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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5개짜리 수상 소감들

조회수 2020. 2. 4. 14: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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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Words

Writer 정준화 : 디지털 기획자. 틈나는 대로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쓴다.


지난 1월 5일, LA에서 열린 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국내 언론과 영화팬들로부터 이례적인 주목을 받았다. 한국 영화 최초로 외국어 영화상을 거머쥔 <기생충> 때문이었다. 


역사적인 수상 자체도 화제였지만 봉준호 감독의 인상적인 소감 역시 SNS에서 수많은 하트를 받으며 바쁘게 공유됐다. “자막의 장벽, 사실 장벽도 아니죠. 한 1인치 정도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비영어권 콘텐츠에 배타적인 미국 시장을 에둘러서 꼬집은 이 문장은 ‘외국어 영화상’에 대한 화답으로 더없이 적절했다. 


봉준호는 “우리는 영화라는 단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짧지만 효과적이었던 스피치를 마쳤다. 골든 글로브 결과는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스포일러가 될 때가 많다. <기생충>은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한 주요 6개 부문의 후보로 지목됐다. 수상 결과는 물론이고 봉준호의 오스카 수상 소감에 대한 기대까지 한껏 높아져 버렸다.



시상식 무대에서 오고 가는 말들은 역동적인 축하 공연이나 참석자들의 화려한 의상보다 훨씬 중요한 쇼의 콘텐츠다. 누군가는 예리한 농담을 던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묵직한 메시지를 날린다. 그리고 어떤 연설은 수상 결과보다 더 긴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아무튼 매년 중계방송을 열심히 챙겨보는 시청자로서 한마디를 하자면, 진행자나 시상자, 그리고 수상자들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기회를 가능한 한 경제적으로 활용해 줬으면 한다. 감사할 지인들에 대한 나열이 3분 이상 이어지면 어쩔 수 없이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게 된다. “OO씨, 오늘 정말 아름다우신데요?” “OO씨도 굉장히 멋있어지셨어요.” 시상자들이 몇 십 년째 주고받고 있는 어색한 빈말에는 벌금을 매겨야 한다. 그럼 무대 위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냐고? 유튜브에서 지난 시상식들을 다시 보기 하면서 인상적인 코멘트를 참고해봐도 좋겠다.


제6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2006년)

TV 시리즈-드라마 부분 남우주연상 수상자 휴 로리

“오는 길에 제가 감사해야 할 모든 사람을 생각해봤어요. 총 172명이더군요. 다 언급할 수는 없어서 쪽지에 하나씩 이름을 적어서 바지 주머니에 넣어뒀습니다. 그중에서 무작위로 세 명만 뽑을게요. 나머지 분들은 그냥 받아들이세요.”


: 감사해야 할 이름이 너무 많아 고민인 수상자를 위한 배우 휴 로리의 해결책. 드라마 <하우스>로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거머쥔 그의 아이디어에 가장 크게 박수를 친 건 방송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데 늘 애를 먹는 시상식 스태프들일 것이다.




제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2014년)

공동 진행자 티나 페이

“<그래비티>도 작품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조지 클루니가 동년배의 여성과 1분이라도 더 함께 있기보다는 우주를 떠다니다 죽는 쪽을 택한다는 이야기지요.”


: 바람둥이 스타들의 연애 편력은 시상식 무대에서 자주 놀림감이 된다. 올해 골든글로브의 사회자였던 리키 저베이스는 3시간에 육박하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상영되는 동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여자 친구가 너무 늙어버리고 말았다는 농담을 했다. 매번 20대 초반의 금발 모델과 데이트를 하는 배우의 취향을 저격한 것. SNL 출신의 유명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가 진행을 맡은 2014년의 타깃은 조지 클루니였다. 두 사람은 2021년에 다시 한번 골든글로브의 마이크를 잡고 따끔하면서 유쾌한 농담을 쏟아낼 예정이다.




제70회 아카데미 시상식(1998년)

공로상 수상자 스탠리 도넌

“좋은 감독이 되는 비밀을 말씀드리죠. (중략) 일단 촬영이 시작되면 현장에 나타나서 어떻게든 버텨야 해요. 반드시 나타나야 합니다. 안 그러면 크레딧에 이름도 못 올리고 이런 친구(오스카 트로피)도 얻지 못하거든요.”


: 근사한 수상 소감이 말로만 완성되는 건 아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 <퍼니 페이스> 등의 뮤지컬 걸작을 연출한 스탠리 도넌은 시상식 무대에서 이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반드시 영상으로 확인해야 하는 스피치다.


제70회 아카데미 시상식(1998년)

남우조연상 수상자 로빈 윌리엄스


“무엇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멋지구나. 그런데 만일을 위해 직업을 하나 더 가져 보렴. 용접이라든가.”


: <굿윌헌팅>으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로빈 윌리엄스는 그의 작품들처럼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뭉클한 소감을 남겼다. 떨리는 목소리로 감격을 고백하는 이 영상은 이미 세상을 떠난 배우를 애틋하게 추억하도록 만든다. 올해 골든글로브에서도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보낸 또 다른 수상자가 있었다. <페어웰>로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쥔 아콰피나는 무대 위에서 이렇게 외쳤다. “아빠, 내가 취직했다고 했잖아.”




제66회 아카데미 시상식(1993년)

남우주연상 수상자 톰 행크스

“오늘 밤에 느끼는 딜레마는 이런 겁니다. 천국의 거리가 천사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제 작품이 더욱 주목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알고 있지요. 그리고 그 숫자는 우리가 오늘 밤 달고 온 빨간 리본의 수천 배에 달할 겁니다.”


: 조나단 드미의 <필라델피아>는 톰 행크스의 경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코믹한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에이즈와 사회의 편견에 모두 맞서 싸워야 하는 전직 변호사 역할을 맡아 연기파 배우로 발돋움을 하는 동시에 오스카 트로피까지 쟁취했다.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많은 사람을 추모하는 아름다운 연설은 큰 화제를 모았다. TV 시리즈 <웨스트윙>은 대통령의 스피치 장면에 ‘The streets of heaven are too crowded with angels’라는 문구를 인용했다. 이날 톰 행크스는 학창 시절의 연극반 지도 교사를 존경하는 게이 남성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제자 때문에 정체성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인 앤 아웃>은 이 사건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어진 작품이다.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2015년)

여우조연상 수상자 패트리샤 아퀘트

“아이를 낳은 모든 여성 여러분, 이 나라의 모든 납세자분들, 우리는 모두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싸워 왔습니다. 이제는 미국에서 평등한 임금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쟁취해야 할 때입니다.”


: 전 세계가 주목하는 시상식 무대는 평소의 소신을 밝히기에 좋은 자리다. <보이후드>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패트리샤 아퀘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이렇게 활용했다. 객석에서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 메릴 스트립의 모습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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