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씨,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조회수 2020. 1. 22. 17: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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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은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어쩜 그렇게 한결 같았을까.


WRITER 이기원 : 세상 모든 물건과 금방 사랑에 빠지는 콘텐츠 제작자.

"전 가요계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살아온 것 같아요. 다른 짓 하지 않고 그저 공연 위주로, 내가 하고 싶은 음악만 해왔어요. 그건 제 세대의 음악인들이 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두 달 전, 이승환이 정규 12집 발표회에서 했던 얘기다. 마침 이날은 그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기도 했다. ‘30주년 기념’ 같은 건 패티김이나 이미자씨 정도 돼야 하는 것 같았는데, 내가 학창시절 좋아했던 가수가 벌써 30주년을 맞았다.

이승환의 12집 타이틀곡 ‘나는 다 너야’의 뮤직비디오

이승환은 지난 30년 동안 12장의 정규 앨범을 냈고, 1천 회가 넘는 공연을 했다. 물론 그의 음악 인생이 항상 평탄했던 건 아니다.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뒀던 4집 이후, 그의 대중적인 인기는 줄곧 하락세였다(그 자신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편곡과 레코딩에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돈을 써도, 앨범 패키지를 아트피스 수준으로 꾸며도, 안 되는 건 안되는 거였다. 물론 이승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100만 장은 우습게 팔던 8-90년대, 대중가요 황금시대의 주역들이 동시에 겪었던 일이다.



이승환의 4집 커버. 당시로서는 대단한 퀄리티를 자랑했다

음반 시장이 본격적으로 침체기에 접어든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왕년의 인기가수들에게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좀 더 쉽고 대중적인 음악으로 노선을 바꾸거나, 제작비를 줄이거나, 아예 활동을 쉬거나. 하지만 이승환은 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기존 스타일에 더욱 드라이브를 걸었다.


히트곡에 목매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던 록 사운드 성향을 본격적으로 드러냈고, 완성도에 대한 집착으로 음반 제작비는 평균 대비 수십 배를 썼다. TV는 여전히 멀리 했지만, 라이브 무대는 전보다 훨씬 많이 가졌다. 심지어 정치적인 입장까지 강하게 드러내면서 일부 대중들과 등을 졌다. 말하자면 철저히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어온 셈이다.

30주년 기념 콘서트 홍보물. 이것만 봐도 정성이 짐작이 간다

“저는 항상 현재진행형으로 살고 싶어요. 음악 좀 듣는 20대가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음악을 하고 싶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들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여전히 ‘천일동안’이나 ‘텅빈 마음’으로만 기억되니까. 제가 아무리 좋은 노래를 만들어도 사람들은 ‘천일동안’ 이후로 들을 곡이 없었다고들 해요. 하하.”


그가 10집 앨범을 발매했을 때 나는 이승환과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당시 그는 앨범 판매가 너무 저조해 많이 낙심해 있었다. 분명히 좋은 음악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니 힘이 빠진다고 말이다.


이러다가 잊혀진 가수가 되면 어떡하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이랬다. 그래도 ‘추억팔이'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과거의 영광에 매몰된 삶은 참을 수 없다고, 왕년의 인기 가수가 아니라 동시대와 호흡하는 가수이고 싶다고.




누군가는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쌓인 인생 경험치, 세상 풍파에 시달리며 얻은 냉소, 신체적인 노화가 겹쳐지면 새로운 도전 같은 게 귀찮아진다. 익숙한 걸 반복하는 게 편하고, 대중들도 그걸 더 좋아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게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다들 꼰대가 되어간다.


하지만 이승환은 애초에 그렇게 살 수 없는 종류의 사람 같았다. 인생을 보는 기준이 좀 달랐달까. “대중들의 환호나 경제적 이익 같은 걸 크게 신경쓰진 않아요. 그건 또래 가수들이 다 하고 있으니까 난 다른 걸 하고 싶어요. 아무도 도달하지 않은 미개척지를 경작하는 게 내 운명이랄까, 의무 같이 느껴져요. 나는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하는 단 한 사람’이고 싶어요.”


이승환이 내게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그가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그의 60세 콘서트가 벌써 궁금하다

이승환의 ‘화려하지 않은 고백‘은 93년에 발매됐다. 26년 전 노래다. 하지만 지금 들어도 전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승환은 한국 나이로 55세다. 아마 당신이 다니는 직장의 최고 관리자와 비슷한 나이일 것이다. 이 나이대의 남자들은 대체로 권위주의, 무사안일, 정치력 같은 단어들에 익숙하다.


이승환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는 아직도 20대 록밴드들과 격의없이 어울리고, 그들에게 선배님 대신 형이라 불린다. 그는 아직도 크롬하츠류의 각종 장신구를 좋아하고, 패션에도 예민하다. 멋진 몸을 위해 아직도 꾸준히 웨이트를 하고, 연말 공연을 위한 아이디어를 연초부터 고민한다. 이런 기질과 노력이 그를 2019년에도 트렌디한 음악을 하는 현재형 가수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요즘 유행한다는 온라인 탑골공원 영상들을 보고 있다. 그 중에는 가요 톱10 시절 ‘텅빈 마음’을 부르는 이승환의 모습도 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의 이승환과 뭐가 그렇게 다른지 잘 모르겠다. 목소리도, 떨림도, 표정도. 이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분명 또래들과 다른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의 얼굴을 보며 다시 한 번 묻고 싶어진다. 이승환씨,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Present to him

코스텔(COSTEL)의 냉장고

레트로 스타일의 전자제품 열풍이 생각보다 오래 가고 있다. 과거의 물건이 가지는 디자인 감성과 가장 최신의 기술력이 합쳐지면서 좀 더 스타일리시한 공간 배치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코스텔(COSTEL) 냉장고는 레트로 디자인, 근사한 컬러와 크롬 디테일의 20세기적 감성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물론 성능은 21세기다. 특히 독립 3단 냉동칸의 위력은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늙지 않는 냉동인간이자 20세기의 세련미를 고스란히 간직한 21세기 가수 이승환에게 코스텔을 선물하고 싶다. 어쩐지 그를 위해 등장한 제품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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