오는 위스키의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강력한 피트(Peat) 향이다. 보리를 건조할 때 쓰는 이 피트는 지배적인 땅 냄새, 훈연 향은 위스키에 강한 풍미를 더한다. 그래서인지 스페이사이스(Speyside)나 하이랜드(Highland) 지역의 조금 더 균형감이 있는 몰트 위스키들이 더 좋다는 사람들도 있다.

출처: www.whisky.suntory.com

최근 몇 년 간은 일본 위스키의 시대였다. 일본의 증류소들은 꽤 오래전부터 훌륭한 위스키를 만들어오고 있었고 이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이미 알음알음 즐기고 있었는데, 몇 년 전 위스키 평론가 짐 머레이가 야마자키(山崎) 싱글 몰트 셰리 캐스크를 ‘위스키 바이블’에서 세계 1위에 꼽으면서 갑자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제 일본뿐 아니라 세계 주요 도시의 어느 바에서도 일본 위스키 한두 병 정도는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확보 경쟁이 치열해진 야마자키 셰리 캐스트를 가져다 놓은 곳도 종종 보인다.

출처: www.kavalanwhisky.eu

아일라 위스키의 특징을 만들어낸 건 바다를 면하고 피트가 흔한 아일라라는 섬의 지리적 특징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야마자키 싱글 몰트 위스키의 방점은 ‘일본'이라는 지역이 아니라 '셰리 캐스크' 였는지도 모르겠다. 셰리는 스페인의 와인을 이용해 만든 술이다. 셰리(Sherry)를 담아두었던 오크통에 위스키를 숙성시키면 셰리의 맛과 향이 더해진다. 셰리는 드라이한 맛부터 달콤한 아로마가 강조되는 스타일까지 다양하지만 위스키 숙성에 사용되는 건 주로 페드로 히메네스(Pedro Ximenez)라는 포도 품종으로 만든 올로로소(Oloroso)라는 셰리를 숙성한 오크통이 쓰인다. 과일향이 풍부하고 바닐라같이 부드러운 풍미가 포함되어 실크처럼 부드럽게 넘어가며 살짝 달큼한 맛을 남기는 것이 특징. 입 안에 피트를 욱여넣는 것 같은 느낌의 싱글몰트 위스키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맛이다. 야마자키 덕분에 아시아 위스키의 위상도 함께 올라갔다. 세워진 지20년도 되지 않은 대만의 증류소 카발란(KAVALAN)의 위스키도 이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위스키가 되었다.

출처: www.oldripvanwinkle.com

짐 머레이가 꼽은 최고의 위스키는 지난 몇 년간 모두 버번(Burbon) 또는 라이(Rye) 위스키다. 버번은 옥수수가 51% 이상 들어간 원액을 쓰고 안쪽 벽을 불로 그을린 새로운 오크 통으로 숙성한 위스키를 말한다. 오랫동안 값싼 미국 위스키의 대명사처럼 쓰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위상이 달라졌다. 밀과 옥수수를 원료로 만들어 버번 특유의 거친 맛을 부드럽게 만든 메이커스 마크(Maker’s Mark)나 우드포드 리저브(Woodford Reserve)들은 다른 위스키 산지의 맛 못지않은 섬세한 맛을 만들어낸다. 켄터키 주의 패피 반 윙클(Pappy Van Winkle)은 버번의 역사를 새로 쓴 위스키다. 부드러운 감촉에 캐러멜 팝콘 같은 아로마가 감도는 이 술은 한동안 잊혔던 아메리칸 위스키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환기 시켜주었다. 이제는 빈 병이 이베이(ebay)에서 수백 달러에 팔리고 있을 정도로 하나의 컬트가 되었다.

출처: www.crownroyal.com

하지만 버번의 단점은 너무 달콤하다는 것. 2016년 캐나다의 라이 위스키 크라운 로열(Crown Royal) 노던 하베스트가 짐 머레이의 리스트 1위에 올랐을 때만 해도 라이 위스키는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만 즐기는 위스키였다. 호밀로 만드는 라이 위스키는 곡물 껍데기에 있는 페룰 산(Ferulic Acid)이 이스트에 의해서 변화하면서 만들어낸 매캐하고 스파이시한 맛과 정향(Clove)의 금속성 맛이 특징이다. 100% 라이 위스키도 흥미롭지만 버번과 적절하게 블렌딩된 위스키도 좋다. 버번의 단점을 찌르는 듯한 라이 위스키가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맛과 향이 다르고 이런 취향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부드러운 위스키가 대세였다가도 어느새 미뢰를 때리는 것 같은 강한 향의 위스키가 인기를 끌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돌고 도는 변화를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보면 종종 흥미로운 경향이 보이기도 한다. 사실 얼마 전 오랜만에 조니워커 블랙을 마시고 이 위스키가 이렇게 좋은 위스키였나 새삼 감탄했다. 취향은 정말 돌고 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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